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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29. 2018

16. 음식 속의 역사, 그리고 인문학.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아이들과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영화와 소설책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과외나 학원 등의 교육비를 완전히 줄이고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우리가 먹는다는 것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1원짜리 빠오즈(包子:만두)를 먹더라도 이틀에 한 번은 외식을 했다.

대부분이 길거리 싸구려 음식들이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즈음은 그래도 그럴싸한 식당을 찾아 밥을 먹곤 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샹차이관(湘菜館)이라고도 하는 중국 후난(湖南:호남) 지역의 음식점이었다.(후난(湖南:호남) 지역을 줄여서 샹(湘)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샹차이관(湘菜館)이 곧 후난(湖南:호남) 음식점이라는 말이다.)


후난 지역의 음식은 쓰추안(四川:사천) 지역의 음식과 함께 매운 것으로 유명한데, 부파라(不怕辣)라고 해서 매운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쓰추안(四川:사천) 지역의 말보다 더 유명한 것이 파부라(怕不辣)라고 맵지 않을까 무섭다는 후난 사람들의 너스레이다.

두 개의 말로만 보자면, 쓰추안 사람들의 매운맛은 매워도 버텨보겠다는 의미가 강하여 그 맛도 맵기보다는 얼얼함이 더 강하지만, 후난의 음식은 우리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듯 매운 것을 정말 즐기는 듯 맵고 짠 음식이 대부분이다. 간혹, 주방에 매운 것은 괜찮은데, 짜지 않게만 해 달라고 할 정도였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후난과 쓰추안의 음식은 안성맞춤이었기에, 우리는 간혹 그곳을 찾아 음식을 먹곤 했다.

우리가 자주 찾는 호남요리집이다. 한 중국 친구는 정통 호남 요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줄기차게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후난 샹차이관에는 깔끔한 인테리어에 비해 색 바랜 마오져뚱(毛澤東:모택동)의 사진이 이곳저곳 걸려 있었다. 사실, 우리가 가는 샹차이관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는 많은 샹차이관에는 마오져뚱의 사진이 걸려 있거나, 동굴 같은 인테리어를 해 두고, 여기저기 붉은 글씨로 혁명이 어쩌고 하는 글들이 적혀 있다.

아이들은 처음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다가, 어느새 그 사진과 글들이 궁금해졌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 주인이 마오쩌둥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공산당 간부인가 봐요."

"그렇기도 하겠지만, 마오쩌둥의 고향이 후난이라서 그래. 그리고, 마오쩌둥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도 후난 음식이라고 해서 후난 요리를 마오쩌둥의 요리라고도 생각하지. 여기 메뉴를 보면 마오 찌아 홍사오 로우(毛家紅燒肉:모가 홍소육-모씨 집안의 홍소육 요리)라고 해서 마오쩌둥이 즐겨 먹었다는 홍소육도 있거든."

나는 샹차이관의 대표적 요리를 주문한 뒤, 주방에서 음식이 만들어 나오기 전까지 아이들과 마오쩌둥과 중국의 근 현대사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역 음식에 국가의 주석이었던 사람을 이용하다니 중국 사람들은 상술이 대단하네요."

시큰둥한 큰 아들 벼리의 반응이었다.

지역음식에 국가 주석의 이름과 사진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상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오쩌둥이라는 인물에 대해 중국 인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면 단지 상술로만 볼 수는 없다며 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겨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오쩌둥을 그냥 간단히 중국의 초대 주석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아주 복잡 미묘한 사상과 인생이 있거든. 현대 게릴라 전술을 완성한 철저한 군인이며, 농민을 혁명의 주력으로 중국식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한 후 중국 대륙을 통일한 정치적 지도자이기도 하지. 하지만, 자신이 가진 이념으로 문화 대혁명이라는 것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중국인과 지식인들을 죽여 중국의 발전을 10년 이상 퇴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해."

사실 중국의 공공장소에서 마오쩌둥에 관한 비평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지만, 한국어라는,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외국어가 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조용조용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오쩌둥이 후난 음식을 좋아했다는 것은, 그가 정말 그렇기도 하지만,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미도 있지. 중국 전체를 통일한 진시황제와도 같은 위대한 인물이 비싸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후난 지역의 농민들이 즐겨 먹는 평범한 음식을 좋아할 정도로 소박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중국 근대 혁명사를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주방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음식의 향기가 남의 나라 혁명사보다는 더 관심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마오쩌둥의 고향과, 중국의 건국, 문화 대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그것에 흥미를 가져 스스로 찾아볼 동기는 주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먹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알아두면 좋아. 후난이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의 고향이지만, 이곳 상하이는 공산당 창당 대회를 했던 중국 공산당의 고향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의 두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지."


식당의 콘셉트와 요리에 역사적인 인물과 이야기가 스며 있다는 것은, 가장 상업적인 음식점에 인문학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말한다. 상업공간에 스토리를 심어 넣고, 그것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경영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넣는 것이 아니라, 실존 인물과 역사가 적절히 섞여 들어간 스토리텔링은 인문학에서 말하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이용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인문학이 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상하이 중심가에 있는 홍콩 대중 음식점. 간장 계란밥이 맛있는데 너무 비싼게 흠이다.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을 돈 주고 먹기에는....


컴퓨터만을 만들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갑자기 뛰어들어 만든 스마트폰이 현재의 스마트폰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은, 일본의 선(禪) 문화에 심취해 있던 스티브 잡스의 간결함과 단순함이 그 속에 스며 있으며, 캘러그라피의 매력에 빠져 있던 그의 미학적 심미관이 다른 업체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던 폰트와 선(線)의 아름다움을 그 속에 녹여 놓아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하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

맨발로 인도를 여행하며 죽음과 생명에 관해 얻은 깨달음은, 버튼 하나로 전원을 쉽게 꺼버리는 것이 생명에 대한 경시라고 생각하여 쉽게 전원을 끄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를 생각한다면, 단지 기계일 뿐인 스마트폰 하나에 얼마나 많은 철학적 메시지를 넣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가 인문학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자연과학의 최종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IT 기계에 이런 메시지를 넣을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인문학이며, 인문학을 배우기 위해서 단지 단순한 몇 권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흘려버리듯 들었던 이야기가 나중에 어떤 작용을 할지 지금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로 놀러 온 친구들과 이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왜 이곳에 이런 사진이 걸려 있는지를 물어온다면 무의식적으로 그건 마오쩌둥의 고향이며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아마도 신천지로 산책을 가며 그곳에 있는 공산당 창당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을 것이고, 지근거리에 있는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입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큰 아들 벼리가 학교에서 여행을 떠난 곳이 사오씽(紹興:소흥)이라는 곳이었다. 학교에서 나온 가이드에 따라 움직이던 학생들 무리에서 벗어난 벼리는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루쉰(魯迅)의 단편 소설인 콩이지(孔乙己:공을기) 속의 배경이 된 씨엔헝(咸亨) 주점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술값으로 외상한 돈을 아직 적어 놓은 간판 사진이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벼리 다운 여행법이었다.

여행 속에서도 책 속에 스며있는 문화를 찾아가는 것이 인간과 문화를 알아보려는 인문학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싸오씽에 가면 '씨엔헝주점 3월6일 콩이지 19전을 외상하다.' 라는 팻말이 붙은 씨엔헝 주점이 있다.


소설속 주인공인 콩이지의 동상과 콩이지가 한 잔의 황주와 함께 먹었다는 안주 후이썅또우(회향두). 벼리가 보내준 사진이다.
벼리를 멘토로 생각하는 작은 아들 누리가 질수 없다는 듯 루쉰의 책을 구입했다. 고등어 필통에 황루이라고 한자로 적힌 이름이 보인다.



다음 편에서는 음식 문화로 유추하는 민족성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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