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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Dec 02. 2020

[에세이 126] 내 일상에 집요하게 발을 담그는사람들

[ 정인의 크루 에세이 ] "어떤 사람들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나요?"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요즘 

집이 너무 좋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중얼거려서 

옆에 듣고 있던 동생이 '또 저러네'라고 할 정도이니. 무의식적으로 나는 계속 집에 가고 싶은가 보다. 


이런 집 사랑은 올 하반기를 관통하는 슬럼프와 꽤 높은 연관이 있는데, 

(잦아도 너무 잦은) 야근 속에서 '오늘은 집에 가면 몇 시간이나 쉴 수 있을까'라는 습관적 시간계산과 가끔 빠른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이게 무슨 일이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식구들 덕에 귀소본능이 더 심해졌다. 




자의적, 타의적(정확히 말하자면 시국에 의한) 이유로 여유시간에 잡에 콕 박혀있는 요즘.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거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지도 참 오래되었다. 


사실 이런 방콕 단절 생활이 내 나름은 시국을 이용하는 것인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약속을 미뤄두는 게 충실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도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어떻게 지내?'라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을 피하고 싶어서, 내 눈에도 빤히 보이는 슬럼프를 '아 요즘 별로야 근데 1년째 점점 심해지는 중!'라는 말로 끝낼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요즘 내가 슬럼프인가? 했던 게 사실 사회생활이, 인생이 이런 건가?라는 생각으로 변해가면서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내 일상에 끊임없이 발을 집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아주 소소한 것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 


평소의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 보다 '나 이거 보고 니 생각났어!'라는 말로 안부를 묻다 보니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괜히 멋쩍다.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음) 


사실 이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 코로나 블루, 비슷한 시기에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는 우리 중 누가 얼마나 활기차고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까? 그런데 이렇게 '자신' 만을 생각하기에도 너무 바쁜 요즘 일상 속 작은 것들에서 서로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노래를 듣는데 네 생각이 났어, 여기를 갔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았어, 이건 완전 네 거야 

혹은 너랑 이런 일을 했던 게 생각났어 라는 이야기들로 빡빡한 자신의 삶 속에 내 발 하나 들일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삶에서도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사람들 


그렇게 끊임없이 나의 삶에 자신의 발을 들여놓고, 

자신의 삶에 내 흔적들을 비치해두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기 때문에 요즘의 방콕 집콕 생활 속에서도 예전보다는 외로움 없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한 해의 슬럼프를 겪으며 

내 주변의 환경, 나의 진로와 직업은 아주 엉망으로 어질러져있는데 이상하리만치 관계는 안정적인 것이 참 신기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욕심이 줄어서인지 혹은 성숙하고 앙증맞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인지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일상 속 작은 공간을 서로를 위해 비워두는 그 사람들 덕에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매듭을 잘 지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소소하지만 익숙하게 오래 함께한 물건은 손때가 탄 만큼 소중해진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날이나 실수하기 싫은 날은 그 손때 탄 물건을 찾기 마련이다. 요즘은 손때 문은 친구들이 삶의 작은 균열들 속에 들어앉아 평평한 바닥을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내가 예전만큼 활기차지 못해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불쑥불쑥 내 삶에 발을 집어넣으면서 우리는 아주 사소하고 잔잔하지만 나중에는 바다처럼 커질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암 그렇고말고 


어떤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나요?라는 질문에 눈을 감고 친구들을 스윽 둘러보면 

'어느 상황에서도 서로를 민망하게 하지 않고 삶의 서로의 자리를 비워두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교집합 속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있다. 


나이와 경험이 깊어질수록 각자의 고집과, 삶의 방향, 패턴이 익숙해지는 만큼, 

나부터도 타인이 내가 생각하던 길에서 벗어나면 날카로운 눈빛과 감정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도 서로를 민망하게 하지 않는 소중한 사람들이 나로 인해 삶에 균열을 메꾸고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서로가 그럴 수 있다면 삶이 계속 슬럼프라고 해도 도장깨기 하면서 조금은 더 버텨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크루에게 질문!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곡을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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