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의 크루 에세이 11] 휴식을 위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코비드 19 때문에 재택근무를 한지 반 년이 다 되어간다. 일과 삶의 분리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에 휴식 기간이라고 명명할만큼 명시적인 휴식 기간을 가져본 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2020년 보다는 과거의 휴식 기간에 읽었던 책 하나를 추천해보려고 한다.
3년 전 무렵, 나는 UX디자인에 꽂혀있었다. 사람들의 경험을 디자인 한다는 UX 디자인에 큰 매력을 느껴, 어떻게 하면 UX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 있는지 사방팔방 알아보곤 했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배우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한 결과, 한 회사에 UX 기획(디자인) 포지션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을 한 후 1년 정도 열심히 일했다. 당시에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 마냥 즐겁기도 했고, 에너지도 넘쳤다. 1년 정도를 바짝 달리기만 해서 그럴까? 연말이 다가오니 조금 쉬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누가 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쉬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몸이 알려준 것 같았다.
'뭘 하면서 쉬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혼자 일주일 정도 해외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당시에 2년 정도 해외 여행을 안 가기도 했었고, 혼자 여행지에 가서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면 갔다와서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한 휴식지는 베트남 호치민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베트남에 가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은 연말이었다보니 따뜻한 남쪽에서 쉬고 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마침 친구가 호치민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겟 여행지로 눈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큰 이유 없이 정했다 보니 당연히 가서 무언갈 해야 한다는 아이템이 존재하진 않았다. 그냥 이것저것 보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여행을 준비하다보니 문득 좋은 숙소에서 유유자적 그림이나 그려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초등학교 이후 미술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가서 그림을 그린다는게 스스로도 좀 쌩뚱맞긴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당시 SNS에서 보던 여행 아이템에 꽂힌 것 같다..
그래도 하면 된다 생각은 있었기에, 일단 나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줄 책이나 영상을 하나 보기로 생각했다.
그렇게 정한 책이 '철들고 그림그리다' 라는 책이다.
이 책은 책의 목차를 보자마자 나에게 맞는 책이란걸 깨달아서 서점에서 바로 사버린 책이다.
잠시 책 설명을 해보자면, 이 책은 철들고 난 후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저자는 우연히 출장길에 본 한 예술가에 감명을 받아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고,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주변의 일상’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림 그리며 깨달은 것들을 이 책에 담아내었다.
또한 초보자도 지치지 않고 매일매일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에서부터 예술가가 될 때까지 단계별 방법을 담아놓았다.
여행 전 날 스케치북과 연필, 그리고 구매한 책을 가방에 담았다. 책은 비행기에서 처음 꺼내 정독해보았다. 글 분량도 적당했고, 그림 분량도 적당해서 굉장히 읽기 편했다.
초반에 나온 저자의 그림은 내 실력과 비슷(?)해보였는데,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이번 휴가에서 명작 하나를 낳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게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첫 날, 둘째 날에는 친구도 만나고 관광도 다녔다.)
참고로 처음 가본 호치민은 굉장히 역동적인 도시였는데 딱 내가 원하는 관광지였다. (1980년대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 당시 서울이 이랬을까? 라는 느낌을 받을만큼 활기차고 발전이 눈에 보이는 그런 도시였다.
역동적인 도심 관광을 뒤로하고 셋째날에는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작은 수영장이 하나 있는 주택이었다.
셋째 날은 아무 일정을 잡지 않고 그냥 그림만 그려보기로 했다. 일단 먼저 마음 내키는 대로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왔다. 그 후 점심을 가볍게 먹고, 숙소에 돌아와 햇살이 조금 새어 들어오는 창가 옆 탁자에 자리 잡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대단한 걸 바로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준비해온 연습장을 보고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이 삐뚤빼뚤 했지만 몇십번 반복하니 조금 윤곽을 잡을 수 있었고, 쉬워보이는 일러스트를 따라 그릴 수 있게 됐다.
초등학교 이후 몇 년만에 각 잡고 앉아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기분도 차분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런게 힐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그림만 그렸던 것 같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비록 그 다음 날부터는 생각보다(?) 일정이 빠듯해져 그림을 차분하게 앉아서 그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일정을 소화한 뒤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느끼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느끼는 점이지만 그림 그리기는 사람한테 정말 큰 안식을 주는 것 같다.
특히나 나 같이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사람마다 본인의 실력에 맞춰 그림을 그리면 되기 때문이다. 퀄리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평온함과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철들고 그림그리다' 책 덕분인 것 같다.
그러니 '휴가 때 뭐해보지? 라는 분들 ' 혹은 '그림을 못 그리시지만 한번쯤 그려보고싶다는 분들'에게 저 책을 추천드린다. 혹은 그림을 잘 그리시더라도 그림의 동기부여를 잃어버린 분들에게도 추천드린다.
(아마 책을 읽고 나시면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라는 작은 열망에 사로잡힐지 모르기 때문이다ㅎㅎ)
다음 에세이 크루에게 보내는 질문
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를 한 주 동안 찾아볼까요?
• 무엇을 할 때 가장 잘 쉬었다고 느끼나요?
• 요즘의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일주일의 유급 휴가가 생긴다면?
• 나에게 돈의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