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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Dec 10. 2020

[에세이 127] Cheap Sunglasses

[하비엘의 크루 에세이]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Q)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곡을 하시겠어요?

A) John K- cheap sunglasses


2020년 12월 31일, 하루를 장식할 bgm이라면 이 노래를 선택하겠다.

내년을 맞이할 때는 육상트랙 위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주자처럼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싶지 않다. 대신에 사우나 온탕에 몸을 담글 때 근육이 풀리는 그 느낌처럼 온몸에 힘을 빼고 싶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노래의 멜로디는 신기하게도 몸에 긴장을 풀어준다. 그리고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몇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요새 밥 먹을 때나 청소할 때 습관적으로 듣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내내 스탠바이를 취하고 있었다. 잠시 근육을 풀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가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래의 주인공은 비싼 선글라스 보다 값싼 선글라스를 선호한다. 비싼 선글라스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부주의함으로 인해서 선글라스가 훼손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행여나 비싼 걸 샀다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히 싼 선글라스를 산다.


내가 나름대로 의역을 하자면 여기서 선글라스는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을 알기에 본인은 그 모든 감정을 사전에 차단한다. 겁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공감이 됐다.


나의 에세이를 읽은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2020년 시작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였다. 정말이지 나의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며 아주 순조롭게 시작된 한 해였다. 2020은 시작부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며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한 해였다. 


하지만 시작과는 달리 모든 것이 꼬이며 26년 인생 중 우여곡절이 가장 많은 1년이 되어버렸다.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계획에 없던 취업준비에 뛰어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향성을 잃은 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처음부터 내가 방향성이 아예 없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자조하기도 하고 남들이 뛰는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보기도 했다. 어떤 길에서는 남들보다 잘 달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내 길이 아닌 곳에서 아무리 잘 달려도 결국 내 길을 다시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2020년 하반기가 끝나간다. 


나도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사전에 큰 기대 없이 2020년을 맞이 했다면 나름 만족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까.  나는 올해에 아직 그렇게 비싼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긍정의 힘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내 성격상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포기를 미리 선택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대신에 언젠가 쓰게 될 비싼 선글라스를 위해서 싼 선글라스를 쓴 채 여기저기 긁히며 때를 준비하려 한다. 


그래서 내년을 맞이할 때는 몸에 힘을 뺀 채로 시작하고 싶다. 

지금까지 찾아올 기회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왔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그 기회를 기다려본다. 


다음 크루에게 질문!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나요?

[에세이 126] 내 일상에 집요하게 발을 담그는 사람들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에세이 125] 어, 저녁은 먹었어?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

[에세이 124] 나부터 들여다보기


  언제 죽을지를 결정한다면 몇살에 죽고 싶은가요?

[에세이 123] 한 백년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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