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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OND DEVELOPMENT Jul 30. 2023

니제르 쿠데타 발생, 거대한 권력 싸움의 현장

국제 정치의 잔혹함과 국제개발협력

지난 7월 26일 수요일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워낙 안보 상황이 취약한 곳이고 약 2년 전에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곳이라,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현 대통령의 경호실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바줌(Bazoum) 대통령은 억류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서 들려왔습니다. 큰 규모의 쿠데타가 아니라 생각했으나 상황은 금방 종료되지 않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치아니 장군은 스스로를 국가수호위원회 의장이라 명명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UN, 유럽연합, 아프리카연합 등 국제사회는 강력한 규탄 메시지를 던지며 니제르 군부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니제르를 향한 재정 지원과 안보 협력의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군사 쿠데타가 2020년대에 들어 니제르가 위치한 사헬지역의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연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니제르 인근에 위치한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에서는 이미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정권이 교체되며, 사헬 지역이 이제는 '쿠데타 벨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들 국가들은 왜 이렇게 정치와 안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쉽게 생각한다면 민주화가 자리잡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에서 종종 겪는 국가 내부의 불안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 국가들 주변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한 국가 내부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BBC

1960년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국가들(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치·안보적 불안정을 겪고 있지만, 본 글에서 주목할 것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2011년 이후의 일들입니다.


2011년 NATO의 지원으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축출된 후로, 수많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사헬지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세력을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차드, 카메룬, 니제르 등 인근 국가들에까지 확장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리비아 내전 당시 카다피 정권의 편에 섰었던 세력들이 많은 무기를 가지고 말리로 유입되면서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나이지리아와 같은 말리의 인근 국가들은 무장테러단체들에 의한 끊임없는 테러위협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와 미국은 그들의 병력을 사헬 지역에 배치하여 대상 국가들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합니다. 현재도 각 국에서 1,000명 이상의 병력이 니제르에 주둔하고 있고 드론부대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소규모로 이동하며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고 떠나버리는 무장 테러단체의 활동을 막기는 쉽지 않습니다. 드론을 활용하여 무장 테러단체들을 소탕하려 하지만 그 세력은 점차 커져가면서, 말리 외의 국가들의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됩니다.


이슬람 무장단체가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하는 위기 상황에서 민주 정권에 대한 불만과 프랑스의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결국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했고, 프랑스의 군대는 결국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는 러시아와 더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군사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제르는 프랑스와 미국이 사헬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더욱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고, 친서방 성향을 가진 니제르의 바줌(Bazoum) 대통령은 니제르와 프랑스, 미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니제르에서 마저도 민주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니제르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환영하며 니제르의 안정화를 위해 바그너그룹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바줌대통령의 민주정권이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면, 니제르도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처럼 반프랑스·반미 정책 하에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력은 작아지고 러시아의 영향력은 매우 커지는 상황으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이미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서는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Al Jazeera

니제르는 매년 UNDP가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에서 매년 거의 최하위를 기록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입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하루빨리 안정화가 되어 빈곤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의 테러활동과 서방 국가들의 개입에서 비롯된 정치·안보적인 불안정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인간개발지수(HDI) 및 순위 (총 191개국)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서방세력에 반대하며 테러를 벌이고 서방세력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헬지역에 군사 지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장단체들이 힘없고 가난한 니제르 정부를 대상으로 테러활동을 벌일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경멸하는 서방세력에 대한 시위를 하기 위해 무고한 주민들을 공격하며 지속적으로 테러활동을 펼칩니다. 프랑스와 미국은 니제르를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더 많은 군사 지원을 하고, 계속해서 무장단체들을 자극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결국 가난한 니제르의 시민들만 계속해서 피해를 입습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까지 사헬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 합니다. 프랑스, 미국과 같은 서방국가들과 러시아 간의 사헬지역 내 세력 다툼이 벌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나라는 분열되어 민주정권이 무너지는 일이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파견근무를 하던 2016-2018년도에도 국경 지역에서의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수도에서 고작 200km 떨어진 곳에서 NGO활동가 등 여러 외국인들이 테러단체에 의해 납치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프랑스와 미국이 군사지원을 늘리고 드론기지를 건설하며 무장테러단체 소탕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상황이 점차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 인근(수도 외곽지역)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나는 등 니제르에서의 긴장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니제르의 상황을 보며 수많은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대체 누가 사헬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 대체 누가 이 사하라 사막을 테러와 전쟁의 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요.


우리가 하는 국제개발협력은 결국 이런 국제 정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국제사회의 권력 싸움과 그 잔혹함 속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니제르에 대해서는 테러와 전쟁에 관한 소식만 전해질뿐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거대한 권력이 충돌하여 서로 견제하며 세력 다툼 하기 분주한 지금,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순간에도 빈곤에 맞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저 멀리 있는 사헬지역, 한국 정부의 중점대상국들도 아니고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곳도 아닙니다. 사헬지역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 NGO들도 극소수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어느 곳보다도 우리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이곳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도 조금씩 더 관심가져 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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