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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대화 8. '이해'라 쓰고 '오해'로 읽는 드라마

'오해'는 '이해'로 가는 길의 필수 경유지

by 단비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TV 드라마를 함께 보는 구순 노모와 환갑 아들의 대화)

구순 노모: 에구, 저 여편네가 쟤 에미였구나.

환갑 아들: 아니지, 저 여자는 쟤 애인의 엄마지.

구순 노모: 그니까. 에미가 애를 버린 죄를 받는 거여.

환갑 아들: 애를 버린 게 아니지. 쟤 애인이 애를 혼자 키운 거지.

구순 노모: 그니까. 죄짓곤 못 사는 거여.

환갑 아들: 쟤네 둘이 같이 살겠다는 거잖아.

구순 노모: 에구, 그니까 둘이 배다른 남매였구먼.

환갑 아들: 아니지, 둘이 피가 섞인 사이는 아니지.

(두 분은 하나의 드라마 안에 서너 편의 드라마를 녹여내고 계셨다.)

남는 질문

두 분은 드라마를 보고 계신 걸까, 드라마를 쓰고 계신 걸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보다 각자의 오해를 완성하는 데 더 집중하는 건 아닐까?


남는 생각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가 완성한다는 게 사실임을 알게 된다. 비단 드라마뿐만 아니라 책과 그림, 음악 등에 있어서 누군가의 창작은 그것을 감상하는 이에게 가 닿아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미술 분야에 ‘감상자의 몫(beholder’s share)’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그림이나 사물의 물리적 형태나 색감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감상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지각과 경험을 토대로 본 것에 대해 추측하고 연관시키며 재구성하기 때문에, 단순히 시각을 통해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이해하는 과정도 각자 나름의 잦은 오해들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때론 많이 빗나간 오해로 인해 먼 길을 돌아 이해의 가닥을 잡는가 하면, 어떨 땐 뜻밖의 좋은 오해로 인해 새로운 이해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오해’는 ‘이해’로 가는 길의 필수 경유지인 셈이다. 자기 삶의 감상자로서 ‘감상자의 몫’을 맘껏 누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삶에 대해 자신만의 오해를 가진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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