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친구 A에게,
A야,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네가 곁에 있을 때에는 너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겨서 편지를 쓸 생각 조차 하지 못 했는데, 지금이 되어서야 네가 이제 받아볼 수 없게 된 편지를 써 보려고 해. 너무 늦었다며 나를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너와 비슷한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날이라고 하니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해보려 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새내기 배움터에서였어. 퀴즈 게임을 하는데 포켓몬 도감을 줄줄 외우는 너를 보고 내가 감탄하며 "넌 이 학교 어떻게 들어왔어?"라고 물었던 거 기억나니? 그러자 너는 너의 특유의 그 웃음을 지어 보였어. 입꼬리는 쭉 올라가고 눈꼬리는 쓱 내려가는 누구보다도 천진난만한 웃음 말이야. 그날 하루 종일 붙어있어 놓고 다음날 네가 내게 “이채 안녕”하고 인사하자 안경 낀 널 내가 못 알아보고 "그런데 네 이름이 뭐였지?"라고 물어봐서 네가 정말 어이없어했지. 술을 처음으로 많이 마셔본 날이라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네가 떠난 뒤로 이 순간이 왠지 모르게 문득 한 번씩 떠오르고는 해.
다른 친구들과 새터 이야기를 하며 그때는 우리가 참 한심했다, 그냥 새터 가지 말 걸 그랬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 너와 친구가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네가 내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내 삶은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 나는 순대국밥 한 번 먹어보지 못 한 촌놈이었겠지.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호객하는 아주머니들을 피해서 몇 층 어느 가게에 가야 하는지 몰랐을 거고, 밤에 먹는 치킨이랑 불닭볶음면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몰랐을 거고, 보드게임 카페에서 콜라와 아이스티를 홀짝거리며 온종일 보드게임만 해보지도 못 했을 거고 , 만화 카페에 나란히 누워서 만화책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것도 몰랐을 거고, 낡은 기숙사에서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대나무 숲에서 저격도 못 당해봤을 거고, 공짜로 전문가 수준의 마사지를 받아보지도 못 했을 거고, 드러머 친구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도 몰랐을 거고, 친구네 단독주택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친구의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했을 거야. 너의 부모님께서 10-20년 후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는데, 너에게는 그 후로 3년이라는 시간밖에 더 주어지지 않았구나.
너의 삶이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을 때, 너도 이런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니? 아니면 너를 외면하는 이 세상이 야속해서 다 잊었을까? 우리가 너무 붙어 다녀서 내가 좋아하던 조교님이 우리 둘이 사귀는 줄 알았었는데, 그렇게 가까웠던 우리였는데, 네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으로는 너의 행동거지를 비웃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을지... 그게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
우리는 친구로 지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걸 진짜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이상한 소리를 하면 기숙사 지하 1층을 뺑뺑 돌며 쫓아가서 때려주었을 뿐이지. 근데 그런 우리가 딱 한 번 진짜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잃었어. 혹시 그때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해서 너에게 상처를 주었니? 아마 그랬겠지. 네가 너의 정체성에 대해, 또 그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내게 어렵게 털어놨었는데, 그것도 생각 못 하고 너한테 입 바른 소리 했다고 속 시원해하던 내가 너무 밉다.
A야,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너를 무심코 '남자아이'라고 잘못 지칭하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가장 먼저 믿고 커밍아웃 해준 친구가 난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몇 번 씩이나 반복해서 나 마저 너에게 상처를 줘야 했을까? 네가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태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왜 난 늘 나의 작은 어려움이 더 먼저였을까? 왜 네가 다른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하러 온 자리에 내가 껴서 하찮은 회사 얘기나 하며 눈물을 쏟았어야 했을까. 너를 더 많이 돌아봤어야 하는데, 너를 더 먼저 많이 찾았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부족한 친구라서 그러지 못해 미안해. 네가 자살기도를 했다고 했을 때 그냥 "안 돼, 어떻게든 살아야 돼" 같은 상투적인 말 보다 내가 널 잃는다면 얼마나 슬플지, 제발 날 위해서라도 꼭 좀 살아달라고 말했다면 네가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나 너무 궁금한 게 많은데, 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은데, 너한테 전화하면 지금이라도 바로 "여보 세여? 왜, 이채!"라고 하면서 받을 것 같은데, 너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너의 유골함에 쓰인 이름을 보고 나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어. 늘 출석부나 활동 명단에서 보던 너의 이름인데, 왜 장례식장에, 화장터 대기명단에 너의 이름이 "고" 자와 함께 쓰여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못나게도 너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는데, 네가 싫어하는 내 못생긴 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 너는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늘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보았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말이야.
'못 해'를 '모대'라고, '의사'를 '으사'라고 발음한다고 너를 놀릴 때 사투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나에게 알려준 내 친구. 다수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수의 삶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설득하는 단순한 일이 왜 이렇게까지도 힘든 걸까? 틀린 게 아니라 단지 달랐을 뿐이고, 그래서 너무 특별했던 네 삶을 사느라 많이 힘들었지? 난 아직도 널 보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내가 사후세계를 믿을만한 위인은 못 되지만, 그래도 네가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A야, 내가 이 말을 직접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쉽고 슬프지만, 너는 내게 정말 정말로 소중한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많이 사랑했어. 아프게 해서 미안해. 끝까지 너를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럼에도 이런 나를 그토록 믿어주고 좋아해 줘서 고마워.
그럼 잘 자, A야. 좋은 꿈 꿔.
2021. 11. 20
너를 많이 그리워하는 이채로부터
*매년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의 존엄과 권리에 대하여 생각하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