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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28. 2018

15. 홍루몽과 영웅문으로 보는 역사 속의 인문학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아이들과 역사를 공부하는 법. 

인문학에 있어서 역사는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를 알고 그 역사 속에 있는 문화와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는데에 좋은 학문적 배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기록되어 있는 전 세계의 역사만 하더라도 5000년이 넘고, 중국의 역사만 하더라도 5000년간 복잡하게 엮여 있어 각 시대의 순서와 교차점을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우선 상하이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중국의 역사를 알면 중국어를 보다 더 고급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고 꼬셨고, 그게 먹혀들었지만, 어떻게 중국의 역사를 재미있게 알려 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은나라에서 시작하여 청나라까지. 그리고 근대 중국으로.

은나라라고 불리던 상나라가 어떻게 망하고, 그 뒤에는 어떤 왕조가 만들어지며 그것이 어떻게 지금의 중국으로 되었는지 일자로 세워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중국의 역사 연표를 통하여 한눈에 볼 수는 있겠지만, 그 내면에 있던 역사 속의 스토리까지 알아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리는 과정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중국의 고대사와 한국의 고대사를 섞어 신화 형식의 이야기를 틈만 나면 들려주었다. 장사에 능하던 상(商) 나라가 망하면서 상나라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장사를 조금만 잘하면 상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던 그 시대의 습성이 지금의 상인(商人)이라는 단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상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확실하게 심어 주었다.

우리 민족을 말하는 동이족이 사실은 한족을 제외한 다른 이민족을 통괄한 동아시아 민족이라는 이야기에서는 민족주의자라고 자칭하던 나의 사상을 깨어 버려야만 하는 고통도 있었다.

국뽕이라고 할 정도로 민족주의 사관이 투철한 내가 아이들에게 객관적 사관을 가지게 하기 위해 나의 역사적 이념을 깨부수고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사관을 정립시켜 주는 과정은 나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나는 내가 책을 읽고 오랜 시간 고민과 생각의 과정을 거쳐 정립한 나에게 있어 귀중한 역사관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역사관을 정립하기를 바랬다. 그것이 설령 나와 다른 역사관일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기의 역사관을 가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고, 안타깝지만 내가 가진 역사관이 100퍼센트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초패왕(西楚覇王)으로 항우와 유방을 알다.

오래전에 나온 역사 무협 영화 중의 하나인 서초패왕(西楚覇王)은 초나라의 항우의 입장에서 그려진 초한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한국 역사 시간에 배운 항우는 폭군이며, 어진 정치를 했던 유방이 당연히 중국을 통일한다는 이야기를 단번에 비틀어 버린 영화였다.

폭군이었던 항우를 왜 중국 사람들은 좋아하는지, 그런 항우를 기리며 패왕별희라는 경극을 만들고,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까지 있게 되었는지는 한국에서 배운 역사의 내용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는 영화를 본 후, 나는 역사는 정복자의 관점에서 쓰이게 되며, 관점에 따라 영웅이 어떻게 몰락할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알게 해 주었다.


만화책을 통해 초한지를 이미 줄줄 외고 있던 작은 아들 누리에게도 새로운 모습의 항우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나는 이미 십여 년도 더 지난 그 영화를 아이들에게 틀어주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훈이라는 흙으로 만든 피리로 분 구슬픈 가락이며 그것이 바로 사면초가라는 것과, 항우가 얼마나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 했는지, 유방은 얼마나 여자를 밝혔고, 삼대 악녀라 불리우는 그의 아내 여치가 어떤 야망을 품고 여태후가 되었는지를 화려한 영상과 스토리를 보며 역사를 즐겼다.

우리 가족이 여가시간을 함께 즐기는 놀이 문화중 하나가 장기인데, 우리는 장기를 두며,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이어서 하기도 했다.

입체적으로 장기를 둔다며 장기알을 다 세워두고 장기를 두는 큰 아들 벼리


한 편의 영화로 우리는 진나라 이후의 초한지를 알게 되었고 역발산시 기개세라는 해하가의 한시를 주인공인 항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게 들었다. 아방궁을 불태워 버린 항우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며 배를 타고 초나라로 도망칠 것을 권유하는 사공의 말에 항우는 자신과 함께 힘든 전투를 치렀던 애마인 오추마만 태워 보내고, 주인과 함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던 오추마도 주인의 죽음과 함께 강으로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겨 넣었다.

그렇게 단 2시간 정도의 영화로 아이들은 초나라와 한나라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는 영화이고, 실재 역사와는 다른 것도 있지만 2시간의 역할은 톡톡히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금 성의가 더 있는 부모는 이 정도 하면 아이들이 알아서 스스로 공부하기를 바라고 관련 서적을 추천하고 역사와 비교를 하며 더 깊이 들어 갈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착한 자식들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성의가 있는 부모가 아니었고, 나의 역할은 거기 까지라고만 생각했다. 영화를 봤으니 이제 정확한 역사를 공부해보자는 식의 고리타분한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고, 그냥 영화에 머물러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선택을 내가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역사를 알고 싶다면 스스로 책을 찾아보고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 그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몫이었다.


강호(江湖)의 큰 별이 지다

영웅문, 소오강호 등 무협소설의 대가인 김용 소설가가 타계했다는 소식은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무협소설을 쓰는 한 소설가의 죽음이 왜 이리도 큰 이슈를 낳았던 것일까?


중학교까지 단행본만 읽던 내가 18 권으로 된 장편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김용 소설가가 쓴 영웅문이라는 소설이었다. 그전에 보았던 그나마 긴 장편은 고려원에서 나온 정비석 작가의 손자병법 4권이었는데, 4권의 책을 읽는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정도였지만, 영웅문은 그렇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넣어두고 보다가 선생님에게 압수를 당하곤 했었는데, 며칠 후 선생님이 오셔서 다음 권은 없냐고 물어볼 정도로 무협소설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책이었다.


김용 소설가의 대표작은 영웅문 3부작으로 한국에서는 사조 영웅문,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라는 원 제목을 몽고의 별, 영웅의 별, 중원의 별로 바꾸어 출판이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남송시대를 시작으로 금나라, 원나라를 거쳐 북방 이민족에 대항한 한족들이 명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200년간의 역사를 18권의 소설 속에 무협객들의 활약을 빌어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18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나 자신이 그 2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거쳐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국사와 세계사를 통해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를 외울 때는 뭐가 앞인지, 뭐가 뒤에 오는 나라인지 그렇게도 헷갈리고 어렵던 200년의 역사가 소설 18권으로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송나라 사람들이 악비라는 장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나라가 어떻게 문화가 융성했던 북송을 제압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송나라가 왜 남송과 북송으로 나뉘게 되는지가 주인공들의 힘든 고난사를 통해 나의 뇌리에 박혀 들었다.

무협소설 하나로 200년 역사 속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 김용 소설가의 뛰어난 필력은 무협 소설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김용의 소설은 홍학이라고 불리는 홍루몽과 함께 김학이라고 칭송되며 중국의 양대 소설 학파로 나뉘게 되었기에 그의 타계 소식은 단지 한 소설가의 죽음이라기 보다는 한 역사가의 죽음이었다.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한 홍루몽은 중국인들에게 소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홍루몽이라는 소설을 통해 사기나 다른 역사서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문화들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있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홍루몽은 통속 소설로서는 유일하게 홍학이라는 학문의 한 계열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뒤를 이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설 학문인 김용의 김학이 나타난 것이었다.


김용의 소설을 통해 역사와 사람들의 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기에 한때는 버클리와 스탠퍼드 대학에서 중국 문학의 부교재로 김용의 소설을 채택하기도 했다.


영웅문 3부작을 읽고 난 뒤, 녹정기라는 그의 소설을 통해 청나라 초기에 있었던 반청복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중국의 굵직굵직한 역사는 바로 한족과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토지 쟁탈전이었다는 작은 결론도 내리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중국에는 이미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간간히 중국어로 된 이 드라마를 틀어 놓고 아이들과 한편씩 감상을 했다.

영웅문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역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토리의 흐름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정서가 바로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큰 아들 벼리는 내가 보라고 하는 것은 잘 안 볼려는 기질이 발동하여 그 드라마를 주의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작은 아들 누리는 몇 편을 연달아 보곤 했다.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정강의 치욕 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알게 되고, 강남칠괴를 통해 강남 가흥의 풍경을 상상하게 되었다.


(중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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