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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재 Dec 16. 2018

루프 페스티벌을 회고하며

디지털 콘텐츠 씬의 실무자들이 즐거이 교류하는 장

한 달 남짓 루프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그때그때 드는 생각이나 느낀 점들을 매일 메모장에 적었다. 나중에 더 자라고 단단해진 내가 '그때의 난 어땠더라' 그리워할 때 꺼내볼 수 있는 기억 창고를 만들어두고 싶었다. 빼곡하게 메모장을 채웠으나, 너무 사적인 이야기들을 빼고 나니 옮길 수 있는 건 서른 개 남짓이다. 다시 읽어보니 모순되는 감정도 많고 말을 좀 더 매끄럽고 멋지게 바꾸고 싶은 부분도 많지만, 이 모든 문장들은 정말 '딱 그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기에, 손대지 않고 거의 그대로 옮긴다.




루프 페스티벌을 마치며


1.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누구도 구멍낼 일 없는 링에서는, 그때부터는 어쩌면 태도가 전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태도는 '기복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2. 좋은 파트너, 좋은 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매우 오만한 생각임을 이번에 크게 배웠다. 

“잘 협업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좀 더 정확한 언어로 계획에 따라 업무 요청을 하기. 그래야 취합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편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내게 넘기는 '초안' 혹은 ‘중간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고 규격화할 수 있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를 위해선 제일 기본적으로, 함께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 얼라이닝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3. 몰입할 때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있는데, 말 그대로 "과몰입"할 때만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걸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느낀 시기였다.

눈뜬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계속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좀 황당하고 미친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막 떠오르는데, -물론 그런 아이디어들이라고 다 좋고 멋지다는 건 웃긴 착각이지만- 하나의 미션에 잘 얼라이닝 된 사람들이 그렇게 '과몰입'하고, 거기로부터 무언가 함께 캐낸다면, 그 팀이 이뤄낼 퍼포먼스는 정말 최고겠다! 고 느꼈다.

그런 맥락에서 <왜 일하는가> 책도 좋았고, 머스크가 말한 논란의 그 80시간 워딩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주 조금이나마 (감히) 공감이 갔다. 그렇게까지, 주 80시간을 들여서까지 일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은 머스크가 부럽기도 했다. 근데 사랑하는 일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라는 이나모리 가즈오 할아버지의 말씀도 마음에 깊이 새겼다.


4.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이 참 많다. 

밖에서 볼 땐 '일이 그렇게 많은가?' '그냥 A 하고 B 해서 C 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 '이제 굵직한 건 다 끝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후반으로 달려갈 수록 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을 어떻게 해내는가가 눈에 보이는 아웃풋의 퀄리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 하면 큰일 나는 일들을 다 해치우고 난 후, 그때부터는 디테일의 싸움인 것 같다. 

해리포터 집요정을 재평가 하게 됐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치명적인 점을 뺐을 때, 사실 집요정은 엄청나게 유능하고 일의 목적과 얼라이닝이 잘 된 초-일잘러 캐릭터다. 집요정의 유능함을 배우도록 하자(!)


5. 일을 벌이고 나면 품이 든다. 당연히 그렇다. 

크게 제대로 벌이려 할수록 드는 품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특히 어떤 일이 특정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일이라면 품이 훨씬 더 드는 것 같다. 반면교사로 삼는 대상이 있을수록, 어떤 현상에서 문제를 느낀 것일수록 그걸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그 대상은 왜 그러하였는가' '왜 그런 모습이었는가'와 관련된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존재 의의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품을 많이 들여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앞으로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함부로 단언하거나 쉽게 비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현실에 빠져 허우적 댈 때마다 그 현실이라는 놈이 자꾸 나에게 이렇게 소리침: '마 니만 잘난 줄 아랐제? ㅎㅎㅎ현실이 그르치가 않다 이거야'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품이 많이 든다고 느낄수록 그만큼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무슨 함정이냐면 품이 많이 드니까 이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함정. 사실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이렇게 들이는 품이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고 있는지를 계속 점검하는 일이다. 품도 안 들이는 경우는 말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주위만 둘러봐도 품은 엄청 들었는데 정작 퀄리티도 안 나오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6. 찝찝한 건 무조건 확인하자. 그리고 자기 기억력 너무 맹신하지 말자. 

뭔가 찝찝한 게 떠오르는데 급한 게 아니거나 지금 너무 바쁘다면, 메모장에 바로 적어놓거나 누구에게 '이따가 저한테 이거 잊지 말고 체크하라고 리마인더 한 번만 주세요'라고 요청해놓자.


7. 이것만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 때문에 잘 안 됐다, 누가 좀만 더 어떻게 해줬더라면.

핑계나 조건 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로 했으면 그다음부터는 최고의 결과를 낼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하자. 보이지 않는 것뿐 모두의 상황에는 각자 그만의 제약과 핸디캡이 있다. 그것들이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되면 안 된다.


8. 오래 잡고 있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지겹고 지치는 순간이 당연히 온다. 하지만 용두사미 안 돼! 

특히 드러나는 굵직한 일들 말고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내가 혹은 우리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다음 단계로 진전되지 않는 수많은 소모적인 일들에 파묻히는 것 같아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올 때는, 이것들을 해내는 만큼, 이 시간들이 모여 반드시 내가 자라고 성장할 것임을 상기하며 힘냈다. 

나에게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 특히 돈 내고 이걸 와주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만 하자, 는 마음.

초반에 힘줘서 열심히 했을수록 끝까지 그 텐션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용두사미 안 돼! 

보이지 않는 일들에 파묻히는 것 같을 때는,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문을 많이 걸었다.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 와주시는 분들에게 떳떳하기 위해. 잘하자. 여기서 펑크 나면 망하는 거야!!! 이렇게.


9. 애초에 불가능한 플랜 세워놓고 요청한 후 그게 안 굴러간다고 사람들 미워하지 말기.

수학 공식처럼 딱딱 계획이 잘라지지 않는다. 서로의 입장과 처지, 상황이 고려된 플랜을 세우되 그 플랜을 사수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 플랜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10. 다 나 같은 상황, 마음이 아님을 잊지 말자. 감사하는 마음 잃지 않기.

 

11. 함께 하는 분들을 "프로"로 대우하고자 했다.

물론 내 대우와 상관없이 그분들은 이미 프로다. 하지만 자료를 준비하거나 무대에 서는 일이 낯선 분들도 많다. 그렇다고 마냥 배려하고 맞춰드리려고 하진 않았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태도를 제일 지양하고자 했다. 대화 나눌 때는 분위기가 스무스할 수 있어도, 그거야말로 프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물론, 상대를 프로로 대우하려면 나 역시 프로답게 일해야 한다.


12. 마감은 지켜지는 것이 당연히 좋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니까 (..)

다만, 마감을 지키지 못하시더라도 내가 컨택하기 전에 상대가 먼저 얼럿을 주냐 안 주냐에 따라 내 업무 스케줄이 많이 달라졌다. 커뮤니케이션도 큰 비용임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파트너의 시간을 귀히 여겨주는 사람일수록 섬세하게 연락해주셨고, 그에 따라 내 스케줄을 미리 조정할 수 있었다. 

이메일이나 페메를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이 사소해 보이지만, 그걸 절약할 수 있다면 큰 걸 절약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마감을 지키면 되잖아..;;)


13. 함께 하는 분들을 정말 많이 귀찮게, 못살게 굴었다.

근데 퀄리티에 대한 집착과 고객 경험에 대한 집착이 몸에 밴 분들일수록 그런 요청이나 피드백을 안 귀찮아하셨다. 아니, 귀찮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귀찮지만 중요한 일이니까, 이왕 하는 거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 먼저 그런 태도로 얘기해주셨다.


14. 그런 의미에서 책임자인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일이 잘 되기 위해 어떤 요청과 피드백이 '필요한 것 같다'면, 해라. 꼭.

상대가 귀찮아하지 않을까, 바쁘지 않을까, 지레짐작하지 말자. 혹은 뒷걸음질 치지 말자!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거절당할 때 당하더라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진 부딪혀보는 게 좋다.


15. 돌아보니 한창 연사와 패널, 모더레이터 등을 섭외하던 시기에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거절"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선 그때 짧게 글도 썼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다정한 인사들. "저를 떠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응원할게요." "저도 너무 함께 하고 싶어서 다이어리를 펼쳐봤는데, 하필 그날.. 하지만 다음이 있다면 꼭 불러주세요. 함께 해요." 어떠한 의무도 없는데, 오로지 내가 일방적으로 쥐어드린 의무에 그처럼 섬세하고 진심으로 응답해주시는 분들 덕에 힘낼 수 있었다.


16. 준비하며 무대 위에 오르는 분들의 성비에 신경을 썼다.

크게 애썼다기보다는, 내내 의식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경우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남녀 연사를 섭외할 때 드는 에너지가 달랐다. 여성 연사/패널 분들이 상대적으로 '내가 이런 자리에 서도 될까'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셨고, 그에 대한 확신이나 설명을 더 많이 요구하셨다. 자신의 팀장, 혹은 몇 연차 위인 (여성) 선배를 추천하시기도 했다. 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분명 더 많이 들었으나, 그럴 수록 더더욱 그 분들이 무대에 오르셔야 한다고 믿었기에 크게 힘든 줄은 몰랐다. 다만 같은 여성으로서, 섭외 과정에서 느낀 이러한 점들은 꼭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차게 까이고 있지만, 셰릴 샌드버그의 Lean In은 여전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덥석' 무셨으면 좋겠다. (셰릴의 의견과 미셸의 의견이 그렇게까지 서로를 까야할 만큼 상충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게 가능한 문화만은 참 부럽다)


17. 섭외 과정이 순탄한 것과, 섭외 후 행사를 만들어나가는 준비 과정이 순탄한 것은 별개다.

서로에게, 오디언스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착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태도를 가진 분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섭외는 쉽게 되어도, 자신을 너무 과신하여 행사의 핏에 맞는 준비를 안 하고 자기 스타일대로만 밀고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들었기에.


18. 좋은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정제되고 명료한 언어로 기록해두고, 또 그 기록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 그리고 원하는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오픈된 곳에 공유하는 작업. 말이 쉽지 참 어렵다. 하지만 이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이것이 개인을 넘어 조직의 경험으로 남고, 공유된다.


19. 일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돌아보면 이 시기를 나는 엄청 그리워하겠구나.

그래서 힘든 순간은 정말 짧았고 대부분 행복했고 짜릿했고 감사했다.나의 워크 라이프에서 이런 순간들의 비중을 더 공격적으로 늘려나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됐다.


20.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는 없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신기한 게 이전의 오분의 일, 이, 삼, 사 행사 땐 참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는데, 분명 더 정신 없고 더 후루룩 지났어야 할 것만 같은 이번 행사는 훨씬 더 선명하고 느린 속도로 행사 면면이 마음에 남아 있다. 다른 의미로 긴장되고 정신이 없긴 했지만 행사가 후루룩- 지나가지 않았다는 거. 한 장면 장면 다 기억난다는 거. 그 차이를 만들어낸 지점은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 감정은 행사를 하는 도중에도 느낀 점인데, 지금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주 작은 부분까지 도연님과 함께 관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쥐고 있었다. 그 미묘한 느낌이 되게 반갑고 신기했다.


21.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이 다르다는 걸, 그러므로 목적에 맞는 방법을 써야한다는 걸 느꼈다.

원래 해오던 방식 혹은 내가 편리한 방식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방식을 쓸 것!

이메일 스레드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전화 한 통이 백 번 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효과 있을 때가 있다. 알면서도 어색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미루거나 비겁하게 굴면 안 된다. 직시해야 할 땐, 직시해야 한다. (물론 전화통화 후에는 통화에서 합의한 내용이 이것이 맞는지, 내가 이해한 내용이 당신의 이해와 일치하는지 메일로 다시 정리해 확인해야 한다.)


22. 준비 과정에서 "너네 얼마나 애쓰는지 알고 있어. 여기는 내가 커버할게. 걱정 마."라는 태도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로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런 태도로 함께 해주신 분들을 보며, 그 든든한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눈물 나게 감사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동료가 되리라 결심했다. 든든하고 확실한.


23.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께 하겠다는 결정은 훨씬 신중하게 내려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내 선택에 치열하기 위해서, 그 이전의 나에게 다해야 할 도리같은 것.


24. 테크니션은 얼마나 귀한가!!!

내가 못하는 영역을 커버하고 책임져주는 사람. 특히 자기가 그 영역을 매우 잘 알고 잘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어렵고 서툴지만 어쨌든 내가 해볼게. 네가 이것까지 할 순 없으니까. 와 같은 태도로 임해주는 동료들을 마주할 때는 크게 힘을 얻었다.


25. 뒷심의 중요성.

나는 늘 나를 '뒷심이 부족한 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8년 시작할 때 한 해 목표를 '뒷심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자'로 정했고, 실제로 올해는 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은 마무리'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뒷심의 중요성은 운동하면서도 많이 배웠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흡과 자세와 긴장을 유지하는 법. 마지막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어차피 다시 시키고 더 시키니까, 한 번 할 때 확실히, 제대로, 끝까지 해내는 법을 강제로 훈련당했달까...)

루프를 시작할 때도, 그 훈련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우리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그날 행사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마무리까지 잘해야 비로소 진짜 끝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고 다짐을 많이 했다.


26. 위 다짐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크게 두 영역에 관한 것인데 첫 번째는, 행사 후로 사람들이 느낀 것을 어떤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주고 완결 지어주는 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 두 번째는 지출내역 정산(사례비 지급), 세금계산서 발행, 감사한 분들께 인사하는 일 등 좀 더 실무적인 영역.

개인적으로 강연이나 발표를 다닐 때 자료 받고 발표 전까지는 엄청 연락이 잘 되다가 행사만 끝나면 뚝 연락이 끊겨버리는 경우를 종종 겪었다. 마치 볼 일 다 끝났다는 듯이. 심지어 사례비 지급이 언제, 어떻게 되는지 내가 먼저, 직접 물어봐야 했을 정도로. 그럴 땐 그 강연장에서의 경험이 아무리 좋았대도 그 기관과 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반면, 행사가 끝난 후에도 그날 청중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피드백이 이런 게 나왔다던지 담당자 분이 단 한 마디라도 인사를 해주시고, + 사례비 지급까지 빨리 되는 경우 '와 여기 일 잘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 조직도 누군가에게 후자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실무자로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때, 전자의 영역에 해당하는 TO DO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실무자의 할 일은 참 많더라.


27. 실제로 루프 끝나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부쩍 자라고, 또 스스로 이 시간과 프로젝트를 비로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건 마치 신나는 여행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과정 같았다.

그때 메모장에 써놓은 말이 바로 "뒷심 키우는 법을 배우며 일하는 재미가 배가 된다."였다.


28. 루프 참여하신 분들로부터 크고 작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패널, 모더레이터 분들로부터도 그러했지만 참가자 분들로부터 받은 피드백도 많이 소중했다. 전체 참가자를 대상으로 야심한 시각에 메일 한 통을 보낸 후 대여섯 줄, 열 줄, 이 넘어가는 답장들을 여러 통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29. 참가자 분들께 받은 피드백 중 제일 기뻤던 말 "시간을 이렇게 딱딱 지키는 행사 처음 봤어요." 

약 먹을 시간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 두 분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는데, 솔직히 앞에서는 별로 티를 안 냈지만 속으로는 “그걸 알아주시네요 ㅠㅠ" 하며 울고 싶었다. 원칙 사수를 위하여, 모더레이터/패널/연사 분들께 죄송스러울 정도로 시간을 엄수했고, 필요시엔 조금 냉정할 정도로 시간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는 무대 앞에 타임 타이머를 놓은 것과, 조금 원시적이지만 화려한 형형색색의 색도화지에 10분 전 / 6분 전 / 1분 전을 굵게 써서 무대 앞에서 들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시간 지킴이 도연요정)

좀만 더 얘기를 들으면 좋은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더라도, 하루 종일 수백명 규모로 진행되는 이런 대형 페스티벌/컨퍼런스에서는 우선 "시간 약속"이라는 가장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30. 좋은 행사는 함께 만드는 것이다. 

이 '함께'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하튼 운영진만 애쓴다고 해서 절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행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참가자 분들이다. 행사에 대한 참가자들의 기대가 잘 수렴되어 있을수록, 그분들이 행사의 취지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을수록, 이 무대에 오르는 분들이 어떤 '자격'으로 서는지를 알고 있을수록, 자기 태도와 마음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고, '마음의 준비'가 잘 된 참가자 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행사가 잘 굴러가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31. 그런 의미에서 홍보를 한 번에 오픈하지 않고 우리 취지에 맞는 분들 순대로 RSVP를 1차, 2차, 3차(전체) 오픈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루프 1-4회에 한 번이라도 오셨던 분들께 먼저 홍보+RSVP 선공개를 하고, 구글 뉴스랩/넥저/대학 커뮤니티/메디아티 오픈 멘토링 신청 팀들에 2차 공개, 그 후에 메디아티 SNS 등을 활용해 전체 오픈했다. 이 작업이 행사 취지에 맞는 좋은 분들을 많이 모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2.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사실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 

아까 기록이 전부라고 했는데 말을 바꾸겠다. 체력이 전부다!




Special Thanks to


1. 메디아티

올해 3월에 시작한 루프 행사를 이렇게 멋진 모양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독려해준 조직의 덕이 크다.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한 조직 내에서 큰 일을 벌였음에도 이를 '우리의 일'로 멋지게 품어주고 지지해준 조직에 참 많이 감사하다.


2. 도연과 미희

기복 없이 언제나 든든하고 좋은 태도로 함께 해주신 나의 파트너 도연님. ‘중심을 단단하게 공유하고 있으면서 조금씩 다른 선호와 관심을 갖고 있어, 함께 할 때 좀더 넓게 펼쳐놓을 수 있었다’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적었다. 달리고 멈추는 리듬이 잘 맞는 것 역시 행운이라고 생각한 건 물론이다. 그 다음으로는 유능하고, 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하고 책임감 있는, 루프의 모든 외관을 만들어준 디자이너 미희. 오래 알아온 친구지만 일하는 사람 대 일하는 사람으로 호흡을 맞추며 또 한 번 애정과 존경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우리 어쩜 한 번을 싸우거나 언성 높이지 않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생각할 때마다 놀랍고 뭉클하다. (물론 미간에 주름 잡히는 진지한 토론은 많았다.)





루프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해내는 과정은 내가 압축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배우고 느낀 것을 앞으로 내가 해낼 일들에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일 테다. 이 경험을 품고, 오래오래, 힘있게,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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