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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Feb 10. 2021

뜻밖의 모성애

문득 훌쩍 자란 아이를 발견하며

"이 세상의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흠흠..."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려니 어색했다. 몇 번이나 물을 마시고 목을 가다듬으며 노래를 준비했다. 어색하게 뭐 이런 걸 찍어 보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코로나 19 시국 속에서 첫째 아이는 이제 유치원을 졸업한다. 원래는 졸업식에 학부모들도 함께 자리해야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이들끼리 졸업식을 치러야만 했다.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졸업식을 간소화했던 유치원에서는 올해 졸업식에는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엄마들이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1절을 미리 동영상으로 녹화해 한 소절씩 편집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준단다. 엄마 모습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영상으로 엄마 모습이 보이면 깜짝 놀라 신나 할 게 분명한 갓 여덟 살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더라도 난 울지 않을 거라고 한 나였기에 노래 미션을 받고도 그러려니 하며 유튜브로 노래를 들었다.

'음... 이제 한 번 불러볼까?'


"이 세상의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나에게 커다란 행복을 준 너에게.

때론 마음 아프고 때론 눈물도 흘렸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싱그러운 나무처럼 쑥쑥 자라서

너의 꿈이 이뤄지는 날 환하게 웃을 테야.

해님보다 달님보다 더 소중한 너.

이 세상에 좋은......."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용하게 노래를 거의 다 부르고 마지막 소절을 부르려는데 울컥 눈물이 흘렀다.(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울컥 차 오른다.) 녹화 버튼을 끄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지난 칠 년의 시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준 아들이 너무나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 항상 욱하는 다혈질 엄마에게 혼나면서도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들에게 한 없는 미안함. 가사 한 줄, 한 줄을 노래하며 아들이 이렇게 자라줬구나.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아련함이 눈물로 차올랐다. 어떻게 이 엄마는 잘해준 기억보다 후회스러운 기억이 더 빨리 떠오르는 걸까.


뜻밖의 모성애였다. 세상에 없던 존재를 낳아 기르는 희생, 그 존재를 자기 삶의 독립된 주체로 키우기까지의 절대적인 책임이 모성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좀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이를 떠올리는 순간 왈칵 쏟아져 내린 나의 눈물이 꼭 그런 것만이 모성애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눈을 향에 찌르는 무언가 느껴질 때 찰나의 순간 눈을 질끈 감는 반사신경 같은, 동물적이고 무의식적인 모성애가 있구나 그제야 알았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다.


엄마가 된 지 여덟 해나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아이에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나의 책임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 엄마는 어떨까. 수 십 년 간의 지난 엄마의 역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의 엄마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감히 우리 엄마의 시간에 대해서도 말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금방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졸업식 노래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눈물이 나서 못 부르고, 다음에는 문자가 와서 멈추고, 다음에는 전화가 와서 멈추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입술이 너무 허옇게 나오는 것 같아서 멈추고. 휴대폰에는 혼자 어색하게 노래를 하는 동영상 수 십 개가 남았다. 나는 그렇게 팔 년 차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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