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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리 Jun 14. 2019

이혼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날.

이혼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날. 내가 사는 주소지에는 법원이 없는 관계로 관할 법원으로 가야 했다. 택시를 타고, 그 법원을 찍어달라고 한 후로 가는 길을 두리번거리다가 생각이 났다.

'아, 이 법원이구나'



나는 사업을 하며 많은 소송을 했다. 늘 승소했지만,

단 1원도 판결에 부합한 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2번의 소송을 당했다. 그때마다 왔던 곳이 이 법원이었다. 비상식이 상식을 이기는 이 세상 앞에 직원들을 보호하거나 대변하기 위해 늘 덩치 큰 성인 남성들의 욕설과 신체적 위협에 시달리며 찾아왔던 곳. 법원 문턱을 넘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때마다 그에게

‘나를 좀 도와달라고. 같이 가 줄 수 없겠냐고’

이야기 했던 이 공간.

도움받지 못해 힘들었는데 이혼을 이유로 같이 가게 되다니.


덕분에 서류 내고 밥이나 먹자고 쎈 척 한 껏 했던 나는, 그 서러움에 법원 문턱부터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멀리서 오는 그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부터 오열하고 말았다.

아. 망했어.


나는 늘 나보다 덩치가 1.5배는 되는 그의 등 뒤에, 그리고 사업을 5년이나 먼저 시작한 똑똑하고 현명한 사업가의 등 뒤에 딱 하루만 숨어보고 싶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주어지는 일들이, 그게 모여 만들어진 하루하루가 참, 많이, 버거웠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에 눈물이 난 것이라고 해명하기엔 너무 찌질할 것 같아 서류를 내고 얼른 도망치듯 법원을 나왔다. 우리의 이혼을 처리하는 시간은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TV에서 모델 장윤주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1) 남편을 따라서 한국이 아닌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2) 남편 사업이 망해서 빈털터리가 되어도 남편 곁에 있을 수 있다.

3)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몸이 불편해져도 남편을 지킬 수 있다.


세 가지가 충족된다면 그 때 결혼하라고. 고민해보니 안타깝게도(?) 나는 그럴 수 있었다. 맞다. 나는 그를 사랑했었으니까. 그게, 내 이혼이 이렇게나 오래 걸린 이유다.


싫어하는 사람과 불행하다면 내려놓을 텐데.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다면 같이 지낼 텐데.

좋아하는 사람과 불행해서. 앞으로도 불행할 것 같아서.


혹자는 독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함께할 때 보다 각자일 때 더 행복할 것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 그래서 이혼 직 후 당연히 힘들어할 나의 상황들을 뻔히 그리면서도 이혼을 요구했다. 어떠한 상황이 내게 들이닥치더라도 순간의 감정에 휘말리거나 나약해지지 말자고 매일 밤 다짐했고,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들을 매일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그래 견뎌내야지. 세월은 무서운 거잖아.
그로 인해 익숙함이 주는 공허함은 이런 나를 잡아먹기에 충분했잖아.

그저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졌는데, 늦은 시간 택시기사님이 당신이 준 사탕을 왜 안 먹냐며 자꾸 물어봐 무서운데. 하며 찰나의 서러움에 잠시 눈물이 난 거라고. 나는 감정선이 예민해서 빨리 아팠을 뿐이라고. 나는 원래 슬픈 영화에도 잘 우니까, 그리고 우리가 나눈 시간은 무려 8년이니까.


그로 인한 슬픔과 누구와라도 겪을 공허함을 구분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냥 눈물이 날 때는 깊게 추억하면서 울 수 도 있고. 그 사실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모든 걸 받아들였다. 분명한 건, 공허함으로 그 인내의 시간을 덮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좋은걸 많이 사주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마음껏 데려가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돌이켜보고 내가 미안한 딱 한 가지를 떠올려냈다.

결혼이 주는 변화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이 서툴었던 스물다섯의 나.


그를 만난 것,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내가 후회한 건 내게 좀 더 확실한 결혼에 대한 인식, 가치관이 있었더라면. 딱 지금 만큼만이라도 현명했더라면. 나는 누군가를 나의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었을 텐데. 집안일을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당신께, 그게 왜 나만의 몫이 아닌지 설명하며 같이 이겨나갔어야 했는데. '이게 뭐지.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닌데.' 하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거.


그게 바로,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결혼 전이 아닌 결혼 직후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다.

물론 그런다고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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