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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Nov 23. 2020

[에세이 125] 어, 저녁은 먹었어?  

[ 여니의 크루 에세이 ]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번 주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고 소감을 남겨주세요. 



먼저 연락을 잘하지 않는 것도 유전일까. 아버지는 항상 "너는 나처럼 그러지 말고 먼저 연락 잘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리틀 김동섭(아버지 성함). 알겠다고 하면서도 나 또한 연락을 좀체 하지 않는다. 얼굴 보고 하는 대화는 좋지만 어쩐지 카톡이나 전화는 이상하게 부담스럽다. 특히 카톡이면 몰라도 전화는 아예 안 한다고 보면 된다. 덕분에 내 통화 목록에는 가족 혹은 남자 친구밖에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챙기고픈 마음에 연락은 항상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다. 이 순간에도 내가 연락해봐야 하는데 라고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은 내가 참 고마워했던 사람들인데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게 뭐 그리 어려운지. 결국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던 얼마 전, 가장 오랜 친구 하나가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의 병이 그녀의 몸을 잠식하고 나서야 그동안 자기가 많이 아팠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언제나 힘찬 그녀가 죽고 싶단 생각을 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연희는 먼저 연락 안 한다는 말. 그러고 보면 항상 먼저 연락했던 내 친구다. 이상하게 내가 힘들 때마다 연락이 와서 엄마라고 부를 만큼 신기하고 고마웠던 내 친구. 그녀라고 연락을 하는 게 마냥 좋아서 그랬을까. 연락을 먼저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언제고 반가울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부담스럽고 뭐고 이유를 막론하고 결국 톡 까놓고 보면 내 마음이 그 정도거나 연락하기 귀찮음이었던 것 같아 착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느 날처럼 퇴근하고 운동을 하러 가는 길, 그녀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할 말이 있지도 않았지만 저녁은 먹었는지라도 물어봐야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먹었다고 하면 그냥 끊어야지(여하튼 통화는 세상 어색해함). 아무 일 없이 전화하는 건 평소의 내가 전혀 아닌지라 어쩐지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통화 연결음 뒤로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순간 마음이 덜컹했다. 전화 꺼뒀던데 보면 연락 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안 그래도 요즘 더 힘들어하던 내 친구 그냥 피곤해서 핸드폰을 꺼뒀겠지, 라며 무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하다가 다시 전화해보려고 중간에 뛰쳐나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마침 그녀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엥? 나 전화 온 거 없는데?' 머쓱. 카톡만 하느라고 얼마 전에 바뀐 그녀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있었다니. 새 번호로 전화해 그냥 저녁 먹었는지 물러보려고 전화했다며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황급히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제대로 말을 건넨 것도 없지만 평소의 나와는 다른 행동을 조금이나마 꺼냈다는 생각에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제는 그 친구와 템플 스테이에 다녀왔다. 이런저런 이슈가 좀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명상 시간에 스스로에게 말을 건넬 수 있어 좋았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그거면 됐다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 친구가 좋았다니 다한 거지 진짜. 템플 스테이를 마치고 절 앞에 있는 카페에서 빵을 먹으며 이야기하는데 친구가 이야기한다. 


"그때 - 뜬금없이 저녁 먹었냐고 전화했을 때. 그때 진짜 고마웠어. 네가 먼저 나한테 전화한 게 처음이었잖아. 나를 진짜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엄청 힘이 되더라고." 


쑥스럽기도 하고 '처음'이라는 말에 처음은 아니라며 뜨끔해서는 펄쩍 뛰었지만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진짜 그 긴 세월 동안 처음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친구의 기억 속에 '먼저 전화한 연희'가 입력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를 챙긴다는 게 별게 있나 싶다 진짜. 저녁 먹었냐는 한 마디가 전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좀 내려놓고 연락이라는 저울에 내 무게를 조금 더 많이 실어야겠다. 마침 때는 다가오는 연말. 한해 마무리 잘하라고, 올해도 고마웠다고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꼭 인사를 건네야지. 




다음 크루에게 질문 :)

"어떤 사람들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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