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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Feb 25. 2021

한계가 주는 자유와 영감

<어두운 계곡, 이끼 덮인 바위들>케이크





 영감을 받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창작물로 실현되는 과정은 신비롭다.  그것은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 다시 한번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며 곱씹어 보면 때로는 매우 낭만적이기도, 또 비논리적이기도 하다. 나는 오랜 시간 미술, 디자인 학생으로 살았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표현하며, 또는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왔다. 표현 자체가 중요할 때가 있었고 표현할 것을 생각하는 시간에 치중하기도 했다.

 영감은 우연을 가장하여 나타난다. 종종 새롭다고 느껴지는 영감이 되는 이미지는 실은 정말로 새롭거나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던 생각들에 대해 맞다고 공감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듯이 나타나 내 결정에 용기를 북돋워 주는 계기처럼 느껴진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 세상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이상함을 나조차도 나에게 설명하지 못하며 살다가, 우연히 읽은 문장 한 구절, 두꺼운 미술 서적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본 그림 한 점에 '아 이것이 내가 설명하려던 그것이었다'라며 영감을 받았다고 느낀다. 또는, 나도 모르게 마음과 머리에 써내려 오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을 표현해주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인지도 못 하고 있던 내 생각들을 들킨 기분, 낙관적으로 보자면 길 가다 잃어버렸던 일기장을 찾은 기분이라고 해야겠다. 누가 보지는 않았을까 조급한 마음도 든다. 결론적으로 영감이라는 것은, 나에게 분리 된 세상에 있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던 자리에 있으면서 내가 눈을 얼마나 크게, 또 어디를 향해 뜨고 있는지에 따라 나타나기도 안 나타나기도 한다.

 런던에서 수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인이 박이도록 반복했던 것은 영감을 주는 소재를 실험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키고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결과물을 얻어내는 연습이었다. 그것에 심취하다 보면 때로는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결과물이 안중에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어쩔 땐 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만들어 내고픈 결과물이 있어서, 어떤 근본적 생각에서 그것이 비롯되었는지 역으로 도출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종종, 갑자기 찾아온 영감이나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운 소재가 너무 멋져 설레하며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다 막상 그것을 발전 시켜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거나, 그 영감이 사실 그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 이상으로 더 이상 나에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또는 그와 반대로 가볍게 얻은 영감이 너무 쉽고 빠르게 마음에 드는 결과를 준다면, 그것 또한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분명 엄청난 것을 만들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영감, 또는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영감에서 시원시원하게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고 앞이 막막할 때가 온다.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사실 기다려봐야지 알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다리는지다.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찾으면 그것에 대한 당장의 발전 방향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고민하고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줘야 한다. 좋은 영감은 때로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어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구멍 하나, 갈라진 틈새 하나 없어 열어볼 방도가 없다. 그걸 이리저리 굴려보고 들고 다니며, 마음속이 이고 지고 다니면서 곱씹다 보면 불현듯 나타나는 수수께끼의 힌트처럼, 그 단단한 껍데기를 깰 수 있는 연장을 얻게 된다. 그러면 경험이 생기고 차근차근 그다음 껍데기를 깰 방도를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된다. 계획을 세우고 실험을 해서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지 고민할 수 있는 바로 그 여지가 나타나는데, 거기서부터는 나의 노력과 집중력에 따라서 얼마든 하나의 영감이 준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영감을 얻은 후 창작할 때 가장 멋진 순간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새로운 형태를 (드디어) 만들어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만질 수 있는 실제로 만들어 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다. 멋진 이미지를 보고 어렴풋하게 재밌는 형태가 떠오르지만, 그것이 분명해지려면 다양한 실험과 고민을 거쳐야 하는데 그걸 거쳐서 형태를 찾아내는 순간이 일차적 돌파구이다. 내가 얻고 싶은 결과물의 형태가 정해졌으면 그것을 물리적인 형태로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라는 고민을 거쳐야 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이 형태를 만들기 위한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잡는데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고 재료는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사용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이것을 정말로 재밌게 만드는 것은 한계이다. 이 한계는 내가 공부하는 예술의 종류이거나 사용하는 언어, 주어진 재료 등에 의해 달라진다.

 나는 패션을 전공하며 이 재료적 한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패션과 옷을 사랑했다기보다는 원단과 패턴을 이용해 입체를 만들고 그것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다양한 재료로 마음대로 조형물을 만들어 내는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멋진 모양을 만들되 사람에게 입혀져야 한다는 조건과 거기서 요구되는 필수적 구조라는 한계가 옷 만들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 한계 안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너무 멋진 것이다. 그 당시에 미셸 곤드리의 작업들을 매우 좋아했는데, 영화나 짧은 영상들이 재밌다는 것도 있었지만 원하는 신을 얻기 위해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에 대해 그가 답을 내놓는 방식이 좋았다. 후작업으로 쉽게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정말로 그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때로는 무식하고 원시적인 방법을 이용해 기록하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효과보다는 다양한 편집 기술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재치 있는 방식들이 그렇다.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이거나 날카롭게 세련된 영화는 아닐지라도 마치 영화와 behind the scene 영상 자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 드는 즐거운 영화들이라고 할까?

 케이크를 만들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베이킹을 시작했을 때, 나는 원대한 목표가 없었다. 쿠키와 파운드 케이크를 굽고, 머핀 정도 구울 줄 알면 딱 괜찮을 것 같았고 대단한 장식이나 디자인 같은 것을 하겠다는 것은 고려해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스킬이 생겨나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다 보니 베이킹 기술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의 툴이 하나 더 늘어났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긴장한 채로 레시피만 겨우 따라가며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레벨에 다다르니 새로운 방향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새롭고 멋진 이미지를 보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케이크로, 디저트로 표현할지 생각하게 된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어떤 케이크 레이어와 버터크림으로 표현할지, 세계 여성에 날에는 어떤 컵케이크로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이 흘러가곤 한다. 예전엔 멋진 형태를 발견하면 패턴과 원단으로 어떻게 하면 이것을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했고, 지금은 내가 다룰 수 있는 재료엔 무엇이 있는지, 그것들로 이 사진 속 자연경관을 케이크 위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런 식으로 나의 창의적 제한 조건들은 바로 케이크 재료가 되는 것이다. 버터와 밀가루, 설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표현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재료의 용도를 뒤집어 생각하고 또 다양하게 시도해 가며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이게 되뇌던 표현의 한계치를 넘어서게 되고,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며 영감을 받은 첫 순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부족함 속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옷을 만들건 베이킹을 하건 분야를 막론하고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최근에 서울의 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찾아 대학교 시절로 돌아갔을 때의 감정으로, 분야를 막론하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술, 디자인 서적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나는, 수업이 있지 않는 이상 도서관에 죽을 치고 있었다. 그 많은 책을 대충이라도 다 보려면 별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자료를 찾으면 기록하고 수집하면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가능성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그때 조금은 안일했던 부분이 있다면, 영감을 받는 것만큼 그것으로 창작을 하는 디자이너로서의 내 역할을 종종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끈기가 부족했던 나는 내가 발견한 마음에 드는 영감에서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당장에 튀어나오지 않으면 쉽게 접고 다음 영감을 찾아 나섰다. 애매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참을성이 있고 도전과 시간이 주는 선물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받는 영감을 조금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너무나도 유명한 아티스트 Olafur Eliasson (올라퍼 엘리어슨)의 책을 곁눈으로 보며 실제로 펴보기를 마음으로 거부하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처음으로 펼쳐 보았다. 너무 유명한데 굳이 나까지 봐야 하나?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것이 그의 이름이고 또 보이는 것이 그의 작업이라 유치하게 피하며 지내왔다. 사진으로만 보지만 규모와 도전의 의미로 봤을 때 정말 기가 막힌 작업들이긴 하다. 장식성 없는 설치물들은 기계 공학자나 물리학자의 실험에 가까운데 종종 그 차가운 틈새로 피어나는 그의 대자연에 대한 강한 동경이 느껴진다. 넓은 실내에 펼쳐진 돌밭과 그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물줄기, 대자연이 제한된 공간에 갇히는 어색하고도 진기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삭막한 자갈밭에도 생동감 넘치는 생명이 더해질 수 있을까? 조금은 드라이한 돌의 질감을 달콤한 재료로 재현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 생각이 들어 여러 책들을 보며 고민해보던 중 숲속 계곡 주변 켜켜이 쌓인 바위들 위로 수북하게 깔린 이끼 사진을 보게 되었다. 차갑고 축축하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언어를 가졌을 것 같은 두툼한 이끼. 그걸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가장 도전적인 요소는 먹을 수 있는 자갈을 만들 것, 그리고 이끼를 표현할 도구를 찾는 것이었다. 분명 누군가는 자갈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싶어 찾아보니, 생각보다 자료는 없지만, 10년 전 누군가 올린 인터넷 페이지를 찾아냈다. 매우 감사하게도 생소하지 않은 재료들로 만들 수 있다 하니 해결이다. 최근엔 말차가루에 대한 근거 없는 관심이 생겨났는데 그걸로 이끼의 색과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베이스는 무얼로 해볼까? 최근 새롭게 만들어보게 된 아주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 크림치즈 버터크림이 있다. 우리 모두가 베이킹을 시작한 이유는 이게 아닐까 싶게 달콤하고 부드럽고 묵직한 맛의 평범한 초콜릿 케이크. 어린 시절의 우리가 베이커리의 케이크 진열대에 놓인 생크림 과일 케이크나 모카 케이크를 사달라고 떼쓰는 경우는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달고 맛있는 것에 대한 강렬한 본능은 간단하게 초콜릿 케이크에 대한 기억에서 오지 않나? 그러니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대지 속, 축축하게 생명력 넘치는 진흙을 그것으로 만들면 되겠다.

 화이트 초콜릿을 이용해 만든 돌은 언뜻 보면 진짜 같아서 만들어 놓고도 신기하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만든 돌들을 단단하게 굳히고, 미리 구워 둔 초콜릿 케이크를 냉장했다. 다음 날 아침엔 미리 세워 놓은 케이크 계획 덕에 신나게 눈을 뜬다. 넉넉한 양의 초콜릿 버터크림을 만들고 냉장했던 케이크를 꺼내  버터크림을 레이어해서 기본적인 케이크 형태를 만드는데, 보통 방식으로 케이크를 아래에서 위로 층층이 쌓는 것이 아니라 케이크 시트를 반으로 잘라 세로로 세워 그 사이사이를 초콜릿 크림으로 채우기로 했다.  언덕 같은 모양을 내고 싶은데 일반적 형태로 높게 케이크를 쌓아 그걸 조각하듯 깎아 만들기보다는 케이크를 쌓을 때부터 언덕 모양을 쌓는다면 케이크를 덜 낭비할 수 있지 않을까. 케이크 형태를 잡는 것이 어색하긴 했지만 이렇게 저렇게 다듬다 보니 괜찮은 초콜릿 케이크 베이스가 완성이 되었고 겉면을 초콜릿 크림으로 아이싱해 마무리. 다음으로는 말차 가루로 초콜릿 대지 위에 이끼를 깔아보았다. 적은 양으로도 강한 색의 이끼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젠 돌을 얹어 볼 차례인데, 여기저기 얹어보며 구도를 짜 보고 돌을 얹을 곳의 케이크를 조금씩 파내어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돌이 잘 붙도록 꼭 눌러 얹는다. 마지막으로 말차 이끼를 얹어 둘 위의 이끼를 표현하는데 뿌리고 나면 수정도 안 되고 끝이라 조금 긴장. 말차 가루를 잔뜩 뿌려 두툼하고 풍성한 이끼의 모습을 재현해본다. 케이크를 돌려가며 여러 각도에서 확인하고 부족할 곳을 채우다 보니 완성된 케이크.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의 케이크가 완성되고 나니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까지 해온 그 과정이 애틋하다. 영감을 얻어 케이크를 제작하는 전개는 간단하지만 그 사이사이의 걱정과 염려 등이 이 과정을 멋지게 만들어주지 않나. 영감을 받은 곳에서 종종 멀리 떨어지거나, 다른 길로 돌아가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 때도 있다. 나쁘게 말해 산으로 가는 것인데, 오르다 보니 산 정상에 올라있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학교 다닐 적 M.C. Escher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리서치의 흐름을 따라가다 티베트 유목민의 의상을 거쳐 박스로 만든 노숙자의 잠자리에서 영감받은 작업물을 만든 적이 있다. 꽤 높고 엉뚱한 산으로 가긴 했지만, 영감이 나를 데려다준 곳이니 신기하고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이리저리 떠돌기보단 인내심을 가지고 내가 어렵게 얻은 귀한 영감에 정성을 들여 조금은 정성이 담긴 생각을 하고 싶다.

 놀라운 신기술이나 3D 프린터를 이용해 머릿속의 것을 그대로 쉽고 생산적으로 표현하는 데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케이크를 이용해 상상하던 것을 만드는 데서 얻는다. 종종 내 기술이 이 정도까지임에 감사한다. 내가 설탕 공예나 반짝이는 완벽한 몰드 디저트를 만들 줄 알았다면 굳이 이런 투박하고 불안정한 방법을 선택했을까? 깎고 더하며 무언가를 빚어 나간다는 것은 거푸집에서 꺼낸 완벽한 물건처럼 간단한 해결 방법을 아니지만, 상처가 나고 아물며 단단해진 살처럼 조금은 기억에 남는 시간과 매우 개인적인 엔딩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내가 받는 영감은 어색한 손과 바보스러운 계획들로 이야기의 결론을 맺으며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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