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다산기지에 가다
해양생물을 연구하고 싶어 했던 나에게 북극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독특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을 연구할 수 있고,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가장 큰 곳인 동시에 전 세계의 기후를 조절하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북극, 그 미지의 세계로
“북극연구체험단에 대해 알아보면서 몇 년 전 북극연구체험단에 선발되었던 학생이 쓴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댓글은 ‘너무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북극에 갔다 온 것 같아 후회된다.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선발해주신다면 이분의 댓글을 기억하며 후회하지 않는 여행이 되도록 준비를 해가겠습니다.”
과학골든벨을 통과하고 최종 면접에서 마지막에 하고 나온 말을 되새기며, 후회하지 않는 여행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긴 이동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북극 기지촌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세기에 탑승했다. 3번씩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많이 지쳤지만 북극 기지촌으로 들어가는 전세기에서는 잠이 들 수 없었다. 전세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극 다산기지에 도착한 날에는 기지 생활과 유의사항에 대해 배우고, 북극에서의 활동을 위해 3명씩 나누어 조를 짜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며 백야현상 속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본격적인 북극 탐사에 나섰다. 북극 생태계 탐사의 첫 번째 일정은 육상식물 관찰이었다. 북극은 춥고 얼음으로 덮여있어서 식물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북극에는 생각보다 많은 식물이 살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는 열 가지 이상의 꽃, 이끼, 버섯 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식물 관찰은 물론이고, 발견한 식물들을 분류하고 정확한 식물의 특징과 이름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냥 사진을 보면서 식물도감을 몇 번 뒤적이면 다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물 전공자가 된 지금 해도 힘들 것 같다.
육상 빙하 탐사 트레킹을 위해 옷을 따뜻하게 입고 비상식량도 챙겼다. 북극곰을 만나면 큰일 나기 때문에 박사님들은 총도 챙겼다. 북극에서는 탐사를 하려면 총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물론 아무 때나 쏠 수 없다. 북극곰은 멸종위기종이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 내가 북극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북극곰 보고와! 코카콜라도 주고 와!"였는데, 연구원들에게 북극곰은 만나서는 안될 동물이다. 북극곰에게 죽기 직전에, 정말 정말 죽기 직전에 나를 보호하는 용도로는 쏠 수 있다.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게 함정이지만. 북극곰이 기지촌에 와서 비싸고 귀한 장비들을 망가트려도 건들 수 없다. 북극곰은 그런 존재다.
3시간 동안 돌로 이루어진 험한 언덕들을 넘어 드디어 빙하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북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땅. 우리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받아 목을 축이며 북극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북극의 눈물로 이루어진 폭포
빙하 탐사를 가는 길이었다. 돌만 수북했던 언덕 사이로 물줄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프해서 건널 수 있는 물줄기를 마주치기도 했고, 다소 고여있는 듯한 물웅덩이를 마주치기도 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어느새 우리는 큰 물줄기를 따라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믿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와 북극에 폭포라니. 어느 구멍 사이로 큰 혀를 내민듯한 거대 폭포가 힘차게 물을 내뿜고 있었다. 너무 놀라웠다. 내가 본 물줄기가 여기부터 시작된 거였구나! 박사님께서 저게 다름 아닌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 말이었다. 1년 전에 박사님이 여기 왔었을 때는 가는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곳이었단다.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 큰 폭포로 변했다는 박사님의 말씀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너무나 크고 거대한 폭포가 빙하 사이를 가르고 길을 만들고 있었다. 흐르는 물줄기는 단단한 역사를 긁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도 빙하는 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