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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D Jan 10. 2020

빅 피쉬: 내가 동화를 좋아하는 이유

<팀 버튼의 빅 피쉬 (Big Fish)>


실제로는 황 수선화 꽃다발을 받았을지라도, 받은 마음은 황 수선화 밭만큼의 사랑.


 주인공 윌의 아버지는 항상 동화 같은 이야기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윌은 허풍처럼 들리는 아버지의 모험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항상 언어라는 겉 포장지에 싸여 있었고, 윌은 그 겉 포장지를 까서 날것의 아버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세가 위독한 상황에서마저 그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고, 그 이야기가 곧 자신이라고 말한다.    




*현실과 감정의 경계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보편성이 진리를 가지는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보는 주관적인 세상을 놓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보편적 진리’는 있어도 '절대적 진리'는 가지기 어렵다.

 사회심리학을 배우다 보면,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인간의 뇌는 편리함을 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정신적 소모가 굉장히 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휴리스틱’이라는 단순한 규칙을 따르기도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 또한 그럴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무게와 감정의 무게를 잰다면 어느 정도 일까? 내가 볼 때,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문제는, 감정에 달려있는 것 같다.

 ‘빅 피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하나 떠올려 보자면, 단연 황 수선화 프러포즈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넓게 깔린 황 수선화 밭을 보며, 누군가는 '에이- 저건 좀 오버다-'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감정의 표현이라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황 수선화 꽃다발을 받았을지라도, 받은 마음은 황 수선화 밭만큼의 사랑.


 감정이란, 느낌이다. 가끔씩 우리가 사랑을 고백하며 시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기에 저 아름다운 황 수선화 프러포즈가 상상 속에서 화려하게 꽃 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잉어는 좁은 어항에서 자랄 때는 조그만 채로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큰 연못에 넣어보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좁은 어항일까, 강일까?


 좁은 어항 속의 물고기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만큼의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작은 물고기는 꿈틀대는 세상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세상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눈으로 빛을 본 물고기는 더 이상 자신이 작은 물고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큰 물고기가 되기 위해, 자신의 무대를 옮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의 대사가 말해주듯 모든 물고기가 강에 간다고 큰 물고기가 될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큰 물고기는 잡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길을 갈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난을 겪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고, 처음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고기라면, 다른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힐 두려움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큰 물고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자신이 큰 물고기가 될 수 있음을 꿈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는지 알고 그대로 정진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언어로 꾸며진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하나의 사실이 된다. 이를 어찌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그 자체가 그의 삶인데.


 만약 강에 살고 있음에도 자신이 큰 물고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물고기가 있다면, 그는 늘 세상을 피하는데 급급할 것이다. 심지어는 누군가 자신을 잡아 어항에 넣어두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강에서 태어났든, 우리가 느끼는 만큼 또 용기 낸 만큼의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그에게는 허풍 같은 이야기로 표현된)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발견하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적인 상상을 굉장히 좋아했다. 건조한 낱말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선명한 세상을 흐릿하게 바라보는 게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우울증'에 관한 연구를 보다 보면 '착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더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인간은 조금씩 착각을 하고 사는 게 정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좋다고 한다.

 동화적인 상상이란 어쩌면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들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세상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꾸준히 동화를 좋아할 운명임을 직시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절대적으로 감정을 무시하고 살아갈 순 없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감정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따른 대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더 큰 물고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큰 물고기가 되는 꿈을 가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마음이 얼마만큼인지 깨닫고 스스로를 위해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난 윌의 아버지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분명 현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거지만, 스스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을 한없이 표현했으니까. 그거면 된 것이다. 그거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by. UD(유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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