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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22. 2023

유학공부일기 ② 노력하는 자에겐 빛이 찾아온다.

2021년 10월 14일, 10월 26일, 11월 12일 일기 발췌

닥터로부터 온 나의 과제에 대한 피드백은 나를 좀 더 지치게 했다. 맞는 말이야, "You need more works." 나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호흡하기, 기분 단절하기, 새롭게 집중하기,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정확히 하기, 도움 요청하기,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기, 주눅 들지 않기, 덤덤하게 지금 현재를 받아들이기.


못 해 먹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나야말로 되묻고 싶었다. 내면의 나는 깊은 한숨을 남모르게 내쉬었다. 숨 쉬기가 편치 않았다. 불안이 나를 가득 채웠다가 다시 호흡과 함께 가라앉았다. 부드럽게 감싸 앉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뒤로 물어나서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은 아쉬운 모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완벽할 순 없어.


노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아짐을 택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힘이다. 나는 절대 고집 부리지 않을 것이다. 기존에 내가 하던 방식을 과감히 바꿀 것이다. 나는 취향이란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나의 장점이 분명하다. 나는 나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채우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쉽지 않은 건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일이야 말로 어려운 일이다.


쉴 틈 없이 닥터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퇴고했다. 계속 고쳤다. 뜯어고친 글은 퍽 그럴싸해 보였지만 또 받은 피드백은 나의 부족함을 확인시켰다. 공부란 나의 부족함을 계속 확인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나의 결함을 확인하고 인내하고 끝까지 나의 논점을 밀어붙여 어디까지 닿는지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이 길에서 나는 물러날 곳이 없다. 계속 나의 길을 걸을 뿐이다. 노력은 유일한 나의 방법일 테니,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줘야 한다. 다독여주는 손길에 온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걷는다.


공부는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것이라 고독하다고, 지독히도 고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종 코끝 시리도록 느껴지는 이 사무치는 외로움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했다. 어찌해야 할까?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너무 버겁다. 내가 열심히 할 테지만 가끔은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다. 혼자 낯선 타지에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아, 집에 가도 다를 바 없는 고독함이 나를 찾아온다.


어느 날, 다시 되돌아보면 내가 나에게 "아, 그래. 그때 정말 열심히 살았지"라고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기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인문학이 저 멀리 도망가서 나에게 너는 나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저 그런 유학생이 되어 잘하지도 못하는 전공을 꾸역꾸역 이어나가는 중이다. 내가 인문학에서 내 가치를 찾지 못하면 나는 무엇에서 나의 가치를 찾지? 더 이상 인문학을 못하면 나는 어떻게 살지? 유일한 내 탈출구가 막히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큰소리치면서 조금만 더 하면 된다면 믿었던 내가 사라졌다. 멀리 돌아왔는데 여기에 무엇이 없으면 이 나그네는 어찌합니까? 또 납작 엎드려서 있다. 노력 끝에 나는 다시 손에 쥔 무언가가 신기루라는 걸 깨달았다. 잡힌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또다시 정차 없이 헤매는구나 싶었다. 나는 또 헤매는 중이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여러 부족함이 나에게 드러났다, 언어의 부족함, 이해의 부족함, 끈기의 부족함이 쌓여 엉망진창인 글을 대충 써내려 가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된 논증 따위 없는, 그러니깐 논리가 부족한 글 말이다. 뭐가 중요해? 그러니깐 왜 내 글을 사람들이 읽어야 해? 내 말이 그 말이다. 엉망인 글에 멈칫하다 또 보면 괜찮아지려나? 정직하게 내 부족함을 바라보고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나아지는 방법을 모르겠다. 내 글을 나도 포기하고 싶어 진다. 나는 못난 글의 주인임이 분명하다.


대체 텍스트: 오래된 고층빌딩 옆에 신식빌딩이 세워져 있다. 뒤에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상황 설명: 교수님께 과제로 제출한 글을 계속 피드백받고 고치고 또 피드백받고 고치고 계속 피드백을 받았다. 얌전히 앉아서 피드백을 받아들이다가 폭발했다. 더 이상 글을 고치고 싶지 않아 졌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결국 어영부영 글을 써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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