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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ug 31. 2024

오, 나의 여름! (3)

오 나의 태양, 돌아오라 소렌토로

로마에서 나폴리를 거쳐 소렌토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해 본 적 없는 남편은 아말피 해변의 아름다움에 대해 여러 미디어에서 봐온 터라 그곳에 숙소를 잡고 싶어 했지만, 한창 성수기의 포지타노는 남는 방이 없을뿐더러 가격마저 6년 전의 7배였다. 2018년 5월 100불에 묵었던 포지타노의 에어비앤비 방 한 칸이 2024년 7월 700불이 되어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 여행객이 증가하면서 유럽의 관광지들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말피 해변과 접근성이 좋은 휴양 도시 소렌토에 적당한 가격의 에어비앤비를 구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이 소유한 에어비앤비였는데, 그 덕택에 조식과 호텔의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위치였다. 소렌토 구도심 입구에 위치해 걸어서 항구에 나가거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 명당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렌토를 기점으로 매일 다른 곳에 가서 수영을 하는 여행 일정을 잡았다.


소렌토 선착장
소렌토 선착장 옆 해변


우리 부부는 물을 좋아한다. 요즘 한컷 통통해진 나를 남편은 바다사자라 부른다. 예전엔 수영하면 늘씬한 물개에 비유하곤 했었는데 나의 별명은 점점 커다란 동물로 변해간다.

집에 짐을 풀기도 전에 바로 찾은 곳은 Bagni Regina Giovanna라는 해변이었다. 호텔 로비에 짐을 맡겨 놓고 수영복을 속에 챙겨 입은 채, 동네 슈퍼에서 마리오 아저씨가 싸주는 샌드위치를 하나 싸들고 30분 정도 버스를 탄 후 해변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가파른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로마 시대의 빌라 폐허 아래 자연이 만들어 낸 아치 지형과 맑은 바닷물을 마주하게 된다. 남편은 요즘 급격히 체력이 달려서 잠시 버스를 타는 동안 멀미를 했고, 해변에 다 달아서는 앉을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자신은 수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피곤한 몸은 주변의 아름다움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좋은 곳에 와서 수영 안 하면 무슨 의미야?' 설득하는 것도 잠시, 그의 똥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나는 홀로 바다에 들어갔다. 아치형 기둥이 넓은 지중해와 아늑한 만의 경계를 이루었고 젊은이들은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남편 없이 홀로 수영을 하니 조금은 쓸쓸해 곧 물 밖으로 나왔지만 남편은 이미 겉옷과 휴대폰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였다. 통통한 배를 내민 비키니를 입고 그를 찾아 헤매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 겨우 그를 발견했다. 한 바가지 쏘아붙이고 꿀밤을 콕 때려줬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이 좋은 곳에 같이 와서 함께 하지도 않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린 대가였다. 마음껏 물놀이를 즐기지 못한 탓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피곤하다는 남편을 데리고 계속 밖에 있을 수 없었기에 숙소에 들어가 쉬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림에도 할아버지처럼 골골하는 남편의 체력에 화도 나고 걱정도 됐다. 소렌토 까지 와서도 소파에 누워 휴대폰 축구게임을 하는 남편을 잔뜩 흘겨보고는 테라스에 앉아 남은 여행의 일정을 짰다. 정처 없이 떠도는 스탠바이 여행자지만, 그만큼 빠르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 남편의 체력 안배를 위해 다음날은 카프리섬, 그다음 날은 피오르드 해변에 가는 것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교통편과 식사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여전히 누워있는 남편을 위해 혹시 몰라 가져온 라면을 끓여 함께 냠냠 먹었다. 다 먹고선 '너무 맛있었어, 잘 먹었어.' 하는 남편을 보고 나와 너, 둘로 이루어진 가정을 돌보기 위해 홀로 외벌이 하는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도 그의 직장과 그가 나와 떨어져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 때문이었다. 예쁜 말 한마디는 서로가 안 보이는 각자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타국에 와서 가족과, 친구, 직장 없이 지내는 나의 마음과, 홀로 가정을 책임지고자 노력하는 그의 마음이 라면 한 그릇으로 투명하게 읽혔다.

남편이 수영을 거부한 해변
저녁 산책길(엄청난 관광객들)


사이좋게 저녁 산책을 하고 다음날, 우리는 카프리로 향했다. 모든 것이 돈, 돈, 돈인 초 절정 성수기의 이탈리아는 섬으로 들어가는 보트와 물, 버스 모든 것에 두 배 이상의 가격이 책정되는 듯했다. 현지의 교통수단을 체험하기 위해 푸니쿨라 탑승라인에 줄을 섰을 때는, 디즈니랜드의 가장 인기 많은 놀이기구에 줄을 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50분을 기다려 푸니쿨라를 타고, 30분을 기다려 마을버스를 탔다. 내가 원하는 여행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카프리 방문은 관광 공장이 찍어낸듯 동일한 경험을 하기 위해 줄을 선 봉제인형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은 또다시 뱃멀미와 차멀미를 호소했다. 하루가 달리 약해지는 남편의 체력에는 정말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 돈을 냈으니, 계획한 바는 끝까지 해내야 하는 법. 남편의 멀미에는 8유로의 레몬에이드를 처방하고 우리는 뜨거운 볕을 뚫고 카프리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일인 의자 리프트를 탔다. 숨 막히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벗어나 발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중해를 보니 '와 볼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보이는 풍경에 한참을 설렜다. 카프리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해수욕이었다. 산에서 겨우 내려와 땀을 뻘뻘 흘린 나와 남편, 두 물개는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다. 우리는 깊숙한 바다까지 헤엄쳤고 시원한 바다에 감싸 안긴 아기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소렌토의 이틑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카프리 일인용 리프트
리프트 정상에서
카프리 해변에서 수영을
카프리섬


소렌토에서의 셋째 날은 아말피 해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지형으로 손꼽히는 Fiordo di Furore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수영복을 챙겨 입고, 8시 30분 버스를 시타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해안을 달렸다. 한 시간 반 가량을 가는 길에서 남편은 또 한 번 멀미에 지친 모습을 보였다. 창가로 와서 풍경을 보면 나아진다는 내 말은 결코 듣지 않았다. 멀미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고집쟁이에게 또 한 번 꿀밤을 주려다가 겨우 참았다. 아침 일찍 도착한 피오르드 해변은 그늘이 져 추웠다. 태양이 골짜기 사이에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마침내 물이 데워져 따땃한 공기가 좁은 피오르드를 채우기 시작하며 우리는 물안으로 첨벙 들어갔다. 시원하고 깨끗한 바다는 몸과 마음을 정화해 준다. 바닷물을 만끽하며 30미터 높이의 차도와 따뜻한 햇볕,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그렇게 그곳에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 가장 앞자리에 앉아 한결 수월했다. 아말피 해변은 끝없이 펼쳐졌고 눈부셨다. 소렌토에서의 마지막 밤. 이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Three Tenors Concert를 찾았다. 세계 3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의 The three tenors concert를 모티브로 하는 공연이었고, 소렌토 미술관이 영업을 종료한 저녁시간, 한 홀에서 이루어졌다. 낭만주의 시대 귀족이 된 것처럼 자그만 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너무나도 특별했다. 이미 잘 알려진 가곡들이 각각의 개성이 담긴 세 테너의 목소리에 실려 미술관을 채웠다. 낭만에 실려 넘실거리는 [오 솔레미오(오, 나의 태양)]과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들으며 우리는 소렌토의 밤길을 걸었다. 손을 잡고 걷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피오르드 해변
다이빙 하는 청년을 보세요!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에게 온 순간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 많은 문화와 자연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세상과 서로에게 감사하며 살겠노라 다짐했다.

올여름 우리의 이태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콘서트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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