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 수업 시간마다 잘 달래고, 다독이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11월. 곧 있음 학기말이지 않는가. 나도 지쳤다. 그래서 오늘 정색해버렸다.
며칠 전,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 만족도 조사에서 2학년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한 학생이 '정색하지 마시라는'글을 남겼는데 아직도 그것이 내 안에서 소화되지 않았다.
흘려보내고 싶은데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카락 끝에 찰싹 달라붙어서 졸졸 나를 따라다니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더니 머리카락을 다 자르면 되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나참ㅠ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정색을 즐겨하지 않았다.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그리고 힘들었다. 오늘은 더더욱.
그렇게 2학년 교실에서 정색하고 나왔는데, 청소 시간에 그 반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 아직도 화나셨어요? 제가 있잖아요! 한빈이^^"라고 말했다. 피식 웃고 "그래."라고 말하며 대화를 끝내려는데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졌다. 늘 그 아이에게 듣던 말인데, 늘 가볍게 여겼던 말인데 얼어붙은 마음이 갑자기 녹아버렸다!
차가운 얼음장 같던 마음은 또 한번 뜨거운 마음을 만나고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바로 한참 선배인 동료 선생님께서 사 오신 만두에 말이다.
청소가 끝나고, 아이들도 다 집으로 가는 시간. 4시 10분.
퇴근까지 시간이 남아 천천히 정리하는 중인데 만두를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 만두를 하나 입에 넣었다. 그리고 노란 단무지도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런데 이 단무지가 정말 맛있었다. 그 아삭아삭한 식감과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만두를 많이 먹어버렸다.
하하. 단무지를 먹으려고 만두를 먹다니.
단무지가 엄청 맛있다는 칭찬을 퍼붓고 난 나는, 퇴근길에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 따뜻한 말을 해줄 때, 그때 텅 빈 마음에 온기가 가득 차오른다는 것을.
만두를 사 오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의 마침표를 찍은 나는 머리카락에 붙어 달랑거리고 있는 걱정도 뚝 떼 버렸다.
정색이라는 말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그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다. 걱정을 사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해준 응원의 말과 감사의 말은 까맣게 싹 잊고.
한빈이의 따뜻함이, 그리고 내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맛있는 만두와 단무지를 준비해서 먹어보라는 그 따뜻함이 오늘 하루를 또 살 수 있게 한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