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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Apr 20. 2021

망친 레몬 타르트

내 감정의 적나라한 초상




 감정적이면서도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는 느린 사람으로 살아오다 보니, 사람들은 다 알아도 나는 모르던 새로운 감정을 처음 느끼기도 하고,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나는 조금은 다른 임팩트를 받게 됨을 느낀다. 계속해서 정신이 진화한다고 해야 할까? 요즘 가장 새로운 감정이자 조금은 날것? 의 상태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라는 감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기분이 상할 때 의기소침하거나 우울감을 느꼈다. 보통 내가 실수를 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여 속상해지는 수동적 감정이 내가 가지는 부정적 감정이었다. 요즘은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낀다.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세상 모든 것이 내 만사를 꼬이게 하는 그런 기분. 짜증 나거나 귀찮고, 신경 쓰이는 감정은 알았어도 화가 난다는 기분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고작 최근 몇 년이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눈물이 나는 경험도 그렇다. 베이킹을 하면서 처음으로 분통이 터졌던 순간이 기억나는데 아마 줄줄 흘러내리는 크림치즈 아이싱으로 케이크를 아이싱 하다가, 또는 달걀을 빼먹고 조카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을 때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보통 사람이나 나에게 생기는 억울한 일로 화가 나는 것이라고 알았는데 내가 하던 일이 잘 안돼서 화가 나는 것은 베이킹을 하며 처음 배웠다.

 화가 날 때 무서운 것은 마음의 문이 쾅 닫혀 그 어떤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화가 나서 나 자신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리며 내가 저지른 실수를 죽도록 비난하고픈 순간에 누군가의 위로는 그 어떤 힘도 가지지 않는다.

 베이킹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뜻대로 안 되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그것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이나 재료가 아까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속상한 것은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주말 베이킹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증발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실패하며 배우고, 고난 속에서 강해지고 어쩌고 저쩌고... 말이야 좋지 기왕이면 만드는 것마다 생각대로 나와주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할까 말까 싶은 베이킹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또 다음 주말을 기약해야 하는 답답함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특히나 오늘처럼 레몬 타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망친 때에는 도저히 나 자신의 부족함을 용납하기 힘들다.

 일주일 내내 생각하고 기대했던 레몬 타르트를 만드는데 레몬커드 (필링으로 사용하는 재료)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레시피대로 했는데도 의아한 결과물이 나올 때는 굉장히 답답하고 기분 나쁘다. 억울한 것이다. 나는 하라는 대로 했는데 결과물을 실패다. 성공률이 나쁘지 않은 베이킹 경험 때문에 가끔 하는 실패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년간 연습과 훈련을 하여 드디어 올라간 결승전에서 상대편이 반칙을 해서 내가 다치고 또 결국은 그로 인해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이상하다 싶을 만큼 타르트는 자주 실패한다. 마음에 들게 완성한 적이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겨우 완성해도 항상 초라하고 깔끔하지 못하다. 타르트지 색을 더 낸다고 기다리다 결국 너무 구워지거나, 특히나 딱 떨어지고 깨끗하게 구워지질 않아 인터넷이나 책 속에서 보는 완벽한 엣지를 가진 타르트는 꿈같은 일이다. 어쩌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 간단하고 쉽게 만드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서 똑같이 만들어 보려고 하면 역시나 실패. 이번 타르트도 그런 경우였다. 최근에 산 책에 Meyer Lemon Tart 가 나와 있는데 책을 쓴 사람이 유튜브에서 그 타르트를 시연해 보였다. 어렵지 않아 보이면서도 또 그동안의 타르트지에는 써보지 않았던 재료가 들어가서, 그리고 레몬 타르트를 만들어 본 지 상당히 오래되었기에 안 해볼 이유는 없었다. 레몬 커드 필링과 타르트지 모두 미리 만들어 놓아도 되는 것이라 차근차근 만들어 놓고 내일 조립하면 되겠다 싶어 레몬커드부터 만들어 본다. 레시피에 나온 대로 레몬 제스트를 내고 즙을 짠다. 설탕과 레몬 제스트, 즙을 넣고 끓이다가 되기가 적당해지면 불을 끄고 버터를 넣어 녹이면 되는데, 글쎄다 적당하다고 했던 온도는 도달한 지 꽤 지났는데 되기는 영 아니고, 그래도 온도를 기준으로 해야 하지 않나 해서 불을 끄고 버터를 넣어 섞는다. 묽은 커드는 역시 되기를 만들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혹시 몰라 더 끓여서 수분을 날려 볼까 했는데 버터가 녹으니 당연히 쉽지 않다. 식으면 되직해질 수도 있으니 따로 담아 기다려보지만 가망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다시 만드는 것으로. 이미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지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지금 터지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위해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이런 순간에 화를 낼지 그냥 넘어갈지는 정말이지 굉장히 가느라다란 줄을 타는 감정의 흔들림으로 정해져 버린다. 화를 내는 것은 스스로 그러자고 선택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본다. 의연하게 넘어간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용암이 끓고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화내지 않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다음에, 정말 화 낼 일이 있을 때 제대로 화나겠다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치면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용서하고 지나쳤을까? 어떻게 생각해도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침착하지, 왜 짜증이 없지?' 생각했던 순간들에 실은 다들 참고 넘어갔던 것인지! 화가 크게 난 적이 없어서 화를 참기 위해 애써야 했던 경험 또한 많지 않았고, 그래서 정말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마음을 꼴깍 삼켜 넘기는 것이 참 어렵다.

 커드를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도저히 바로 설거지를 하고 연달아서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할 기운이 없어 우선 타르트지부터 만들기로 했다. 이 타르트지에는 아몬드 가루가 들어간다. 아몬드 가루를 자주 써보지 않았지만, 최근 새로운 쿠키를 만들고 남은 아몬드 가루가 있어서 그것을 꺼내왔다. 믹서가 아닌 푸드 프로세서로 만드는데, 아직 푸드 프로세서의 성질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재료가 굉장히 빨리 섞이고 오래 섞으면 반죽이 더 물러지는 것 같다는 이외에 상당히 시끄럽다는 정도밖에 모르겠다. 아무튼 레시피대로 반죽을 만들어 유산지 사이에 끼워 두툼한 블록으로 만들어 랩핑 하여 냉장고에 넣었다. 반죽이 막 만들어졌을 땐 상당히 무른 반죽 같지만 내일이면 다루기 쉬울 정도로 단단해져 있을 예정이라 별 걱정은 안 했다.

 타르트 반죽을 만들고 나서는 한번 망쳤던 레몬 커드에 다시 도전한다. 레몬즙은 조금 덜 넣으면 나으려나? 그래도 재료 배합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안될 것 같아 다시 한번 차근차근 빼먹는 것이 없도록 정확히 준비해 담고 다시 끓여보기로 했다. 대신 이번엔 레몬과 설탕을 더 오래 끓여보기로 하고 도달 온도에 상관없이 숟가락 뒷면을 덮는 정도로 되기를 판단하기로 했다. 충분히 되직해졌다고 느껴질 때 준비해놓은 버터를 섞어 마무리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되기가 더 있고 안정적이라 느껴지지만 식혀서 차가워지기 전까지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다.

 이튿날, 베이킹 용품 샵이 오픈하자마자 가서 깊은 타르트 팬을 사 왔다. 어젯밤에 뒤져보니 작은 것 밖에 없어서 아무래도 레시피 배합대로 하려면 새로 들이는 게 낫다 싶었다. 부리나케 필요한 것은 사들고 돌아와 냉장했던 커드를 꺼내 상태를 살펴보니 되기가 나쁘지 않아서 한숨 돌렸다. 이제 타르트지를 꺼내 팬에 담아야 하는데, 레시피에 알려준 테크닉으로 이리저리 해보는데 반죽이 스멀스멀 늘어지기 시작하고 겉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새로 사 온 타르트 팬이 너무 깊어 반죽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애써서 다시 도전한 타르트지가 또다시 말썽이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타르트는 안된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온 타르트 팬이 무용지물이 되고 애써 만든 타르트지 반죽은 찰흙처럼 뭉개진다. 이건 정말 못 참겠다. 고성을 지르고 싶게 화가 나고 옆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싶어 질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가 침대로 몸을 던져보았다. 빼먹은 재료나 단계도 없고, 그저 레시피대로 따라 했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 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시키는 대로 했는데 실패라니? 만들던 것에 실패하면 그 레시피를 쓴 사람도 싫다. 내 잘못도 있지만 남 탓도 있다. 거기다 내가 베이킹을 하는 환경과 도구들까지 무엇하나 협조해주지 않을 때, 나는 결국 이 세상이 나를 엿 먹이려 한다고 믿는다. 그런 상황에서 자꾸 긍정적인 조언을 하고 또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도와주려는 행동은 불에 기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를 않고 다시 해보라는, 꼭 레시피의 크기대로 해야 하는지, 맛만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 남편의 위로는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느낌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타르트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모르는 점, 내가 생각했던 타르트의 그림이 있었다는 점, 주말 전부터 계획했다는 점, 커드부터 안 풀려서 타르트지가 늘어지는 것도 모자라 새로 사 온 타르트 팬 마저 잘못된 것, 그리고 재료와 시간을 낭비 한 점... 지금 내가 화가 나는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는데 거기에 대고 조언을 하려 하다니?

 지금 더 화가 나면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아 원래 가지고 있던 작은 타르트 팬에 반죽을 옮겨 담고 어떻게든 수습해 보았다. 이 와중에 타르트지를 구울 때 필요한 쿠킹 포일도 없다. 대신 유산지를 덮어 누름돌을 담고 타르트지를 구워 식힌 다음 레몬 커드를 담는다. 누름돌에 뭉개져 모양이 망가지고 계획보다 많이 작아진 타르트에는 커드도 아주 조금밖에 담지 못해 쓰지 못하고 남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선 그런대로 오븐에 넣어버렸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머리가 터져 나갈 듯 화가 나고 빨개지도록 꽉 쥔 주먹으로 분노가 새어 나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나서 견디기가 힘들다. 맨바닥에 누워 심호흡을 하면서 분노를 느끼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오븐 안에서 구워지는 타르트를 확인해보았다. 작은 타르트지 밖으로 레몬커드가 끓어 넘쳐 이제는 형태도 알아볼 수 없다. 이게 레몬 타르트인지 오므라이스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발악하는 타르트. 몇 주간 주말마다 비가 왔지만 이 날은 이상하리 만치 날씨가 정말 좋았다. 햇살이 들이치는 발코니에 서서 다 구워진, 아니 갈데 까지 가버린 타르트가 식는 것을 바라보는데 그 꼬락서니가 너무나 우습고 처참해 화도 안나는 지경이 되었다. 온갖 고난을 겪고 무시무시한 벌레와 야생 동물들에게 뜯기며 정글을 통과해 나왔는데 그 모습이 강하고 용맹한 것이 아닌 죽기 직전까지 초토화된 실패한 모험가의 모습이랄까? 내 마음도 그랬다. 당황스럽고 열 받는 주말을 보내고 있자니 굉장히 지치고 피로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냉장고에 식혀 보관해 놓은 못난 타르트를 꺼내 남편과 나누어 먹었다. 피곤하고 서글픈 마음을 위로하는 것인지 약 올리는 것인지, 그 와중에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몬드 가루를 넣어서 그런지 타르트지가 단조롭지 않은데 대신 잘 부스러지는 것도 같다. 더 단단한 타르트 지를 만들기 위해 푸드프로세서의 날을 다른 것으로 바꿔보거나 그냥 손과 주걱으로 만들어볼까 싶다. 커드는 좀 더 오래 끓였던 나중 방식이 괜찮았던 것 같다. 쿠킹 포일도 꼭 사야겠다. 의연하게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내 분노도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다고 믿기에 후회는 없다. 그렇게 이번 베이킹은 지나갔고 여기저기 마음에 고쳐야 할 곳들이 많아졌다. 타르트를 만들고 안 것은 내가 요즘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타르트는 굉장히 예민하고 화가 많이 나 있는 내 감정의 적나라한 초상이라는 것.

 화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와도 관련이 있고, 그 간극은 매우 작아서 화나지 않기로 결정하고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앉아있어도 얇은 창호지 미닫이문 너머로 이글거리는 화나는 감정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그 기분에 마음을 놓아버리면 언제든 무서운 감정이 벌컥 문을 차고 들어와 나를 집어삼킬 것 같기에, 그 긴장감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매일 명상을 하고 나 자신을 위해 베이킹을 하며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를 확장하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간 것인지다. 단지 잘하고 싶어서 기분이 상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매번 화가 나는 이유는 무억을까? 이제 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게 아닌가 싶다. 조금 지친 것도 같고 너무 심각해진 것은 분명하다.

조심스럽지만 편안하게, 이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자세로 무언가를 할 때 나는 이 정도로 분노를 느끼고 화를 냈던가? 큰 기대치나 더 높은 기준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즐거운 향유는 고난의 수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조금 인내하다 빠져나오면 잔잔한 물결이 펼쳐질까? 힘들게 헤엄쳐 나올 가치가 있을까? 그래도 애는 써봐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 자신의 부정적 면면을 나의 정체성이라 결정하고 그것을 무기력하고 분노 가득한 삶을 위한 변명거리로 이용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화가 나고 기분 상하는 감정을 마주하고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지를 했다면 그 기분을 계속해서 느낄지 결정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며칠간 느낀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은은하게 타는 숯처럼 나에게 머물러 있다. 후후 불어 불이 커지지 않게, 조용히 모두 연소되어 없어지도록 가만히 두는 마음으로 지내려고 한다.

 서늘한 일요일 아침, 차가울만큼 밝고 시큼한 햇살을 받은 못생긴 레몬 타르트가 사람 좋은 바보 같은 웃음을 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부들부들 다시 한번 참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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