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찾아나서기로

위로수집 일지 - 프롤로그

by 단비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때도,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게 될 때도 있다. 나는 최근 꽤 긴 시간 동안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그 많은 위로들 중에는 가볍게 스치는 것들도 있었고, 묵직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치고 상해 가면서 위로에 대한 감각 센서도 망가져 갔다.


좋은 말, 좋은 글, 좋은 사람,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러 면에서 점점 더 나빠져 갔다. 건강도, 관계도, 일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위로를 필요로 했다. '위로'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됐든, 나를 더 나빠지지 않게 해줄 뭔가가 필요했다.


나는 나를 안정시키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것에 민감해졌다. 호흡의 깊이, 근육의 긴장, 수면의 질을 전보다 신경 썼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 정신이 맑아지는 소리,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렇게라도 간신히 버텨서 '모든 건 다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 건강이, 내가 맺은 관계가, 내 노력이 담긴 일들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으니 그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리석지 않기를.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스피노자


처음엔 이 말처럼 내가 느끼는 고통을 묘사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통을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고,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가 없음을 자책할 여력이 지금 나는 없다. 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하는 위로들을 찾아가며, 그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위로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그곳에서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할지, 나는 아직 모르지만 글은 알지도 모른다 .

브런치프사.png 양평군립미술관 2025년 10월 19일 <양평의 미술가들> 전시회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