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 Jun 27. 2020

13. 행복의 척도 오브 발리

예민충도 개들과 함께 행복해졌다.

 행복하지 않으면 두들겨 맞을 것만 같았던 발리

 ‘발리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행복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 거리 하나만 대 보시오.’

라고 한다면 나는 발리에서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는 개들이라고 할 것이다.

발리에서 길을 걷다 보면 사람도 많지만 개도 엄청나게 많다. 정말 엄청나게.

 그래서 장담컨대 수많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마다 각자 다른 언어로 똑같이 이 말 한마디는 꼭 한다.

“이거 뭐 개판이군.”

하지만 막상 개들을 보면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아, 행복도 행복이지만 쟤네들 그야말로 상전이다.

얘는 오랜만에 본 고양이지만, 쌀국수 집에서 손님들이 앉아야 할 자리에 당연히 누워 낮잠을 자는 상전 고양이



우선 요가의 성지, 우붓의 개들부터 소개해 본다.

요가의 성지, 우붓의 개들은 둘러 쌓인 평화 그 자체의 분위기 때문인지

느긋하고, 세상 걱정이 없다.

아무데서나 정말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아슬아슬할 만큼 가깝게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깨끗하게 매일 목욕도 시키고 영양 가득한 사료도 주고

 행여나 다칠까 유모차에 태워 고이 모셔 다니는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아무 음식이나 먹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자고 막 돌아다니는 들개들이라

 피부병을 포함한 각종 병들도 많이 가지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탓에

 원래도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스칠까 엄청 조심해서 다니긴 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온갖 질병을 가진 개들 치고는 덩치도 엄청 크고 나이들도 많다.

 검증된 사료도 먹지 않고 딱히 위생적이지도 않은 이 들개들이

이렇게 막 크면서도 오랫동안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리에서 작고 어린 강아지들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개뿐 만 아니라 동물에 관해서는 정말 무지한 나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발리의 개 종자가 원래 덩치가 큰 종자냐고

 어떻게 개들이 이렇게 다 큰지, 아니면 본 유전자가 덩치가 큰 종족이고 실제는 어린아이들 인지,

로컬 친구는 덩치가 큰 종자가 아니고 다들 오래 살아 큰 개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동물에 무지한 내 짧은 소견으로 감히 낼 수 있는 이 개들이 장수하는 이유의 답은 하나

‘마음의 평화’


 발리는 특히 우붓은 개들도 마음이 평화롭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정말 개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동물 모두의 애호가가 아니라서,

개나 고양이 사진을 직접 찍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사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발리에 와서 찍은 개, 고양이 사진이 몇 장인지 모른다.

그 천하태평한 표정이, 또는 얼굴뿐 만 아니라 온 몸에 가득한 평화로움이,

뛰어노는데 느껴지는 그 행복함과 자유로움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찍었다.

지금 이렇게 한 장 한 장 돌려보다 보니,

내 얼굴을 찍은 셀카보다 세상모르고 뜨거운 길에서 자고 있는 평화로운 개들의 얼굴이 훨씬 잘 나온 것 같다. 우붓의 개들은 꼬질 꼬질 하지만 평화롭고

 온순하며 온순함을 넘어서 의젓하고,

왠지 모두들 할아버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하며 마을 회관으로 향하는 동네 어르신들

여섯 마리 정도 무리 지어 동네를 배회하는 광경 또한 흔히 볼 수 있는데,

개들끼리 얼굴 보면서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모습이 꼭

고스톱 한 판 치러 마을 회관으로 같이 걸어가고 있는 어르신들 같다.


우습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개들을 앉혀 놓고 두서없는 내 인생 고민을 늘어놓으면

 갑자기 개 할아버지들이 근엄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러 쿵 저러 쿵 해답을 줄 것 같다는 망상.

아무튼 그만큼 우붓의 개들은 의젓하고 근엄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큰 보살핌이 없이도 비싼 사료 없이도 장수한다.

 개들끼리도 모여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요가 수련원이 있는 건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명상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는 꼬질꼬질한 개들이라도 표정과 그 자세를 보면

나 같은 개 알못? 견 알못? 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명백하다.

개들이 마음속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얼마큼 평온함이 가득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서핑의 성지, 꾸따, 짱구, 이 쪽 바다 개들도 내가 본 관점에서 소개해 본다.

이 개들을 평화로움을 떠나, 서핑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에너지가 넘치고 역동적이다.

 이 개들에서는 즐거움과 환희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 보기를 돌 같이 하는 우붓의 개들에게도 지레 겁을 먹고

그 옆을 담대히 걸어가기까지 한참이 걸렸던 나는,

처음에 짱구의 에코 비치를 걷다가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 놈의 개들이 그냥 얌전히 조신하게 산책을 하거나 적당히 뛰는 것이 아니라

거의 넘치는 흥과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우붓의 개들과의 공통점은 여전히 사람 보기를 돌 같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명히 비치베드나 수많은 빈 백에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거나 심지어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개들이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점프력으로 막 건너 뛰어다녔다.

요가 수업 시간에, 척추 강화를 위한 고양이 자세, 소 자세를 수도 없이 했었는데

굉장한 점프력을 자랑하는 이 지역의 개들은,

거대한 장애물들 (식사 중인 사람들, 태닝을 하며 책을 읽거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 앞에 보일 때마다 높이 뛰어서 척추를 최대한 길게 늘여

 아치형으로 유연하게 굽히고 장애물이 지나간 곳에 안전하게 착지까지 하는데..

와우! 개들도 분명 요가 수련원이 있음이 분명하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바다에도 사람이 많지만 백사장을 거닐다 보면 사람 발자국보다 개 발자국이 더 많다.  

작은 발자국, 큰 발자국, 발톱이 길어 뾰족한 발자국까지...

 개를 무서워하고 그래서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발자국 위를 맨발로 걷는 것도 나름 큰 도전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씩씩하게 잘 걸을 수 있었다.

 이 바닷가 지역의 에너지 넘치는 개들 역시 덩치가 크다.

하지만 역시나 아직 애기 개들이구나 하고 나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하나 같이 장난기가 넘치고 자유롭게 자라서 그런지 사회성 또한 좋다.

어느 가족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왔다 하면 바닷가를 배회하던 동네 개들이 다 따라온다.

말도 걸고 꼬리도 한번 쳐보고,

그래서 세 명 이서 온 가족 뒤에 예닐곱 마리의 개들이 쭐쭐 따라오다가 엄청 뛰다가

서로 술래잡기하며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이 재미있어서 웃고 사진도 찍고

 그 광경 하나로 처음 보는 이방인들과의 대화를 시작하고 재미있게도 이어나간다.

신나게 뛰노는 개들을 보고 있노라면 개 애호가가 절대 아닌 나도 마음이 한순간 자유로워진다.


스쿠터도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주 편안하게 '승차'하는 발리의 강아지들.. 중 하나


 에너지가 넘치는 개들은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일몰 아래로 부서지는 반짝이는 물결을 보고 신이 나서 뛰기도 하고

 가족들과 산책 온 새로운 친구가 처음 풍기는 냄새에 흥미를 갖고 같이 놀기도 하고

서핑하는 사람들이 미쳐 손에 잡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오는 보드의 래쉬를 씹으며

가려운 치아를 달래 보기도 하고

 간간히 온몸에 적셔지는 시원한 바닷물에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뛰어들기도 한다.

개를 워낙 무서워해서 개들과의 소통이라곤 감히 꿈도 꿔볼 수 없는 나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확신할 수도 있다.

개들이 얼마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지, 행복해하고 있는지를...


 

이런 사인들을 보기만 해도 오십프로쯤 마음 속에 자유로움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개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

세상 편하게 널브러져 잠을 자고

 세상 평온한 표정을 하고 친구들과 동네를 산책하는 발리 개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자유함을 느끼고 행복감이 차오르는 느끼는 걸 보면,

발리의 수많은 꼬질이 개들은 분명,

이 곳에 진정한 행복이 가득함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는 표정들과 행동들이

섬 곳곳에 둘러싸인 행복의 기운들이 얼마큼 순수하고 진짜배기인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이 가득한 발리라는 섬, 정말 매력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팜므파탈 하늘이 열 일하는 발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