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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ㅈㅜㄴ Feb 01. 2021

타인의 인생영화 - 백 모씨의 이터널선샤인

이 영화 세 번쯤 보니까 이 생각이 들어. 왜 저렇게까지 사랑을 할까?





 제 친구, 지인의 인생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합니다.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문장 교정, 매끄럽게 다듬기 용으로만 수정을 거친 글이며 전반적인 대화를 그대로 붙여넣기 했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최고의 인생 영화를 하나만 꼽아주세요.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디자인쪽 일 하고 있는 26살 백OO입니다.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최고로 꼽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슨 영화인가요? 

제가 최고로 꼽는 인생영화는 참 많지만.. 그 중에서 제일은 ‘이터널 선샤인’ 입니다! 






여기 얼마 전 이별을 한 연인이 있다. 조엘(짐 캐리)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마주치지만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도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막상 시술을 시작하자 기억을 지우는 것을 멈추려 애쓰지만 이미 늦었고.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 둘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된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 채로.  




어떤 점에서 그 영화를 제일로 꼽으시는 건가요? 

살아오면서 제일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때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때라고 해야하나.. 제 인생에서 사랑이 참 중요한데요. 사랑때문에 행복했다가 사랑때문에 아파서. 그래서 기억을 지웠다가 결국 다시 또 바보같이 사랑하는 이 영화가 기억에 제일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사랑때문에 행복했다가 사랑때문에 아파서. 그래서 기억을 지웠다가 결국 다시 또 바보같이 사랑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쵸, 영화를 본 사람이 설명할 때 대략적인 내용은 비슷하겠지만, 제가 설명한다면 그렇게 설명하는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신 적이 있으세요? 

최근에는 못봤는데 한 세 번 정도 다시 본 것 같아요. 겨울이 되면 생각이 많이 나요. (오프 더 레코드로 영화를 처음 본 계기는 전남친을 꼬시기 위함. 그가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찾아봤다고 한다. “이렇게 올려도 되니?” / “응.”)


  


 

왜 겨울에 생각이 많이 날까요?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눈밭에 두 주인공이 있는 포스터로 접하기도 했고, 또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눈이 엄청 오는 날 열차에서 만나거든요. 그 장면이 인상 깊어서 겨울에 생각이 많이 나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조금 더 이어진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주로 사랑에 아플 때 이 영화를 다시 봤다고 한다. 그 전남친이 군대에 갈 때 - 입대 5 일 전에 입대 소식을 알렸다. -, 세 번째 헤어졌을 때. 사랑 때문에 아픈 그 때마다 마침 계절도 겨울이라서 이터널선샤인이 떠올랐다고 한다.) 


(“주로 사랑에 빡칠 때 다시 보는데 그게 겨울이라 ‘아 이 감정이면 이 날씨에 이터널 선샤인을 봐야겠다’구나?” / “응. 아, 이 빡침은 이터널선샤인만 해결해 줄 수 있는 빡침이다.”) 

 

그쵸, 눈밭에 누워있는 주인공들의 장면이 인상 깊어서 겨울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영화가 주로 보여주는 둘의 관계가 겨울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의견이네요. 제가 조금 덧붙이자면 '봄이 오고 있는 겨울' 같아요. 결국 둘은 서로를 다시 택했으니까요. 저는 함께하는 게 따스함이고, 이는 곧 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겨울에만 멈춰 있는 건 아닌거죠.

 


맞아요,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영화 속 결말이 봄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이 영화는 '봄이 오고 있는 겨울 영화'가 맞을 것 같네요.  

세 번이나 이 영화를 다시 보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볼 때마다 감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있나요? 

짧은 텀으로 영화를 다시 본 건 아니었어요. 처음 봤던 건 2016년 여름, 그 다음은 2018년 초입, 그리고 그 다음이 올해 초였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본 시기를 이렇게 잘 기억하다니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뒷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시기를 잘 기억할 만 하다. – 앞서 언급한 전 남친과의 해프닝들 때문에 찾아봤다는 그) 

음. 감상이 달라졌다는 게 맞는 표현이긴 해요.  






시간이 흐를 수록, 영화를 보는 나도 달라지면서 다른 인물에 이입이 된다든가, 다른 상황이 보이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처음에 봤을 때는 와 그치 저게 사랑이지. 힘들고 아파도 다시 하는 거지라는 마음. 두 번째 봤을 때는 바보 같지만 나도 저럴 수 있을 것 같아. 최근에 봤을 땐 굳이 왜 저렇게까지? 라는 마음으로. 환경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니까 감상이 달라지더라고요.

 

 

'굳이 왜 저렇게까지'라는 감상에 눈이 가네요. 뒤에 무슨 말이 생략된 건가요? '굳이 왜 저렇게까지 사랑을 다시 할까?' 인가요? 

맞아요. 굳이 왜 저렇게까지 사랑을 다시 할까.. 제 인생에서 사랑이 정말 중요하지만. 전 처음에 그 영화를 봤을 때만큼 어리지도 않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은 많아져서.. 요즘은 그렇게 힘든 감정을 굳이 유지 하고 싶진 않다고 생각 하거든요. 



사랑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하신 것 같군요. 다시 사랑하게 된 둘은 과연 다시 '잘'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의 백OO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잘 사랑하고 못 사랑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들은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겠죠. 사랑에는 잘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고 마음이 닿는만큼만. '마음이 다 할 때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의 전 잘하려고도 노력하지 않는 마음이 다 할 때까지의 사랑이 좋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언젠가 마음이 다 하는 순간까지만 지속되는 결말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예/아니오) 

예. 모든 사랑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기억을 지우는 병원의 직원들은 망각은 축복이라는 니체의 말을 언급한다고 해요, 그렇다면 둘은 기억을 한 번 지움으로써 닳아가는 마음을 다시 리셋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쵸, 그리고 또 다른 끝을 향해 바보 같은 사랑을 시작하는 거죠. ("졸리니까 빨리 다음 질문ㄱㄱ")  



이 영화에 대해 코멘트를 남긴다면? *왓챠에 코멘트를 남긴다고 생각해주세요. 왓챠의 코멘트를 참고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만약 참고하신다면 어떤 코멘트를 참고하고 영감을 받았는지 알려주세요. 

전 왓챠 코멘트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고 딱 두 글자를 썼더라고요, "인생". 그 때도 지금도 인생에서 사랑이 참 중요했던 것 같아요. 끝이 있다고는 말하지만 끝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유일한 감정. 내 인생에 찾아온 사랑 중 계속해서 생각나는 사람과 사랑이 있다면 봤으면 하는 영화. 기억하는 감정만큼 아픈 것은 없다는 걸 알아버린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랑영화.  









 인터뷰 전에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되는 필연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굉장히 로맨틱한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러나 이 대화 끝에 드는 생각은, 지긋지긋한 사랑 이야기. 백 모씨가 정의한 사랑에 따르면 둘의 마음은 또 언젠가 닳아버릴 것 같아서. 지금은 심폐소생술로 잠깐 다시 그 닳아가는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준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또 사랑하다가 말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인터뷰 내내 지긋지긋하다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글을 정리하다보니 '사랑이 끝나면 기억을 지우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이미 끝난 인터뷰이기에 이 정도는 가벼운 아쉬움으로 묻어두기로 하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볼까 한다. 영화처럼, 사랑이 끝나면 기억을 지우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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