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악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과하는 것은 지는 게 아니니까요. 사과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고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지키는 행위에요.
올해 알게 된 어떤 분이 끝끝내 불편했던 이유는 이분이 사과를 받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않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나는 느린 사람이니까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오래 들여다보거든요. 그러느라 내가 상하는데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느려지기까지 오래 걸렸으니까요, 나도.
얇아 잘 찢어지는 살갗 아래 웅크리고 떨고 있는 나는 얼마나 잘 상처받고 잘 낫지도 않는지요. 어렸을 때엔 그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섣불리 타인을 정의 내리고 마음에서 치워버렸어요. 그런데 사람은 내 생각보다 복잡하더군요. 사회성이 떨어져 유년 시절에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책과 공상으로만 세계를 구축한 자는 이렇게 더디 자라는 거예요.
책에서는 인간의 선악이 비교적 명확하죠. 텍스트는 풍부하지만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그걸 캐릭터성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하지만 리얼월드에서 부대끼는 우리 인간들은 캐릭터가 아니죠. 그 복잡함을 아무리 오래 들여다본들 알겠어요. 스스로도 모를 텐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과의 관계에선 최선을 다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을 아직 몰라서 그렇다고 계속 판단을 미루기에는 내가 받는 상처가 너무 크니까요. 그 사람은 매우 복잡한 유기체이지만 나에게 강하게 부딪치는 단면이 나의 세계에서 그이가 갖는 캐릭터인 거예요. 선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무겁고 불편함과 편안함이라고 할까요. 시간을 들여 오래 보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사람은 나에겐 불편한 사람.
알게 되었다고 해도 내가 그분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나에겐 미움받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거든요. 그건 나의 약점이고, 그것이 아마 이번 생을 망칠 거예요. 나는 다만 목을 길게 늘이고 다가오는 계절 앞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어요. 그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포즈인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