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엘의 크루 에세이]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Q)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곡을 하시겠어요?
A) John K- cheap sunglasses
2020년 12월 31일, 하루를 장식할 bgm이라면 이 노래를 선택하겠다.
내년을 맞이할 때는 육상트랙 위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주자처럼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싶지 않다. 대신에 사우나 온탕에 몸을 담글 때 근육이 풀리는 그 느낌처럼 온몸에 힘을 빼고 싶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노래의 멜로디는 신기하게도 몸에 긴장을 풀어준다. 그리고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몇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요새 밥 먹을 때나 청소할 때 습관적으로 듣고 있다.
가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래의 주인공은 비싼 선글라스 보다 값싼 선글라스를 선호한다. 비싼 선글라스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부주의함으로 인해서 선글라스가 훼손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행여나 비싼 걸 샀다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히 싼 선글라스를 산다.
내가 나름대로 의역을 하자면 여기서 선글라스는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을 알기에 본인은 그 모든 감정을 사전에 차단한다. 겁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공감이 됐다.
나의 에세이를 읽은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2020년 시작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였다. 정말이지 나의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며 아주 순조롭게 시작된 한 해였다. 2020은 시작부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며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한 해였다.
하지만 시작과는 달리 모든 것이 꼬이며 26년 인생 중 우여곡절이 가장 많은 1년이 되어버렸다.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계획에 없던 취업준비에 뛰어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향성을 잃은 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처음부터 내가 방향성이 아예 없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자조하기도 하고 남들이 뛰는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보기도 했다. 어떤 길에서는 남들보다 잘 달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내 길이 아닌 곳에서 아무리 잘 달려도 결국 내 길을 다시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2020년 하반기가 끝나간다.
나도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사전에 큰 기대 없이 2020년을 맞이 했다면 나름 만족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까. 나는 올해에 아직 그렇게 비싼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긍정의 힘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내 성격상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포기를 미리 선택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대신에 언젠가 쓰게 될 비싼 선글라스를 위해서 싼 선글라스를 쓴 채 여기저기 긁히며 때를 준비하려 한다.
그래서 내년을 맞이할 때는 몸에 힘을 뺀 채로 시작하고 싶다.
지금까지 찾아올 기회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왔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그 기회를 기다려본다.
다음 크루에게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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