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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14. 2023

유랑기 ② 정든 곳 떠나기, 침착하게

2021년 8월 9일 일기 발췌

네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가서 현실에 좌절 말고 충실해.


충실하게 임하기, 충실하게 임할 것을 한국에서의 마지막 당부로 받아들인 나는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신나게 떠나고야 말았다. 이별도 충분히 슬퍼하려고 했다. 동시에 눈물을 찔끔 흐르면서도 한 편으로는 깔깔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한국을 떠나는 그 발걸음이 쉬이 떨어졌다. 나는 미국 동부로 향했다.


나의 미국은 결코 눅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볍게 떠났다. 그곳에서의 나날은 나에게 배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다시없을 기회를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내 손에 쥐어졌다. 내가 받은 기회는 나에게 정차 없이 떠돌아다닐 것을 요구했다. 봄이 오면 새싹이 나듯이 나의 겨울도 끝나갈 것이다.


이제야 언 땅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나에겐 돌아갈 가족도, 고향도 없습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아주 강한 기운을 가진, 그런 지적인 여성이 될 것입니다. 엄마가 말한 것처럼 재능 있고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있는 힘껏 도망친 결과 나는 어딘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여전히 총명합니다. 괜찮으니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저 멀리에서 제가 다치더라도 우리 언니는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뛰어와 내 동생 건드리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나는 엄마가 생애 전반에 걸쳐 남긴 발자취를 쫒아다가도 자주 주저앉았다. 그녀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엄마가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자신이 없더라도 내가 잘 사길 바랐다. 나는 그 마음만 한 움큼 집어갈 것이다. 두 손 넉넉히 챙겨서 여행 채비를 끝냈다.


아빠를 보냈던 내 마음은 정말 찢어졌다. 건강한 줄 알았던 아빠가 사실은 많이 아프고 여러므로 지쳐 있었다. 지친 아빠는 오랫동안 못 잔 잠을 자다가 떠났다. 밥도 스스로 못 먹고 숨도 스스로 못 쉬다가 홀연 듯 심장마저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아빠를 옆에서 보는 건 어려웠다. 나는 아빠가 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다정히 부르다가도 이내 체념했다. 나의 아빠는 나에게 나그네의 피만 주고 안식처를 만드는 일은 나의 몫으로 남긴 채 사라졌다.


나는 많은 것을 받았고 많은 것을 한국에 두고 그렇게 떠난다. 나는 이제 미국으로 향한다.


대체 텍스트: 푸른 하늘이 보이고 양 옆으로 거대한 건물들이 무리 지어 세워져 있다. 고층 건물숲이다.

상황 설명: 엄마와 했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렵사리 미국행 유학을 떠났다. 미국행 비행기를 따고 떠나기 직전에 만나 뵙던 은사님께서는 나에게 충실하게 임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가서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놓고 온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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