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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an 23. 2021

개인적인 머핀

블루베리 머핀

 머핀이라 하면 블루베리 머핀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도 하고, 그거 말곤 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또 곧장 드는 생각이, 머핀에 블루베리를 넣었다는 것이 상당히 괴상하다는 것이다. 머핀은 주로 아침 식사로 등장하지만 설탕과 밀가루, 달걀에 레브닝 재료를 기본으로 만들어지는 스위트 브레드, 즉 케이크에 더 가까운 디저트 같은 제품이다. 파운드나 일반적인 케이크보다는 크럼/조직이 거칠고 가벼운 편이지만 대략적으로는 부드러운 케이크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당히 단 종류의 케이크 반죽인데, 거기다 산도가 있는 과일을 넣는다니, 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 참 신기한 발상이다.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아침 식사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비교적 건강하거나 신선한 재료를 넣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블루베리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건강에 이롭지 않은 음식에 비교적 좋은 식재료를 더하면서 '건강한 맛', '건강을 생각해서'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을 볼 때 참 재밌다. 차라리 그 식재료가 맛있고 조화로워서 더했다고 했으면 한다. 이미 당분이 그득한 요거트에 견과류를 얹고 '건강한 아침식사'라는 부연설명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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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핀의 대표 격이 된 블루베리 머핀은 레시피도 참 다양하다. 처음 베이킹을 시작했을 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종종 만들었는데, 블루베리 머핀도 개중 하나였다. 자주 만들었던 것은 황설탕을 이용한 블루베리 머핀인데, 이 레시피의 특별한 점은 굽기 직전 얹는 크럼블, 또는 스투르셀 토핑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 만들어 보고선 그게 맛있었고, 또 그 이후로 자주 만들기도 해서 달리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최근, 오래전에 만들다가 더 이상은 자주 만들지 않게 된 디저트들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블루베리 머핀을 다시 구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머핀은 왜 안 구웠을까? 좀 험블 한 선택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스킬이 좀 생기고 나니까, 어렵고 생소한 것들을 만들고 싶었던 탓 같다. 머핀을 안 만들어 본 지 2년은 됐으려나. 머핀 반죽의 되기가 어땠는지, 블루베리를 얼마나 넣어야 적당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믹스를 하며 반죽을 보니 이렇게 되직했나 싶다. 파운드 반죽을 다루다 와서 그런가? 내 기억대로라면 레시피대로 하면 블루베리가 너무 많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경험치 때문에 분명히 아는 것은 각 머핀은 크기가 작으니 파운드케이크 와는 다르게 굽는 시간이 짧다는 것, 그리고 블루베리가 바닥으로 너무 가라앉지 않게 하려면 반죽에 담기 전에 베리에 밀가루를 뿌려 적당히 코팅해주는 방법이 있다는 것 정도다. 자세한 방법은 이렇다.

 팬에 머핀 종이를 깔고 반만 차도록 반죽을 담고, 밀가루에 입혀 놓은 블루베리 몇 개를 담는다. 참고로 반죽에 블루베리를 미리 섞어 담으면 블루베리가 형태가 쉽게 뭉개져서 굽고 나서 베리의 텍스처가 사라진다. 으깨져 반죽 안에 마블링된다고 보면 되는데 사실 반죽에 블루베리 잼처럼 리본이 생기니 그것도 나쁠 건 없지. 담은 블루베리 위에 한번 더 반죽을 얹고 그 위를 스트루셀 토핑으로 덮는다. 이렇게 층을 쌓듯 반죽- 베리- 반죽 순서로 담으면 그냥 섞어 담는 것처럼 모든 베리가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한 군데로 몰리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나름 조종된 무작위의 느낌이라고 할까.

 스투르셀을 덮으면 블루베리가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블루베리 몇 개를 따로 뒀다가 마지막에 장식하듯 콕콕 얹어주면 더 보기 좋은 머핀을 만들 수 있다. 머핀 굽는 시간은 쿠키처럼 꽤 짧아서 시간이나 의욕은 없어도 뭐 하나 이뤄야겠다 싶을 때 참 좋다. 머핀 하나가 작으니 속이 덜 구워졌을까 하는 걱정도 별로 없고, 좀 더 구워도 너무 익어 질겨질 일도 별로 없다. 15분이 지나 완성된 꺼낸 머핀을 보니 참 아쉽다. 이렇게 멋진걸 왜 이렇게 안 만들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먹어 마땅했으나 먹지 않은 블루베리 머핀은 도대체 몇 개였나? 100개? 200개?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던 친구. 그러나 길을 걷다 들려온 노래, 갑자기 맡게 된 냄새 때문에 불현듯 떠오르며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의 목소리까지 한 번에 내 기억으로 찾아온 듯 한 느낌을 이 머핀이 줬다고, 다소 드라마틱한 감상을 남겨본다.

 스트루셀이 올려진 머핀은 그냥 머핀에 없는 다채로운 질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 머핀이라는 것은 반죽에 블루베리며 초콜릿, 너트 등 원하는 것을 추가한 작은 케이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후에 먹는 간식이나 디저트로도 모자람이 없다. 내가 언제나 만들어 온 이 머핀은, 따뜻하게 먹을 때면 연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다 크럼(crumb)이 굵직하지만 절대 거칠지 않다. 가볍지만 풍부한 맛을 지닌 단맛의 스펀지 케이크의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되지만, 사실 스펀지 케이크라는 말도 조금은 그 질감을 묘사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머핀 안에 담긴 블루베리는 원하는 양을 사용하면 되지만 너무 많거나 부족하면 식감에 균형이 깨진다고 생각한다. 블루베리는 냉동이건 신선한 과일이건 상관없이 사용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예전에 애써 신선한 블루베리를 사용할 땐, 베리 사이즈가 너무 크기도 했고, 반죽에 담다 보면 쉽게 형태가 뭉그러져 냉동으로 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는 것을 알았다. 부드러운 케이크와 블루베리 베이스 위는 시나몬과 버터, 황설탕으로 만드는 스트루셀 또는 크럼블이 올라간다. 애플 크럼블이나 다양한 파운드케이크, 쿠키의 토핑으로 사용하는 스트루셀이나 크럼블을 얹어 구우면 아래의 반죽과 착 붙으면서 부드럽게 바삭거리는 식감 만들어낸다. 아래 반죽이 부드럽고 촉촉한 것일수록 크럼블의 상반되는 식감과의 조화가 더 빛난다. 그래서 나는 이 머핀을 먹을 때, 가능한 머핀 탑과 아래 케이크 부분을 모두 한입에 맛보려고 애쓰는데 이게 사람들이 보는데서는 꽤 민망하다. 그래서 역시 좋아하는 음식을 제대로 가식 없이 즐기려면 혼자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최대한 맛있는 한입을 달성하기 위해, 입을 세로로 크게 벌리고 코 주변을 찡그리고 때로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 가며 한입 베어 물면서 우아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렇게 못난 얼굴로 한입 베어 물은 머핀은 한쪽에서 부드러운 케이크의 식감, 다른 한쪽에선 버터와 시나몬 맛이 가득한 스트루셀의 바삭함이 느껴진다. 크게 한입 베어 물은 입안 가득 머핀. 그 입을 드디어 하나로 모아 꼭 물어보면 그 안에서 터지는 블루베리가 느껴지고, 아 이걸 블루베리 머핀이었지 참. 머핀 팬에 각각이 1인 크기로 구워진 작은 케이크 여러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기에 좋으 머핀은 분명 독자적인 제품으로서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부드럽고 가볍지만 풍부하고 든든하다.

 시나몬이 들어간 스투르셀이 더해지면서 이 머핀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며 무의식적으로 함께 주문하는 계산대 앞의 평범한 머핀에서, 추운 겨울 아침, 갑자기 공짜로 얻은 휴일 같은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머핀으로 변모한다. 보통 머핀에 대해서는 식사 대용, 중간 간식 정도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시나몬 향 가득한 바삭한 스트루셀을 얹은 이 머핀은 훌륭한 디저트나 하루를 멋지게 열어줄 완벽한 커피 동반자가 되고도 남는다. 종종 출근을 해서나 주말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면 누군가와 함께 마주 앉는 것도 좋지만 아침으로 먹을 머핀 한 개나, 요거트와 그라놀라 같은 것을 앞에 두고 그것을 상대 삼아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침이지만 나에게는 꽤 즐거운 고독감이 느껴지는 시간인데, 남이 보면 또 굉장히 반사회적인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작은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 머핀 한입을 베어 물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줄어 들어가는 머핀을 바라본다. 사실 이 때는 휴대폰도 보고 싶지 않고 별다른 중요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단지 어떻게 하면 남은 약 5분의 이 시간을, 머핀에게 할당해 줄 나의 아침 커피 반잔을 어떻게 더 멋지게 즐길지 고민할 뿐이다.

 사람마다 머핀을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핀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고 알려져 있는 머핀 탑, 즉 머핀 윗면을 먼저 다 먹어버리는 사람, 머핀지를 떼고 아래부터 먹는 사람, 어려워도 아래위를 골고루 한입 한입 먹는 사람, 대중 없이 아무렇게나 먹는 사람 등 몇 가지 부류다.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최근에 결정했는데, 전자레인지에 30초 이상 돌려 따뜻해진 머핀을 접시에 올려놓고 머핀지 바닥을 제외한 옆면을 떼어 펼친다. 이때 바닥면은 여전히 붙어있게 두는 편이다. 그런 다음 버터나이프로 머핀을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갈라 펼치면 단면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머핀이 식기 전에 자른 양쪽에 버터를 바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꼬집듯 약간의 소금을  뿌린다. 식기 전에 어서 크게 한쪽 머핀을 한입 베어 문다. 너무 크게 베어 물어 막히는 목을 커피 한 모금으로 넘기고, 바른 버터가 반쯤 녹은 다른 한쪽 머핀도 한입 먹는다. 바쁘지 않다면 그렇게 한번 더 버터와 소금을 얹어 나머지도 먹는다. 종종 커피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머핀만 다 먹어버릴 때도 있다. 정말로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종종 우리 앞에 커피가 있다는 것, 멋진 음식이 있다는 것 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마저도,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지

24시 해장국집인지 잊게 하는 대화와 시간처럼. 내가 좋아하는 머핀이, 내가 온전히 혼자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다른 디저트 제품과는 다르게 머핀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한 덩이 행복 같다. 모양 자체가 나누어 먹자고 하기엔 참 애매하고, 혼자 다 먹어도 민망하지 않을 크기로 만들어진다. 혼자 집중하여 즐기기에 적당하니 디저트를 통한 조용한 명상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혼자 식사를 하면 자연스레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음식, 또는 내 조용한 시간을 충만하게 만드는 음식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머핀을 먹느라 제쳐 두었던 뜨거운 커피가 그사이 식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커피의 산도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럴 땐 커피로 넘기던 머핀의 감촉을 기억하며 재차 명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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