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쟁 Mar 30. 2022

푸른 바다와 붉은 광장

《일은 서울에서, 잠은 제주에서》와 《여로에서》

타지에서 살아보는 이야기를 쓴 두 작가의 연재 글을 읽었다. 박상영 작가의 밀리의 서재 연재작 《일은 서울에서, 잠은 제주에서》와 이묵돌 작가의 브런치 연재작 《여로에서》. 전자는 밀리 오리지널로 독점 연재를 마쳤고 곧 종이책으로도 출간이 된다. 후자는 아직 출판 계획을 알리지 않았고 완결이 나지 않아 브런치에서 업로드될 때마다 읽는 중이다. 각각 다른 관심으로 읽게 되었는데 비슷한 구석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맘은 지금 극에 달했을 터. 나 또한 그렇다. 코시국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참 잘 다녔었는데 어느 사이에 아이까지 낳고 나니 발이 제대로 묶여버렸다.

 2020년 상반기만 해도 모든 것을 자제하기에 바빴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코로나와 함께 조심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내 발도 그 흐름에 얹고 싶었다. 간혹 떠나기를 시도했으며 점점 긴 일정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다 마감을 위해 타지에서 살아보는 두 이야기를 만났다. 《일은 서울에서, 잠은 제주에서》는 가파도의 예술인 거주 센터에서 지낸 이야기이고 《여로에서》는 러시아를 여행하며 보내는 이야기이다.

'한 달 살기'라는 키워드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 나도 큰 관심을 두었었다. 이전에 다른 글에도 썼지만,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진득하니 앉아 있을 시간이 필요한데 집 안에 있으면 다른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여행을 가면 또 여행지를 즐겨야 하는 성미라 쉬는 여행 따위는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역시도 앉아 있기는 불가능이다.

작정하고 창작 여행을 가본 적은 있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었고 같이 쓰던 친구 M과 날을 잡아 1박 2일로 떠났다.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인간이라 밥을 그래도 한 끼는 먹어야 했다. 이제 글을 써보자 하고 앉으니 너무 졸렸다. 와인도 한 잔 마셨던 것 같다. 알쓰 주제에. 피곤한 상태에 알코올을 부으니 잠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머리가 도저히 굴러가지 않아 결국 이야기는 집에 돌아와서 썼다. 차라리 놀고 올 것을.

이래 봤기 때문에 단기간의 떠남은 여행 내지는 숙박이 된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한 달은 그곳에 살아야 타지의 느낌도 만끽하고 창조적 영감도 얻고 그러는 것이다. 내가 만약 창작 여행을 가서 곯아떨어진 그날이 여행의 첫날이기만 했다면, 동시에 마지막 밤이지는 않았다면, 다음 날 좋은 컨디션으로 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두 작가의 에세이를 나도 어쩌면- 하는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읽어 내려갔다.

한 달이나 집 아닌 곳에서 산다는 건 여행과는 다른 문제다. 여행이기는 한데 일상이 있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롭진 않다. 내가 모르는 여행지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기 전에 그들은 밥을 해 먹기도 해야 하고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를 죽이기도 해야 한다.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사귀게 되기도 한다. 근데 그게 방 바깥을 나서기만 하면 별세계인 것이 흥미롭다. 문을 열면 푸른 바다나 붉은 광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으면서도 불현듯 타지니까 재미있다. 내가 살아보진 못하지만 일상을 실감 나게 묘사해 주는 작가들이 살아주니까 대신 재미있다. 나 대신 제주도의 가파도에서, 러시아 곳곳에서.

두 작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먼저 비슷한 점을 꼽자면 글이 간결하다. 읽기에 부담이 없고 단어들도 쉽다. 그런 문체로 묘사를 잘한다. 마치 그곳에 내가 함께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방의 구조라든지 본인들이 겪은 일의 앞뒤 상황들이라든지.

이야기에 유머도 있다. 특히 박상영 작가는 소소한 일도 유쾌하게 표현해 내는 재주가 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 김연수 작가의 아차차 뭐더라 식의 화법을 그대로 옮기며 카페 사장님의 전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 즉각적으로 들었던 본인의 생각의 흐름을 독자가 따라가도록 써 놓아서 방심한 사이에 빵 터졌다. 아기 재우고 옆에 누워서 읽다가 터진 웃음 참느라 혼났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도 이런 흐름이겠구나 싶어서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기로 맘먹게 되었다. 이야기 진행 코드와 유머 코드가 너무나 내 스타일.

개인적으로, 일 때문에 김연수 작가를 초청할 일이 있을 뻔했었다. 그때 작가님의 다른 일정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박상영 작가의 글을 읽으니 더 아쉬워졌다. 박상영 작가도 대학 시절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했던 계기로 등단 이후에도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옆 방에 입주한 그분을 워낙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그려놓아서 읽는 재미가 더 있었다. 애정이 마구 드러난다. 아무래도 김연수 편을 썼어도 괜찮았겠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 같았다.

이묵돌 작가는 글이 늘 냉소적인 편이지만 논리적 흐름 속에서 모순을 잡아내는 경우가 있어 글을 읽다 보면 킥- 웃게 된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대체 무슨 말이야? 정도의 느낌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는데 본인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제3의 시점으로 표현하는 게 매력적이다. 이 또한 소설의 느낌이다. 약간 고전 소설류. 누군가에게 불합리함을 따지는 상황이거나 스스로에게 화내는 경우가 많다. 이건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다.

이번에 읽은 두 작품은 에세이라 작가들의 개인적인 생활과 생각이 많이 나타난 편이다. 두 작가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다. 둘 다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하기에 나도 무겁지 않게 적는 것이지만 전업 작가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또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박상영 작가의 글은 밝다. 그래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알겠다. 글이 쭉 밝아서 일상은 오히려 우울했겠구나. 밝아지려고 자꾸 하다 보면 괴로운 일이 한둘이 아닐 테니.

이묵돌 작가의 글은 어둡다. 글이 대놓고 우울하다. 본인이 의도한 글의 분위기일 것이지만 차가움과 더불어 담담함이 꾹꾹 담겨 있다. 단어가 많고 분노가 자주 보인다. 물론 나 같아도 여행 갔는데 전쟁이 일어나고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없던 화병도 생길 것 같다. 글이 잘 써져서 좋았을 것 같다 싶으면서도 그것 자체를 또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만한 일들이 있었어서. 그래도 이번 에세이에서 의외로 수줍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것도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처럼 표현해서 주인공이 다른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던 건 신선했다.

둘은 결이 다르지만 둘의 글이 다 내 취향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하다.






내 결혼식 당일 직접 작성했던 혼인서약 문구를 내 친구 J가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긴(!) 여행 보내주기.'

몇 년 동안 못했으니 올해나 내년쯤에는 몰아서 2년 치를 다녀올까 보다. 아이가 함께 있는 그림은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그 또한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말하고, 읽는 김영하를 마주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