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한국이었다면 제이슨은 대학을 다닐 수가 없었다.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고, 미래의 꿈도 없어서. 학과의 전공 필수인 내 수업에서 제이슨은 수시로 수업을 빠지고, 과제를 내지 않아서 당연히 F 학점을 받았다. 같은 수업을 다시 수강한 다음 학기에도 또 F 학점. 그리고 지금 무려 같은 수업에 세 번째로 앉아 있다.
교수가 되고 두 번째 해. 유학생 출신인 나는 여전히 짧은 영어로 매번 허덕이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두 번이나 같은 과목에서 학점을 못 받고 다시 강의실에 앉아 있는 제이슨을 만나니 당황스럽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내 탓이 아닌데도.
그래도 제이슨은 날 보면 늘 싱글싱글 웃었다. 미국 남학생치고는 165센티 남짓 키가 작은 제이슨은 공부를 싫어했지만, 학교 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수업 시간에 오더라도 과제도 공부도 해 오지 않았지만,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뭔가 말하라고 하면 늘 빼지 않고 말을 한다.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닥터 킴’에게 늘 미안하다고 하면서 웃는다. 나는 피식 웃는다. 밉지 않다.
'문화와 자아'라는 과목이었다. 제목처럼 때로는 깊이 들어간다. 자신의 마음을 좌우했던 문화는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고백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 1, 2학년은 아직 많이 어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면 마음 속에서 꺼내 남에게 보여 줄 것을 잘 고르지 못한다. 아니, 잘못 꺼낼 걸 감추는 게 많이 서툴다.
놀랍게도 제이슨은 스포케인이라는 워싱턴주의 두 번째 큰 도시에서 살 때 KKK단과 비슷한 백인 우월주의 갱단에 속했다고 했다. 그것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I was damn stupid. Doc." (내가 졸라 멍청했어요! 교수님)
가장 후회했던 일에 대해서 말을 하는 시간에 제이슨이 고백한 말이다. 아시아계 여학생을 이유 없이 괴롭혔던 일을 부끄러워하면서 고백한다. 보트 피플 출신의 부모를 가진 베트남 여자애를. 그러면서 살짝 얼굴이 벌게지는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여학생을 괴롭힌 부끄러움이 아니다.
"너 걔 좋아했지?" 내가 물었다.
"......Yes." 제이슨이 부끄러워하면서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 남자아이들은 좋아하는 여자애가 놀고 있으면 고무줄을 끊는다. 스포케인에 살던 제이슨은 베트남 여자애 린다를 좋아했지만,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그녀를 'gook'이라고 부르며 괴롭혔다. 'gook' 은 베트남 사람을 업신여길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세 번째 내 수업을 듣는 제이슨에게 결국 통과학점을 줬다. 과제는 반도 안 했지만. 제이슨의 솔직한 내면의 고백은 학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학기에도 제이슨은 내 다른 수업을 들었다. 졸업하는데 꼭 필요한 과목이 아닌데도. 이번에는 제법 숙제도 해 온다. 수업에 들어오고 나갈 때, 복도에서 만나면 "헤이, 닥. 왓섭!"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올린다. 제 딴에는 내가 편하게 느껴지나보다.
2.
아! 잊은 게 있다. 두 번째 F학점을 받은 학기에 제이슨의 어머니가 내게 긴 이메일을 보냈다. 자기도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시작하는 이메일. 제이슨의 어머니는 스포케인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는 시간제 교수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2년제 대학인데 한국의 전문대학교와는 좀 다르다. 직업교육을 하는 과도 있긴 하지만 대개 4년제 대학의 2년 과정까지의 과목을 개설한다. 학비가 싸고, 학점이 후하고, 교수들이 연구는 안 해도 되고 학생 지도만 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을 다니거나, 4년제 대학을 갈 성적이 되지 않거나, 성적을 잘 받아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학생들이 주로 다닌다.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에 갈만한 성적을 가진 친구들도 학비를 아끼고,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다니기도 한다.
아무튼 제이슨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아주 성실하지도 않고, 머리가 좋진 않지만, 학점을 받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학점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긴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무시하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학점은 교수의 고유권한이다. 대통령 할애비가 와도 못 바꾼다. 그보다 나는 제이슨을 불러서 더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너는 성인이므로 학점이든, 학교를 그만두건 간에 네가 직접 나한테 설명하고 설득을 하든, 협박을 하든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제이슨을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던 스포케인 시절의 백인우월주의 무리와 어울리던 얘기를 한참 한다. 자기가 놀려먹던 베트남계 린다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이제는 영원히 놓쳐 버렸다고.
제이슨과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제이슨은 아직 많이 어렸다. 스포케인 시절의 후회와 부끄럼을 표현하는 제이슨은 고등학교 1학년 같은 표정이었다. 결국, 어머니가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아직 제이슨이 정신적으로 많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연구실을 나가면서 제이슨은 방학을 하면 알래스카로 가서 있다 오겠다고 했다. 제이슨이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이혼하고 가족을 떠난 아버지가 알래스카에서 게잡이 배를 타고 있다고.
알래스카 게잡이는 베링해까지 배를 타고 나가서 킹크랩을 잡는 위험한 일이다. 베링해에서 잡는 킹크랩은 아주 커서 동해 바다에 가면 먹는 홍게보다 다리 길이는 1/3밖에 안되어도 속살이 4배쯤 많다. 그래서 킹크랩을 잡는 일은 위험해도 보수가 좋다. 킹크랩은 크긴 하지만 게가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바다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게를 잡은 그물을 끌어 올리다 실수로 파도에 휩쓸려 얼음처럼 차가운 알래스카의 바다에 빠지면, 불과 몇 분 안에 체온을 잃고 죽는다. 너무 위험해서 3개월만 일하면 일억을 번다고 하는 알래스카의 게잡이 배.
대화의 말미에 제이슨은 아버지가 자기 가족을 버렸다고 했다. 다운증후군으로 발달장애가 있는 자기 여동생, 아직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엄마와 자기를 버리고 알래스카로 가버렸다고 했다. 어릴 때 제이슨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는, 이번 방학에 다시 만나면 제이슨에게 같이 게잡이 배를 타자고 했다고 한다. 제이슨은 그 얘기를 하면서 어릴 때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보였다. 그리고 난 제이슨을 일 년간 보지 못한다.
3.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에도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지만, 막상 알래스카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난 제이슨은 어색했다. 아버지는 공항에서 제이슨을 바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낡은 트럭을 타고 집으로 갈 때는 제이슨과 아버지 둘 다 그동안 연결하지 못한 시간을 메꾸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 친구처럼 쿨(cool)하게 지낼 자신이 있었다.
도착한 아버지의 집은 모빌 홈(mobile home)이다. 방 두 사이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미국에서는 최하층 사람들이 사는 이동식 주택이다. 스포케인에 살 때도 제이슨은 모빌 홈보다 조금 낫지만 가장 싼 아파트를 전전했다. 정부보조를 받아서. 그 아파트에서 제이슨의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학생들은 답안지를 채점했다. 어머니는 지적이었지만 궁색했다. 제이슨을 여동생을 사랑했다. 동생 에벌린은 다운증후군을 가졌지만, 아기 때부터 에벌린을 보았던 제이슨은 동생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기 때의 에벌린은 너무 예뻤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어머니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 아직 중학생인 제이슨이 에벌린을 봐야 할 때가 많았지만 제이슨은 다른 아이들처럼 그걸 싫어하지 않았다. 에벌린도 제이슨을 잘 따랐다. 친구들은 자기들의 어린 동생들은 에벌린처럼 말을 잘 듣거나 온순하지 않다고 한다. 제이슨은 동생이 "천사같다"고 내게 여러 번 말했다. 제이슨은 대학에서 시간제 교수를 하는 어머니와 알래스타에서 모빌홈에 살며 전형적인 워킹클래스로 사는 아버지가 어떻게 만났을까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둘 다 궁색한 느낌이 같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베트남에서 온 린다는 빛이 났다. 사실 제이슨을 백인우월주의 갱의 동료가 늘 하던 “아시아인은 더럽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린다와 가까이 붙어 앉아 본 기억은 없지만, 제이슨이 린다를 일부러 스쳐 지날 때마다 린다에게서 늘 좋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여동생 에벌린에게서는 린다에게서 나는 그런 냄새가 나질 않았다. 강의와 채점, 그리고 가끔 또 다른 파트타임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에벌린을 돌보려 했지만, 샤워를 시키고 잠을 잘 여유가 없이 속수무책으로 침대에 쓰러져 버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며칠 샤워를 빠뜨린 에벌린에게서는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러나 다 큰 여동생 에벌린이 샤워하는 걸 제이슨이 도울 수는 없었다. 제이슨이 동생 에벌린에게서 나는 냄새를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확실히 린다의 냄새는 달랐다.
“아시안 얘들은 냄새가 나. 걔들은 음식에 무슨 생선 썩을 걸 넣어서 먹는다며?”
갱의 리더 격인 브랜든이 인종차별적인 말을 할 때 제이슨을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반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안다. 브랜든이 월남국수 ‘포’를 좋아한다는 걸. 가끔 차이나타운에 일부러 가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생선을 삭힌 소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지 아시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 전부가 아니다. 가격이 비싸서 제이슨의 가족이 갈 수 없었던 스시 레스토랑은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이고, 한국인들은 바베큐 비프와 김치라는 걸 먹는다는 정도는 제이슨도 알고 있었다. 그건 어머니 때문이다. 대학의 시간제 강사인 어머니는 교양이 있었지만 가난해서 제이슨과 에벌린을 데리고 식당에 갈 때면 늘 가격이 저렴한 아시아 레스토랑에 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대화를 할 때는 마치 늘 같이 지낸 아버지와 아들 같았지만, 막상 알래스카에서 첫 주는 몹시 불편했다. 제이슨의 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서둘러 같이 게잡이 배를 타자고 했다. 원래 게잡이 배를 타는 시즌은 정해져 있고 그 일정에 맞춰서 제이슨이 알래스카에 왔지만 아버지는 서둘렀다. 배를 타기 며칠 전에는 제이슨 혼자 지내라 하고는 집에 며칠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로컬 빠나 친구 집의 주차장에서 술을 마시다 차에서 자곤 했던 것. 아버지는 제이슨과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몰랐다. 그걸 배우기도 전에 제이슨을 떠났었다. 게잡이 배를 타는 것이 위험한 일인 줄은 알지만, 배를 타는 것 말고는 제이슨의 아버지가 아는 것도 아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이슨과 알래스카의 작은 모빌 홈에서 한 주 간 지내면서, 그는 자신이 가르쳐 줄 게 배를 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다. 위험한 게잡이 배를 같이 타자고 한 게 미안했지만, 다만 자기가 제이슨 옆에서 잘 돌봐주면 적어도 제이슨이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기를 위안했다.
게 떼를 만나면 어떤 날은 며칠간 서너 시간도 못 잘 정도로 피곤하다. 다들 잠에 골아떨어졌을 때도 배멀미와 난생 처음 보는 베링해의 추위, 그리고 두려움에 제이슨은 잠을 잘 못 이루었다. 그럴 때면 제이슨은 에벌린과 린다를 생각했다. 제이슨이 스포케인을 떠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제이슨의 성적으로는 대학에 갈 수가 없었다. 멀리 바다가 가까운 도시에 있는 한 진보적인 대학은 성적을 보지도 않고, 학점으로 학생을 평가하지도 않으며, 자유롭게 자기가 공부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제이슨은 아는 사람들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제이슨이 한때 레드넥 갱에 속했던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안다. 게다가, 서너 블럭 건너서 린다가 산다. 듣기로 린다는 곤자가(Gonzaga) 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곤자가는 지역의 사립 명문대학교이다. 동양에서 이민 온 얘들은 다들 비싸고 좋은 대학에 간다. 제이슨이 린다를 괴롭혔을 때, 린다가 비웃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시선을 잊지 못한다. 결국 제이슨은 레드넥 갱을 그저 꽁무니만 따라다녔을 뿐이다.
제이슨은 고래를 보았다. 게잡이 배는 컸지만 다들 조심하라고 했다. 어디든 기둥을 잡고 있으라고. 보통 고래는 배를 피해 가지만 제이슨이 본 고래는 배를 향해서 왔다. 아주 가까이 부딪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제이슨은 겁이 덜컥 났지만, 고래를 잘 보고 싶었다. 제이슨은 고래를 보려고 용기를 내서 배의 가장 앞쪽에 있는 기둥을 잡았다. 부딪칠 것 같이 다가오던 고래는 어느 순간 커다란 배를 알아차렸는지 방향을 살짝 바뀌었다. 그리고 유유히 배에서 멀어졌다. 제인슨에게 고래는 아주 자유로워 보였다.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멀리 수평선으로 사라져가는 고래를 한참 쳐다보았다.
전부 다 제이슨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약속도 없이 찾아온 제이슨에게. 평소에 까불거리던 제이슨은 자신의 얘기가 뻘쭉했는지 엉뚱한 말을 했다.
"I got some nice pot, the best(나 죽이는 마리화나 있어유)."
대학이 있던 도시는 상당한 자유로운 분위기라 그 동네 학생들은 약을 많이 했다.
"Doc, I can give you some if you want. (교수님이 원하면 턱별히 좀 줄 수 있삼. '꽁'짜로)"
낯가림이 없던 제이슨은 내게 자기에게 좋은 마리화나가 있다고 한다. 주고 싶다는 말이다. 교수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우스웠지만 그게 제이슨이 할 수 있는 친근함의 표현이라서 나는 당연히 제이슨을 개학하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또 제이슨의 다른 얘기가 생각난다. 그날 제이슨이 내 방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아버지와의 이별 얘기.
"Next time, let's get a whale, son(아들! 다음엔 고래를 잡자)!"
아버지가 농담을 했다. 알래스카 공항에서.
"Definitely. We'll do it next winter(당근! 내년 겨울에)!" 제이슨이 맞장구쳤다.
쿨하게 헤어지는 연습이었다. 서툴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같이 위험한 게잡이 배를 석 달간 같이 탄 기억이 있어서. 그러나 둘 다 알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제이슨은 대학이 있는 작은 도시 벨링햄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의욕이 없어졌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대신 제이슨은 방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자꾸 어디론가 갔다. 제이슨은 몽롱했다. 아직 은행에는 돈이 많이 있다.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본 적은 없다. 제이슨은 자기를 기다리는 동생 에벌린에게 선물을 사 주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괜찮은 중고 자동차를 사라고 보태주고 싶었다. 물론, 가끔 약을 살 돈을 남기고 싶었다. 제이슨은 약을 좋아했지만, 그래도 속으로 가끔만 해야지, 점점 줄일 거라고 늘 생각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면, 늘 또 다른 생각 하나가 다시 찾아왔다. 가난하고, 키 작고, 머리도 나쁜 자기는 앞으로 뭘 하고 살까? 알래스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게를 석 달간 잡았던 바다는 무서웠다. 아버지가 옆에서 도와줬지만, 앞으로 아버지와 다시 게잡이 배를 탈 것 같지는 않았다. 스포케인을 떠났을 때는 어디선가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고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아버지를 만나면, 게잡이 배를 같이 타면서 친구처럼 쿨하게 지내고 돈도 벌고. 거기서 돌아오면 다시 스포케인에 가 볼 것이다. 동생 에벌린에게 선물을 사 주고, 마치 우연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린다가 사는 동네나 그녀가 다니는 곤자가 대학에도 가 볼 것이다. 하지만 내년 겨울에 다시 가더라도 그곳에 고래는 없다. 제이슨은 돌아오면서 그걸 알고 있었다. 몽롱해진다. 그럴 때면 멀리서 커다란 고래가 자신에게로 서서히 헤엄치면서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제이슨은 어느 날 약물 쇼크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지난 10년간 살인사건이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심심한 동네인 이 작은 도시에서 대학생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일은 신문에 큰 기사로 났다.
4.
시애틀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 나가서 고래를 구경하는 투어가 있다. 몇 시간을 지루하게 바다에 나가야 하지만 관광객들은 갈 때마다 고래를 보지 못한다. 그러면 가이드가 말한다.
"이상하게 고래가 안 나타나는 날이 있어요. 여러분은 정말 운이 없군요. 대신 기가 막힌 경치의 바닷새의 서식지로 모십니다."
원래 고래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는 투어이고 가이드는 늘 같은 멘트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싼 고래 관람 투어에 속는다. 멀리서 친구나 친척이 놀러 오면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데리고 가는 로컬사람들은 가 봐야 고래가 없다는 걸 이미 안다. 그래도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성화로 로컬사람들은 여러 번 고래 투어에 간다. 나중에는 고래가 나오든, 안 나오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의 고래를 언젠가 만나려는 오랜 기약을 안 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