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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y 17. 2024

대구 여행기 1탄: 갈수록 좋았다

몇 주 전부터 대구에 가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접하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대구에 대해 아는 거라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배웠던 '대구는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매우 덥다'라는 정보가 전부였지만, 그래서 더 가보고 싶었다. 원래 모르는 게 많을수록 새로운 법이니까! 남편이 월요일 월차를 내고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대구까지는 SRT를 타고 갔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면 동대구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늘 그렇듯 기차 안에서는 딱히 할 게 없다. 앞에 꽂힌 지역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창문 밖 풍경도 구경하다가, 그래도 무료해서 남편과 '루미큐브'라는 게임 어플을 깔아서 대결하면서 갔다. 루미큐브는 숫자를 나열하는 보드게임인데, 핸드폰 게임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역시 게임을 하면 시간이 순삭. 동대구역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린 나는,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뭐야, 너무 추운데?"


분명 날씨에 맞게 청바지에 반팔만 입고 갔는데 생각보다 찬 바람이 쌩쌩 불어 꽤 추웠던 것이다. 대구 더운 곳이라며...? 나는 닭살 돋은 팔을 계속 문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오후에는 더워졌다.)


동대구역에서 대구 중심지인 반월당역까지는 지하철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월당역은 공식 출구가 무려 23개로, 엄청 큰 지하상가 안에 있다. 배가 고파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점찍어놓은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기로 한 곳은 줄 서서 먹는다는 '유이쯔'라는 텐동 맛집. 오전 11시 좀 지나서 도착했는데 방금 오픈해서 우리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 우린 다찌석에 나란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하니 일식집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먼저 장국과 샐러드, 이어서 나온 텐동!


밥에 있는 간장 양념하고 같이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음, 맛있다. 다른 집 텐동보다 덜 느끼하다는 리뷰를 봤었는데 확실히 그랬다. 아주 빠삭한 식감은 아니었지만 튀김옷이 너무 두껍지 않아 오히려 좋았고, 맛도 딱 알맞게 간간했다. 밥이 조금 남았을 때 쪽파, 김가루와 함께 다시마물을 넣어 오차즈케처럼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맛집 인정이다. 여행지에서 줄 서서 먹을 정도로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동네에 있으면 자주 가고 싶어질 것 같은 곳이었다.


든든히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숙소에 가서 짐을 맡기고 더현대 백화점으로 갔다. 뭔가 구경할 것이 있을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서울에 있는 백화점과 비슷해서 딱히 볼 건 없었다. 4층에 있는 이케아 매장에도 가봤지만 강아지 인형들 혓바닥 위치가 다 다르다는 것 외에는 흥미로운 걸 발견하지 못했다. 빠르게 퇴장.


다시 거리로 나와 근대문화골목을 돌아다니며 풍경이 예쁜 곳에서 서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쉽게도 인생샷은 건지지 못했다.


고즈넉한 고택들


"카페 갈까? 아직 배부르지?"


남편에게 물었다.


"응, 아직 배부른데."


"그럼 소화시킬 겸 먼저 구경 다니자!"


원래 계획대로라면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어야 했는데, 둘 다 텐동을 먹어 배가 부르고 살짝 느끼한 상태라 디저트를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소화시킬 겸 '서문시장'과 '달성공원'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서문시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한낮의 태양이 뜨거워 선글라스를 쓰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마스크도 착용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조합으로 더운 날 오래 걷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서문시장은 규모가 꽤 컸다. 유명한 먹을거리도 많았다. 찜갈비, 호떡, 칼제비, 납작 만두, 떡볶이 등등.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다행히 우리는 먹을 생각으로 간 게 아니라서 눈으로 구경하며 빠르게 지나다녔다. 남편도 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정신없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시장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가끔 호떡 같은 간식만 사 먹는 정도. 이날은 목이 말라 오렌지 착즙주스를 사 마셨다. 그다지 달진 않았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충분했다.


오렌지 쭈아아압 쭈아아압 짜주심


빠르게 시장을 훑고 달성공원으로 향했다. 흠, 이쯤 되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뜬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행 와서 좋긴 한데 뭔가 엄청 재밌는 건 없는 느낌이랄까? 서울과 비슷해서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바다라도 보러 갔어야 했나?


"음, 이번 여행은 먹는걸 중심으로 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 막창과 뭉티기만 잘 먹어도 성공한 거야."


나는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달성공원도 별 기대 없이 갔다. 근데 웬걸, 상당히 좋았다. 동물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냥 큰 공원에 동물 몇 마리가 있나 보다 싶었는데, 아주 광활하고 잘 꾸며진 공원이었고 무엇보다 동물원이 기대 이상이었다.


공원이 진짜 넓고 조경이 잘 되어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사슴, 공작새, 물개, 원숭이, 곰, 호랑이, 코끼리 등 있을 만한 동물은 다 있었는데 심지어 무료입장이었다. 다들 더웠는지 그늘진 한쪽 구석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동네 공원에서 이렇게 가깝게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동물원에 올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물어본다. 이곳에서의 삶은 어떤지. 답답한지 행복한지. 매번 궁금하다.


사슴하고 눈 마주침


남편이 이 얼룩말 보고 삐져있을 때 나 같다고...


공원에서 사자를 볼 줄이야


동물들을 보며 거대한 공원을 한 바퀴 빙 돌자 슬슬 에너지가 바닥나서 다시 중심지로 돌아갈 때는 택시 찬스를 썼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페타임. 동성로에 있는 디저트 맛집에서 조각 케이크 2개를 포장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대구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스타벅스 지점이 있었다. 바로 대구종로고택점! 국내 최초로 고택을 개조해서 만든 스타벅스인데 매장이 너무 예뻐서 마음속으로 찜해두었던 곳이다.


한옥 스타벅스의 위엄 ㄷㄷ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 의자가 있는 자리는 다 찼고 신발 벗고 앉아야 하는 자리가 하나 비어있어 겨우 자리를 잡았다. 흑, 청바지 입어서 양반다리 하기 빡빡한데. 의자 자리가 훨씬 좋지만 따질 시간이 없으니 일단 엉덩이부터 붙여본다.


이 정도면 감성샷 합격인가요


남편은 아메리카노, 나는 이 지점의 스페셜 메뉴인 딸기 콜드폼 초콜릿을 주문했다. 당이 높지만 여행 중이니 잠시 눈을 감기로 했다. 여행할 때는 대부분의 제약을 내려놓는 편이다. 즐기려고 온 거니까! 여기저기 실컷 구경하고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쉬는 순간은 언제나 참 좋다. 힐링 그 자체. 창 밖으로 한옥 서까래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 내가 대구에 왔구나' 싶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국내의 낯선 지역에 와있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다.




카페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숙소에 가려는데, 체크인까지 시간이 조금 떠서 근처에 있는 소품샵에 들어갔다. 포스터를 파는 곳이었다. 어찌나 예쁜 것들이 많은지!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보세요 딩동댕 척척박사님


한 장 한 장 꼼꼼히 보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하나 구입했다.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맑은 바닷물이 가득한 포스터. 미니멀리스트라 실용적이지 않은 건 잘 안 사는데, 이건 그냥 사고 싶어서 샀다. 때로는 그냥 마음 끌리는 대로 한다. 내가 나를 우쭈쭈! 하는 방법.


포스터를 달랑달랑 들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숙소로 갔다. 숙소는 동성로에 위치한 토요코인 호텔. 어차피 호텔에서는 잠만 잘 예정이라 가성비 좋은 곳으로 골랐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1박 8만 원대인 일본 계열 호텔인데, 객실 상태도 깨끗하고 딱 중심지에 있어 위치가 매우 좋았다. 반월당역까지 5분 컷이다.


객실 상태 베리 굿
세수할 때 약간 옆으로 서야 한다는 단점이...


객실은 아주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컸고, 화장실은 좁았다. 캡슐 화장실 느낌. 그래도 전체적으로 깔끔해서 짧은 일정으로 대구 놀러 가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호텔이다.


숙소에서 잠깐 쉬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걸리버 막창'이라는 인기 많은 막창집에 가기로 했다. 웨이팅으로 유명한 곳인데 5시가 좀 넘은 시간에 가니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사실 막창을 먹는 건 나에게 도전이었다. 이전까지 막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2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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