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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Nov 09. 2024

2024년 회고(1)

2024년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나의 이직으로 온 가족이 싱가포르로 이사를 했고 우리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다. 11월이 되니 한해를 회고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 잘한 일

무엇보다 이직을 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회사를 아예 안 다니면 더 좋겠지만) 회사를 다녀야 한다면 여기만큼 나랑 잘 맞는 회사는 찾기 힘들 것 같다. 수평적이고 transparent 하고 다양성에 열려있는 곳이라 나에게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나의 매니저도 skip-level 매니저도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특히나 내 매니저는 나의 IT커리어에 첫 여성 매니저이다. 일을 하면서 10명의 매니저와 일을 해보았지만 모두 남성 매니저였고 이번이 첫 여성 매니저인데 이 사람을 통해 리더십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정말 절절하게 배우는 것 같다. 그녀는 따뜻한데 추진력 있고 자신감 있는 리더이다. 감동의 연속인 이러한 사람과 일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 때문에 온 것이지만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라 생각이 든다. 20대에도 2개월 정도 싱가포르에 머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족이 함께 싱가포르에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월세도 어마어마하고 움직이기만 하면 돈이 훅훅 나가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보다 연봉도 높아졌고 세율도 낮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감당할만하다. 싱가포르는 남편과 나에게 느리게 살아가는 삶, 가족이 중심이 되는 삶에 대해 가르쳐주는 듯하다. 아이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도 매력적인 것 같다. 물론 계속해서 이 나라에 살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정말 너무 개인적인 이유지만 종종 바퀴벌레는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무리 아무리 청소를 잘해도 싱가포르에서는 바퀴벌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한국책방이 거의 없는 것도, 영어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너무 아쉽다. 말과 글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새로운 인간관계들이 많이 생겼는데 거기에서 기쁨이 또 있다.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동네, 새로운 유치원, 새로운 회사를 통해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특히나 아이 유치원 친구들 엄마들과 조금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이 분들과 교류하며 얻게 되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있다. 비슷한 상황인 것도 있지만 결도 조금 비슷한 느낌이랄까. 가끔 너무 힘들 때도 이 분들과 아이들 등원 후에 잠시 갖는 티타임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2) 아쉬웠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우선 건강을 잘 챙기지 못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일과 육아에 시간을 주로 쓰다 보니 내 건강을 가장 마지막에 챙기게 된다. 그러면 고작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이 비타민 챙겨 먹기 정도가 된다. 아 그마저도 자주 까먹어서 일주일에 2번 정도 챙겨 먹게 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비실비실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근육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체력도 마음의 근육도 약한 듯하다. 그나마 좀 나아진 것은 공황장애인지 불안장애인지 과호흡증상이 내게 있었던 것 같은데 대략 한 달 반 정도는 그런 증상이 없이 보내고 있다. 이제야 운동을 하겠다고 조금씩 헬스장을 가고 있는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는 또 미지수이다. 


또 한 가지는 아쉬운 점은 소설을 많이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일과 육아에 시간을 주로 쓰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에도 시간을 쓰기가 힘들게 된다. 게다가 약한 체력은 그러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밤 10시면 아이와 같이 쓰러져 잠이 들고 아침 6시 좀 넘어서 겨우 일어난다. 그러니 소설 쓸 시간이 있을 리가.... 


3) 무엇을 바꾸면 좋을까

우선은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창작활동에 시간을 쓰려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12월에는 PT를 꼭 등록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2번은 운동을 해보려 한다(11월이 아닌 이유는 남편이 출장 중이고 남편이 돌아오면 내가 출장을 간다. 정말 바쁜 한 달...). 


두 번째로 이건 좀 더 궁극적인 부분인데, 잘 계획을 세워서 빠르게 은퇴를 하고 싶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창 생산적인 시간대(아침 9시-오후 6시)에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렇게 회사일만 죽어라 하다가 일찍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은퇴를 해서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 특히 소설이면 좋겠다. 어쨌거나 빠르게 은퇴를 하려면 돈을 많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 아니면 아예 지방으로 가면 그 차액만큼을 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변두리에서 한 달에 400 정도 현금 흐름이 나오면 그러면 회사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변두리 아파트가 대략 6억 정도라고 가정해 보고 나머지 자금을 4%의 수익률로 운영하여 한 달에 400 정도 현금흐름을 만든다고 하면 12억 정도가 필요하고 순자산 18억이면 은퇴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나의 아이이다.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과 교육, 자산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은퇴를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욕심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국제학교를 보낼 자신이 없지만, 싱가포르 기준으로 국제학교를 다니면 최소 월 500 정도 소요가 될 것이다. 거기다가 아이가 미국으로 대학을 가게 된다면 더더욱 준비해두어야 할 돈의 액수가 커진다(연 1억*4=4억).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우리가 은퇴를 하고 6억짜리 집에 살면서 한 달에 400 정도 현금흐름을 만들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월 500 정도를 교육비로 지원한다고 하고 대학 학비로 4억을 준비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약 29억( 6억 아파트 +12억 자산 + 7.2억 교육비+ 4억 대학학비)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아파트 값의 상승과 교육 및 대학학비의 복리의 마법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금액은 그보다 적을 수 있다. 이러한 계산에는 아이에게 죽기 전 물려줄 자산은 0원이라는 슬픈 가정이 또 하나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 우리가 죽기 전에 자산을 물려준다고 가정하면 돈이 더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왜 내가 맨날 출근을 하는지, 우리가 은퇴를 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아이에게 얼마나 교육비를 지원해 줄 것인지가 우리의 은퇴시기를 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은퇴에 대한 부분은 계속해서 고민해보고자 한다. 


셋째로 조금 더 소설 쓰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오늘처럼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적어도 2시간 정도 조용히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다.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운동을 해야 한다. 근데 운동은 또 언제 하느냐라고 하면 이 역시도 아침 시간이거나 점심시간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종교 생활에 조금 더 마음을 다하고 싶다. 이번에 등록한 교회의 목사님께서 며칠 전 우리 집에 방문해 주셨고 우리에게 교회 생활에서 어떤 것을 얻고 싶으신지 물으셨다. 

"돈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돈이 없게 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렵다는 의미였다. 돈이 없으면 안 되지만 돈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사는 것도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께 다가가고 싶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둘 용기도, 아이에게 비싼 학교는 못 보내주어도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용기도,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을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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