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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29. 2023

연애이별일기④엄마,나는 아빠가 그리 원하던 그와 연애해

2022년 11월 18일, 25일, 28일

 그는 우리 아빠가 그리 간절하게 원했던 첫 번째 아들, 어느 집안의 장손 같다. 단단하고 듬직한 느낌, 그리고 탁월한 손재주, 어릴 때부터 닦아온 알 수 없는 재주들, 내가 망쳐버린 것 같은 가업의 무게가 무직하게 다가왔다. 만일 내가 아빠가 그리 원하던 아들이라서 그 일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아빠가 견뎌온 무게를 느끼면서도 성공적으로 가업 계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의 단단함은 위로가 되다가도 내가 가지지 못한 모종의 남성성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아빠가 그리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니었고 그저 그런 약한 여자로 태어나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는 서울깍쟁이 아가씨로 자라나는 동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와 결혼할 남자가 그 사람이길 바랐을까? 아빠는 사위가 아빠의 사업을 이어받길 원했다. 아빠의 예상 범위에선 일단 나는 제외되었고 나는 영 아니었다. 다행이도 나는 자기 객관화가 꽤 잘 되는 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명확했다. 나는 아빠한테 뉴스와 신문기사를 통해 국가적 경제 상황을 읽고 듣고 아빠한테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으나, 우리 가족의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무리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미 다른 세계에 발을 딛고 성공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철학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었다. 억눌리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나를 숨 쉬게 했다. 다시 나를 붙잡았다. 그래, 이 상황만 끝나면 나는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가 다시 원하는 인문학 공부나 하면서 다시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참고 또 참았다. 아버지의 가업을 정리하는 일은 적성에 맞진 않았다. 입금해 달라는 전화도, 체불되었다는 전화도 다 역겨웠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결국에는 항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그 상황을 버텼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이렇게 시작된 하루가 아찔하게 느껴져서 다시 눈을 감았다. 수업 들으러 학교에 잠깐 갔다가 집에 다시 돌아와 서재에 들어갔다. 엄마가 정리해 둔 아빠 컴퓨터에 있는 장부 앞에 앉았다. 밤엔 빛이 사라진 어둠이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새벽엔 악몽 탓에 울면서 깼다. 내가 그 기간을 어떻게 버터 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젊음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자연의 힘이 나에게 있었다고 으레 짐작할 뿐이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다시 대학 심리 상담실에 전화를 걸어서 이전에 받았던 상담 선생님과 약속을 잡았다: "엄마가 죽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즉각적으로 건 나는 용감했고 살고 싶었다. 정말 살고 싶었다. 나는 죽었다, 그날. 엄마가 나를 죽이고 갔다. 아빠가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혼신의 힘으로 나의 죽음을 막아주었다. 그를 만나고 온 날 꿈 속에서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마주 앉아 있었다. 잘 지내라고, 다시 시작하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그 사람이 아주 괜찮다고 했으니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졌다. 내 욕심이다. 내가 다시 누군가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그와 애정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욕심을 부려도 될까 싶었던 연애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엄마가 사랑에 빠졌던 젊은 날의 아빠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여기서 좀 더 욕심부려도 될까?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는 내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줄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바빴고 외로웠지만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드디어 실수임을 알면서 저질러 버렸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어제는 추수 감사절이라서 친구들을 불러서 와인과 함께 즐겼다. 거의 만취까지 갔다. 너무 많이 마신 탓이다. 그가 나를 집에 초대해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집이 없는 국제학생들끼리 굉장히 대학원생스럽게 놀다가 집으로 향했다.


아빠가 그리 원하던 First Son은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가치관도, 도덕성도, 정치적 신념도 모두 너무 다르다. 정서적 교감이 약간 어렵다. 공통 관심사가 많아지면 되려나? 너무 어렵다. 오늘은 꼭 말해야지, 무언가 그와의 관계를 위해 내 할 바를 해야지 하다가도 너무 살 떨려서 못하겠다. 그는 강한 사람이다. 집안 온갖 대소사부터 본인 직장 일까지 책임지면서도 남을 돕고 또 도우면서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불평 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뒷모습에 나는 그가 뭔가 인생의 무심함과 고통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무게 정도는 배웠겠지, 이전에 내가 만난 또 다른 사람은 그의 삶 속에서 도통 배운 바가 없어 보였다. 그는 삶의 무게에서 타인의 고통을 향한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공감능력을 배웠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몰라서 찾아 헤매는 모습에, 그리고 우리 관계의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에 싫증이 났다. 나야말로 진지하지 않았나 보다.


대체 텍스트: 거대한 불교미술 작품, 중국식 화법으로 그려진 보살이 입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중생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고통일 것이다, 중생에겐. 부디 자비가 있길.

상황 설명: 미국 대학교는 학기마다 일주일씩 짧은 방학이 주어진다. 보통 가을학기엔 추수 감사절을 기점으로 일주일 쉬어간다. 미국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향한다. 돌아갈 집이 없는 국제 학생들은 다른 국제학생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찾아가 집 없는 애환과 서로움을 서로 달랜다. 나는 가상의 원형적 집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내 주변의 국제학생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 모았다. 모두 배불리 먹고 집에 갔다. 내 모성애가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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