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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Apr 27. 2024

24.4.27


쉰다섯 사람이 바다를 보고 운다. 아무도 곁에 머무르지 않았던 시간, 아이의 몸을 감싸 안은 유일한 것은 파도였기에. 어떤 상처는 낫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어떤 커다란 사랑이 그에게 다가와 어루만져도. 스무 살이나 어린, 겨우 일주일 전에 만난 낯선 사람 품에 안겨 펑펑 울며 유일하게 나를 보호해 주었던 것에 대해 더듬거리며 고백할 때 나도 울었다. 나에게도 영원히 낫지 않는 상처가 있기에.

그가 파도에 안겼다면 나는 물방울 같은 텍스트에 들어가 웅크렸다. 비물질인 텍스트가 만든 말랑하지만 견고한 벽에 갇혀 물질로부터 나를 차단했다. 정의 내리고 의미를 찾고 답을 구하고 끝없이 요구하기만 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심지어 물어보지도 않는 세계로부터. 움츠리고 겁먹으면 그건 나약한 거라고 말하며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강요했던 이들로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상처에 조악한 약을 바르고 거친 천으로 감싸고는 정의와 구원을 선물한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진 ‘지극히 선한 벗’들로부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평생을 달려와 파도 앞에 선 자가 왜 흐느꼈는지. 그도 끝없이 비틀린 두 발로 서서 ‘잘 살아보겠다’고 애썼을 거다. 주변이 그걸 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의 곁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지금의 그는 어린 시절의 그처럼 나약하지도 외롭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 연약한 소년을 받아안았던 파도처럼 묵묵한 존재는 없을 테니까.

나에게 시란, 다친 무릎을 감싸 안고 일어날 수 없는 어린 소녀의 곁에 가만히 앉아 머무르는 것. 아침과 오후와 저녁이 지나 별이 뜨고 지고 다시 해가 뜨고 지고 아득히 길고 오랜 시간, 소녀의 머리카락이 발등을 덮고 들판을 지나 행성의 모든 대지에 흘러도 아무 말 없이 같이 있는 것. 소녀가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나는 커다란 정의를 논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결국 그가 지나가는 길, 수없이 웅크리고 있는 작은 소년과 소녀를 지나쳐야만 하기에. 그는 웅변하는 자, 궤도를 수정하는 자이므로. 그런 사람도 필요하다. 인류 단위의 진보를 위해서.

하지만 나는 그가 지나친 길에 웅크린 아이들의 곁에 잠깐 머무는 햇볕 한 줌의 시를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겨우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그것만이 나를 구원하는 일.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는 물방울의 시에 머물러 끝내 고요해지는 일.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파도가 되기를. 나도 모르고 그도 모르는 막막하고 참담한 우주가 꼭 우리 사이를 가로막기를. 그 광활을 오로지 파도만이, 햇빛만이, 시만이 건너가기를. 느리게 그리고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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