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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리 Jun 12. 2019

이혼하는 중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여성으로 살며 결혼을 한다는 것.

스물둘 연애 시작, 3년 동안 연애를 한 6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고 1년 후 결혼식을 올렸다. 4년의 결혼생활을 보내고 서른, 나는 지금 이혼하는 중이다.


'왜 이혼하느냐' 이유를 물어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도도 폭행도 아닌 잔잔한 내 이혼을 설명하는 것은 참 쉽지 않았다. (사실 세상에 잔잔한 이혼이란 건 없지만, 하도 세상에 별일이 다 있어서. 가정 법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처럼 협의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천사라고.)


연애와 결혼을 모두 합쳐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어온 이 과정들을 설명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아주 숨 막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이혼 사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여성으로 살며 결혼을 한다는 건 참 별로인 것 같아' 라는 간결하지만 변명도 아닌 완벽한 답변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사실이었다. 

이혼을 하기 전, 스스로 <이혼을 해야 하는 이유>와 하면 <이혼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나열했었다. 장단점이 모두 따르는 결정이고 또 신중해야 하는 내용이다 보니 그 나열된 내용들에 무게를 달아 저울질하며 수백, 수천 번을 고민했다. 그 리스트들을 쭉 정리해보니, 종합하자면 저 말이 딱 맞았다. (이유들은 언젠가 연재되는 글들에 등장시킬 예정이다)


2018년, 

25만 7천 건의 혼인과(2.6% 감소) 

10만 8천 건의 이혼(2.5%증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혼을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며 버텨온 그 시기에 나는 이제 막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는 서른이라 주변에 이혼을 한 사람이 없었다. (결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 '적당한' 이라는 단어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래서 그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니 괜히 더 어렵게 느껴졌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해준 '이혼녀' 타이틀에 대한 걱정을 신물 나게 들으며 조금 두려웠던 것도 같다. 사실 나 역시도 20대엔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하고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으레 짐작했었으니까.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이혼 전문 변호사 만화를 본다. 

https://www.instagram.com/insup_cho/

그중 고등학교 때 부터 연애를 하다가 군대를 기다렸고, 반지를 사주기 위해 막노동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온 두 사람이 이혼을 하는 스토리를 담은 만화가 있었는데,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부분에 충격에 빠져하는 댓글들을 보게 되었다.


'진짜 저렇게 로맨틱한 사랑을 했는데 이혼을 한다고?' 


연애 과정 없이 결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이혼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언젠가는 남은 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혼을 결심할 만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나 역시도 너무 사랑했다면 되려 그게 문제일 수 있었을 정도로 마찬가지였다. 한참 어린 나는 그 사람의 보물같은 존재였고, 함께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아마 댓글을 달았던 그들도 스무살의 나처럼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줄 알았겠지. 


'연애'가 아니고 '결혼'이다 보니, 대단한 문제가 아니고는 참고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 아니 진짜 대단한 문제까지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 물론 참을 수 있다면, 살아야지. 나도 이혼을 권장하는 건 절대, 단연코 아니니까. 그러나 사랑은 간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의 결혼 생활>이 <이혼 후 생활> 보다 불행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부부갈등 앞에 '결혼까지 했으니까' 라는 이유로 '존버'를 해야 하는 건 정답일까.


이혼 서류를 접수하던 즈음 즐겨 찾는 브런치에서 '이혼' 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검색했을 때 '이혼 남녀의 90%가 이혼을 후회하는 이유' 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아래 링크 첨부) 이혼 직전에는 저 글이 쓸데없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오늘 다시금 읽어보니 그냥 찬찬히 스크롤을 내릴 수 있는 정상 멘탈이 되어 있어 다행이다. 


https://brunch.co.kr/@thequestbook/41


물론 이혼은 자랑할 것 아니고, 신중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헌데, 세상의 시선이 이렇다고 생각하니 다들 본질에 대해 판명할 수 있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지금 내가 키보드를 잡은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또 유부녀로 살아보며,

90년대 생으로 살면서, 

내 직업 CEO로 살면서,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의 연재를 시작한다. 혼란이 많았던 그 시기의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내 글이 아주 작은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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