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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23. 2023

시간이라는 요소

원인과 결과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

어떤 의미가 다발로 묶여 하나의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은 시간적인 요소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그런 연결 다발은 머릿속에서 시간적으로 순서로 처리된다. 


시간은 두 가지가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시간과 우리들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시간이다. 이 두 종류의 시간은 같지 않다.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자연계의 시간은 인간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자연계의 시간은 논리학의 대상이 아니다(물론 인간은 자연계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머릿속 시간을 섬세하고 만들고 타당한지 검증한다). 논리학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즉, 연결)에 관한 지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릿속 시간은 앞에서 이야기한 연결 다발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연계의 시간과 비교해 보면서 그 연결이 과연 타당한지 검증한다. 머릿속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가고, 어떤 이에게는 느리다. 어떤 이의 시간은 촘촘하고, 어떤 이의 시간은 성기다. 누군가는 과거에서 벌어진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두려워한다. 이처럼 머릿속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형식은 존재한다. 순서이다. 


순서만큼은 누구의 머릿속 시간에서든 있다. 시작이 있고, 시작의 시작이 있으며, 그 시작의 시작의 시작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끝이 있다면 그 끝의 끝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시간 때문에 어떤 연결은 방향성을 갖게 되는데, 그때의 시간적인 연결의 방향성 관계를 일컬어 앞에 있으면서 뒤의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인’이라 부르고, 뒤에 있으면서 앞의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결과’라 부른다. 이런 관계를 일컬어 인과관계라 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서 시간적으로 앞뒤에 위치할 수 있고, 이 경우 인과관계라 부르지 않고 단순한 선후관계로 본다. 어떤 관계이든 시간적인 요소에서는 순서가 있다.


물리적으로 정확히 계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머릿속 시간은 머리 밖 자연계의 시계와는 다르다. 하지만 시계처럼 아주 분명하게 거꾸로 흐를 수 없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이 순서가, 이 방향성이, 이 인관관계가 머릿속 연결에 질서를 부여하고 연결을 검증하며 잘못된 연결을 분별해 낸다. 다음 단어들을 보자.


출발, 졸업, 도착, 출력, 3교시, 성적, 입학, 입력, 1교시, 시험


이들 단어를 두 개씩 한 쌍으로 묶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출발, 도착}, {입학, 졸업}, {입력, 출력}, {1교시, 3교시}, {시험, 성적}으로 묶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없이 선후 관계를, 출발 → 도착, 입학 → 졸업, 입력 → 출력, 1교시 → 3교시, 시험 → 성적으로 이해한다. 누구도 출발 ← 도착으로 거꾸로 이해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 앞에 있는 것이 원인이 되며, 뒤에 나오는 것이 결과가 된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결과가 있다면 그것에 앞선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시간적인 연결에서는 실수나 오류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머릿속에서 생기는 연결은 두 개 한 쌍이 아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다발을 이루어서 시간적으로 연결된다. 복잡해지고 혼란이 발생하며, 실수와 오류가 생긴다. 이야기를 좀 더 진전시켜 보자.


인간의 머릿속에서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수많은 연결은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어떤 마법의 상자가 있다. 이 상자에 뭔가를 넣었더니 뭔가가 나왔다. 상자에 입력한 것을 x라 표현하고, 상자에서 나온 것을 y로 표시한다. x를 넣었더니 y가 나왔다.



 y가 출력되지 않았다면 입력한 x가 없었을 것이다. x는 반드시 y에 시간적으로 선행한다. y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y를 발생시킨 x가 먼저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력되는 x가 바뀐다면 y도 변화할 것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x와 y를 일컬어 ‘변수’라 부른다. 입력은 원인이 되고, 출력은 결과가 된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은 입력과 출력의 연결이 된다.


이러한 입력 변수 x와 출력 변수 y의 연결을 순서쌍 (x, y)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마법상자를 일컬어 함수라고 부르며, x를 넣었더니 무엇이 나올까를 함수 기호 f(x)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y=f(x)이다. 순서쌍으로 표현하면, (x, f(x))이다. 이 마법상자 안에서 만들어지는 연결에는 앞서 말한 규칙이 있다. 다시 말해 보자. x를 넣으면 y가 나온다, x가 바뀌면 y도 바뀔 수 있다, y가 없다면 x도 없었을 것이다, y를 알면 x가 입력되었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등의 규칙이다. 이런 규칙을 일컬어, 어떤 원인이 무슨 결과를 일으킨다는 수학적인 표현으로 함수라 불렀던 것이다. 거꾸로 어떤 결과를 보고 무슨 원인이 있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는 생각을 수학적인 표현으로 방정식이라 부른다. 이런 표현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원리가 바로 시간적인 요소다. x가 y에 선행한다. 입력이 출력에 앞서며, 결과 앞에는 시간적으로 먼저 존재하는 원인이 있다.


마법상자의 규칙이 간단하다면 우리 인간은 쉽게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다. 마법상자가 3의 배수를 만드는 상자라고 가정해 보자. 수학적으로는 3x로 표현된다. 즉, f(x)=3x. 자연수를 차례대로 넣으면 y는 {3, 6, 9, 12, …}가 된다. 이처럼 정해진 규칙(함수)을 원리라고 부르고, 이 원리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데, 이런 추론 방식을 연역법이라고 부른다. 원리가 맞다면 연역법에서는 논리적인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f(x)=3x
그런데 x=5,
그러므로 f(3)=15이다.


인간이 수학에 재미를 들인 까닭은 수학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자명하게 전승된 연역논리의 익숙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대표적인 연역논리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자, 이번에는 우리가 이 마법상자의 정체를 모른다고 가정하자. 즉, 아까와 달리 일반적인 원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이 마법상자로부터 숫자 3이 나왔다. 그다음 6, 9, 12가 차례대로 나왔다. 그다음으로 나올 숫자는 무엇일까? 손오공은 어렵지 않게 15라는 숫자를 연결했다. 손오공이 생각하기를 이 마법상자의 원리는 3의 배수라는 것이다. 즉, f(x)=3x이다. 과연 그런 것처럼 보인다. 손오공의 이런 인과관계 추론 방식을 귀납법이라고 한다. 오늘날 과학 혹은 학문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연구 방식이 이런 추론이다.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추론한다. 


하지만 귀납법은 겸손이 필요한 논리다. 손오공은 확신하고 그 확신은 대체로 맞지만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경우에서 15라고 결과를 내 손오공과 달리 사오정은 3이라는 결과를 제시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마법상자에서 순서대로 나오는 숫자들은 아래와 같다.


손오공: 3, 6, 9, 12, 15, 18…

사오정: 3, 6, 9, 12, 3, 6, 9…


그런데 사실 이 마법상자는 시계에서 이루어지는 순열이다! 시계에서는 15가 나올 수 없다. 



손오공의 추론이 타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손오공은 틀렸고 사오정의 추론이 옳았던 것이다. 사오정도 귀납법을 썼던 것이므로 귀납법 자체가 오류는 아니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마법상자의 시계가 망가져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면 사오정의 추론도 맞지 않게 된다. 귀납법은 대체로 좋은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때때로 틀릴 수도 있고, 변명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저지르는, 논리적 잘못의 상당수는 귀납법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내가 만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오른손잡이였어. 그런데 오바마는 성공한 사람이잖아? 그러므로 오바마는 오른손잡일 거야.


이런 귀납법의 오류는 실제로는 간단하지 않고 쉽게 은폐된다. 비록 오류가 있는 추론이라 하더라도 맞을 확률이 높다면 인간은 거기에 끌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머리는 타당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인과관계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시간적으로 연결된 것은 순서가 있다는 것이고,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라는 순서라면, 원인을 가지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으며, 결과를 보고 원인을 추론할 수 있으리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는 무엇이든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타당하지만, 타인의 머릿속에서는 배척될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의 시간적인 요소와 타인의 머릿속에 있는 시간적인 요소는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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