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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내 곁의 사람들과 귀한 시간을 나누며 보낸 찬란한 여름, 안녕!

by 옫아

<원천강본풀이>, 일명 '오늘이 이야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신화를 꽤 좋아한다. 나의 서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끼는 편이다.

해당 이야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부모, 즉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 속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부탁을 해결해주고 도와준다. 그런 과정을 통해 주인공 역시 본인이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질문에 대한 답도 마침내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타인들을 만났기에 자신을 만난다는 이 서사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 서사가 내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의 질문을 내가 아닌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고, 역으로 타인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줄 수 있으며 이러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답을 찾아가고, 궁극적으로 내가 나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길었으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우린 때론 누군가들을 통해 나를 마주한다,는 것. 그 진리에 진심으로 공명하는 순간 우리는 더 나다운 나를 향해 다가갈 수 있다. MBTI에서 I라고 주창하는 E인 나지만, 사람이 좋기도 싫기도 왔다갔다 한다. 대학교 시절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학교-기숙사만 오가기도 했다. 관계를 맺는 게 너무도 지쳤는데, 또 때론 어떤 관계에서 얻는 힘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실감한다.

육아휴직 중인, 지금. 만 1세도 안 된 아가를 키우는 이 뜨거운 여름.

나는 여러 이들을 만나며 많은 걸 배우고, 좋은 영감과 자극을 얻었다. 또 내 아가를 통해 세계가 확장되기도 했다. 복직 전 가슴 속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었고, 복직하고 더 바빠질 일상으로 이동하기 전 아주 조금의 여유라도 있을 때 보다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여러 일정들과 남편의 배려 속에서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특별하기에 쉬이 그 기록을 놓치지 않고 남겨두고 싶어 이 포스팅을 쓴다. 유치원 때 친구부터 회사 동료, 그리고 아기랑 같이 다니는 문화센터 동기들까지 정말 여러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사람을 만나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다른 과제(이를테면 포포를 개월별 발달에 맞게 키우기 등)에 더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여유가 없다는 핑계가 먼저 나오곤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우리는 더 커진다.

좋은 에너지,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을 때만이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그토록 예쁜 아이이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복잡한 마음 속에 육아에 지쳐갔다.

고립되고 싶지 않고, 포포의 엄마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수식어의 '나'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환기하고 싶었으며 복직 전 혼란스러운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며 잘 가다듬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부름에도 기꺼이 응답해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

기꺼이 집으로 와주어 육아라는 고된 노동을 같이 나눠주고,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힘있게 알려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지금의 나는 너무도 잘해주고 있다며 따뜻한 위안을 주고, 함께했던 시절의 낭만을 환기시켜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또한 말로만 듣던 '공동육아'의 힘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같이 있을 때 더 즐겁고,

엄마들 역시 같이 있을 때만이 얻는 위안과 에너지가 있다.

포포는 일찍이 낯가림도 심하고

소음에 예민할 뿐더러 친구들을 어려워했는데.

한 두명씩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늘어날수록,

포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친구의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조심스레 같이 놀며 더 밝은 아이가 되어갔다.

포포를 혼자(혹은 남편)의 힘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포포도 다른 이들과 연결될 때 더 커진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애정을 듬뿍 받고 새로운 이들과 함께할수록, 포포의 우주는 더 깊고 넓어진다.

나와 포포는 올해 여름에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진 않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하고 그들을 만나고 올 때면

마치 즐거웠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많은 걸 느끼고온, 그리하여 일상이 더 다채로워지는 그런 여행.

기쁜 여름이었다.

내 곁의 사람들과 귀한 시간을 나누며

많은 것들 배우고 느낀 찬란한 여름이었다.

내 아기를 사랑해주는 이들 덕분에 행복했다.

또 나 역시도 다른 아기들을 만나는 동안,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며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이들 한 명 한 명이 이런 사랑을 받고

여기까지 잘 자랐구나, 라는 당연한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기도 했다.

좋은 에너지를 잘 받았으니,

참되게 쓸 차례라고 생각한다. 모두 감사합니다 ❤

일회성으로 그치기에 아쉬운 만남들이 너무도 많아,

하나둘씩 다음을 기약하다보니

9월 달력도 약속들로 가득 차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든든한 캘린더가 되었다.

뜨거운 여름만큼 가을도 풍요롭게 채워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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