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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Apr 06. 2021

베이킹과 주체적 삶

 케이크와 쿠키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만든 것을 먹는 것도, 남을 위해 만들어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니며 맛있다는 디저트 레스토랑이나 베이커리를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내가 베이킹을 하지 않았더라면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를 찾으러 다녔을까?

 다짜고짜 디저트를 좋아한다기 보단 베이킹이 요하는 준비와 동작들을 포함한 그 활동들이 좋고 내 손에서 디저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은 내가 만들어내고 컨트롤하는데서 내 삶 한 부분에서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느끼는데,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일 없이 상황을 마음껏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다. 베이킹 도중 스트레스로 폭발하기도 하는 나를 감내해야 하는 남편의 입장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않았다. 어쨌든 내 삶 안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 또 무엇이든 하나라도 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삶을 다채롭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지금의 세상은 이미 많은 면에서 살기 좋게 되어있고, 운 좋은 몇 퍼센트 안에 들었다면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가 없다. 집을 지을 줄 모르고, 신발을 만들어 신을 줄 몰라도 나 대신 그것을 해줄 사람이 있고 굳이 뭐든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해도 된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삶은 살아지고 원한다면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삶도 살 수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원초적 동물 같은 위기감은 없다고 봐야겠다. 쉬워진 이 삶 속에서도 우리는 꿈틀대며 존재의 이유를 찾고 또 저기 있는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어려움과 게으름이라는 벽에 다다를 때 까지는. 그리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그 시간을 허망하게 흘려보낸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황무지 한가운데 내가 우물을 파는 것이 힘들고 막막할 것이며, 또 도구가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 그것을 나 대신하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목이 말라죽어버리는 그런 삶이 되기도 한다.

만들고 남은 시트와 초콜릿 버터 크림으로 만든 케이크 선물하기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획기적인 의학적 발견으로 인간에게 생명 연장을 선물하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 역사 속에 내 발자취를 남기며 인류의 득이 된다면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100% 실현하고 떠나는 것일까? 그렇게 실존적 차원으로서의 내 존재의 이유를 가장 잘 증명할 수 있을까? 살기는 편해졌어도 잘 먹고 잘 살아가기에는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결코 녹록지 않은 요즘의 삶이라는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삶이란 바로 주체적 삶이 아닐까? 세상을 이끌 수 없다면 나 자신이라도 이끌어야 하지 않나? 메마른 땅을 일궈 문명을 창조하거나, 세기의 발명으로 난치병을 치료했던 사람들의 삶의 첫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몰랐던 것을 배워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가고 결론적으로는 그 생각이 세상을 바꾸었다.  내가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 둘 씩, 아는 것을 늘려가고 남들의 생각과 기술에 의지해야만 하는 일들을 없애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실용적 기술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구를 만들고, 간단한 수리를 하며. 내 삶에 필요한 일들을 위해 휴대폰 화면 속 전문가를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첩에 구상을 하고, 재료와 연장을 준비해 무언가를 시도하고 성취하는 삶이란 참 멋지다. 얼마 전에는 발코니 바닥에 나무 데크 모양의 조립식 타일을 깔았다. 오전 내내 이른 봄의 햇살을 받으며 그러고 있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올려다보며 뭘 그렇게 하고 있냐는 질문에 데크 타일을 깔고 있다며 설치하고 있던 한 조각을 보여주니 "아이고 여름에 좋겠네"라고 덕담을 해주는 것은 결코 싫지 않은 덤. 작은 새집을 만든 것 보다도 못한 작업이지만 두 시간에 걸쳐 이리저리 고민하고 고쳐가며, 조금은 동네 시끄럽게 설치하고 나니 누가 보고 부러워하지 않아도 내 눈을 기쁨으로 빛났다. '내가 다 깔았어...!'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배달 서비스로 쉽게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고, 사람을 불러 막힌 변기를 뚫을 수도 있다. 눈 앞에 잘 나와 있는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내가 또 다른 선택지를 직접 만들고 가능성을 확장하는 행동들을 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주체적 인생을 연습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크고 작은 기술을 터득해 가는 것이 삶의 빈칸을 채워 나가는 것이라면 무엇을 배워서 연습하여 내 장기로 만들어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삶의 크기를 확장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내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감정의 경험을 추가해가며. 잘 늘어나지만 절대 터지지 않는 탄성 좋은 풍선처럼 내 삶의 크기는 계속해서 커지고 더 높이 떠오르며 조금 더 높음 차원의 인간으로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랬던 것처럼 숲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자연을 도구 삼아 오직 내 힘으로만 살아가야지만 주체적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인도에 떨궈져 어쩔 수 없이 생존하는 것 말고, 편할 수 있음에도 내가 불편함을 겪으며 무엇을 해결하는 것, 그 강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다. 가만히 있을 때도 등 대고 누워있기보단 언제든 원하는 방향을 향해 일어설 수 있도록 똑바로 앉은 자세로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 주체적 삶의 시작일 것 같다.

 주체적 삶, 즉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시작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이 있다. 내가 먹을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알고, 남에게 맡기는 일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은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자기 영역을 확보한다. 내 홈베이킹의 짧은 역사와 경험 속에서 뿌듯했던 때는 화려한 케이크나 멋지게 구워진 파이를 만들었을 때가 아니라, 가만히 집에 있다가  '초콜릿 칩 쿠키가 먹고 싶은데 쿠키 반죽이나 좀 만들까?’ ‘크림치즈 남았으니 파운드케이크를 만들던지 해야겠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드는 때였다. 마음에 부담이 없고, 막막한 기분이 들지 않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데, 그것이 내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보다는 어느덧 주어진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먹고 싶은 맛을 내가 원할 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주는 만족감이 꽤 크다.

내 가족이 먹을 빵은 내가 만들기

 쿠키를 만들다가도 문득 이런 것을 큰 걱정 없이 별 다른 애를 쓰지 않고 이렇게 하고 있다니- 새삼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어떻게 하다 반죽까지 무사히 만들어서 오븐에 넣고 있게 되었는지 이전 과정들을 거쳐 온 것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다니 참 신기하고 뿌듯하다. 케이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도 어색하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어디서 케이크를 살까, 보다는 어떤 케이크를 만들까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삶. 친한 사람의 생일에는 뭘 선물하지? 보다는 무슨 케이크를 만들어줄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한다. 쿠키가 먹고 싶을 때 나가서 사 오거나 주말에 베이커리 방문을 계획해야 할 필요 없이 집에 있는 재료와 도구로 손쉽게 그것을 만들 수 있고 거기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는 그것이! 가족이 피칸파이를 먹고 싶다고 할 때, 친구가 전에 먹었던 파운드케이크가 맛있었다고 할 때 망설임 없이 그것을 다시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할 수 있는 내 작은 능력이 고맙다.

  실은 오래된 고심이기도 했지만 최근 강아지 산책을 하다 정말 뜬금없이  생각이, 내가 싫더라도 대다수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폄하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폄하는 어디서 왔을까. 가벼운 제누아즈 시트 생크림이 올라간 케이크는 지루한 일본식 디저트이며, 내가 좋아하는 식의 쿠키야말로 정답이며 다른 것을 좋아한다면 그는 쿠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우이씨! 이렇게 무형의  가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내가 혼자만 무엇을 좋아했던 것이 답답해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배에 승선해주기를 바라던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도 다수의 의견이고 싶다.  나는 브라우니 맛에 있어서 소수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고민했던 것이, 나와 다른 타인의 입장을 비판하고  의견을 최고의 것으로 놓는데 일조했던  같다.  분명히  것은, 여전히 나는 가볍게 사라지는 한국식 제누아즈 케이크가 좋지 않고, 텁텁한 브라우니와 뚱카롱, 의미 없는 빵들이 싫다. 역시 내가 만드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은데,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만 좋아하면 그만이고 이것에 대해 세상을 설득할 필요가 없는 이지 않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고귀한 . 나와 동의해줄 필요도  편에 합류할 필요성도 없는 이유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남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뿌리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의 가치는 훨씬  커진다. 그것을 인지하고 살다 보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순간,  마음에  가깝고 진실한 결정을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주체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시간이 남아 만드는 스콘

 돈을 벌고 의식주를 관리하고, 가족을 챙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 그 인생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복잡하지 않은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것이 베이킹이지만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내 생활은 먹고 자고, 강아지를 산책하는 기본적 삶 외에 베이킹이라는 꽤 무거운 일정이 더해져 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일지언정, 이렇게 더해진 베이킹 생활은 내 하루의 시간을 뻬앗아 갔다기 보단 추가적 삶을 만들어 더 많은 생각과 문제 해결 기회를 주었고 결론적으로 내 하루와 일주일을 이전보다 확장해주었다. 어떤 운동을 꾸준하게 하거나 열정적으로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을 그것에 쏟아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느끼는데 그것이 이런 이유에서 일까? 아무것도 안 하고 주말을 보내며 안정과 마음의 위로를 받는 성격이라면 참 편하고 좋겠으나 타고나기를 그렇지 못한 나는 매 주말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더 피곤하고 바쁘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주말이면 평일보다도 일찍 눈이 떠지는 괴상한 습관과 쉬면 쉴수록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기보단, 더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감정. 이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조금 더 꽉 찬 인생을 살기 위해 이미 바쁜 삶에 할 일을 더해본다. 그러다 보면 이미 바쁘다고 느꼈던 하루하루의 일상은 실은 내 삶에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요소가 되고 더 쉬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새 또 다른 무언가를 더할 여유 공간이 생겨나는 식으로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다! 나 스스로 혼자 저어 가는 노가 어느새 추진력을 얻어 모터 달린 보트를 앞질러 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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