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토론하고, 쓰고, 생각하며 보낸 한 해
노트에 필사했던 문장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속이 달콤해지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천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너무 중요시한다.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걱정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남의 것을 빌려서 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서 부유해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사건밖에 보지 못한다. 각자 속으로는 열병과 공포심으로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태평한 얼굴을 보일 수 있다. 그들은 내 마음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내 용모밖에 보지 못한다.
- 몽테뉴 수상록 (p.20)
트레바리 파트너, 세 번째 시즌 시작 (1801-1803)
트레바리 파트너 인터뷰: 세 개 클럽의 파트너를 한다는 것은
성전님께서 혜화까지 달려와 인터뷰를 해주셨다. 햄버거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 게 1년 전이라니.
나초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 선한 마음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선행의 결과 못지 않게 동기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input으로 훨씬 큰 output을 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조금 더 까다롭고 불편한 절차를 요구할 지라도 귀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들어보면, 선행과 효율이라는 조합이 조금 낯설어서 그렇지, 저자가 어렵거나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선한 행동에 숫자, 이성,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을 왜 불편하게 생각할까? (발제하며 쓴 글)
민주주잉 <정치의 공간, 최장집>
솔루션 저널리즘 <미디어 구하기, 줄리아 카제>
인상깊게 읽은 글: The Media Trends to Care about in 2018-2023 (Thomas Baekdal)
Just pivoting to digital/mobile/Facebook/Snapchat/video isn't going to change anything, because everyone is doing that. It's a complete and total distraction away from the real challenge that you actually need to solve.
So, the most important focus area for 2018 is going to be to 'pivot to reality'. To stop just being one of many; to stop just chasing the same paths that everyone else is chasing; and to stop thinking that you can solve all your problems by just chasing the platforms with the most traffic.
People have changed their behavior so that their purchasing decisions differ depending on the content the advertising is next to. So an ad next to a hard news story performs a lot worse than an ad next to an interesting YouTube video.
in the past, you could have monetized journalism like this with advertising.
But today, brands require that their ads only show up in places that encourage people to have 'purchase intent'.
Every day you see a ton of posts on Facebook, but can you remember even one of them today? What they have done is optimized for consumption (watched time), at the expense of recall.
The problem is that this behavior works against you if you want to convince people to subscribe to you, because people are only going to subscribe if they can remember the value of the content.
So, the focus for 2018 is to make subscriptions work, and the way you do this is to change your editorial strategy from being about snackable content (advertising) to creating memorable content (subscriptions).
친구에게, 왈이의 아침밥을 보내다
'친구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이 말에 혹시라도 "네 삶인데 주인공은 당연히 너 아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와! 해맑아서 좋겠다."라고 답해주고 싶다. 진심이다. (비꼬는 거 아니다.) 어릴 때는 시시하게 삶이 뭐야,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믿었지. 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내가 내 삶에서조차 주인공이 못 되는 것 같은 날들이 늘어간다. 한참을 달린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야 향하던 곳이 원하던 곳과 전혀 다른 곳임을 알아채면 어쩌지? 걱정과 고민들은 하루 중 가장 밝게 웃을 때조차 마음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그렇게 마음에 한 줌의 여유가 없어 여러모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우리에게, 어느날 불시착한 왈이의 아침밥(!)
친구는 울었다고 한다
왈이의 아침식땅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직까지는 ‘잘’ 사는 것보다 일단 살고 보는 것이 우선인 우리에게, 잠깐의 행복과 오래 갈 추억을 선물해줘서. 왈이가 차려준 소고기주먹밥 먹으며 씩씩하게 일한 내 친구, 왈이의 주먹밥은 못 보냈지만 면접 보랴 이직한 회사 적응하랴 바쁜 내 친구들. 힘내자, 우리! (‘힘내’라는 말이 나는 언젠가부터 너무 싫은데, 그래도 뭔가 말해야 할 때는 이렇게 말하기로 했어. “힘내자!” 이건 그래도 왠지 함께 하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낫달까.) 빠샤!
+
사람을 놓치면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사람을 대할 때 마음으로 대한다는 건 뭘까? 뭔데 그리 어려울까? 고민 많은 나는 오늘도 왈 팀의 반의 반만이라도 닮고 싶다.'
트레바리
나초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민주주잉 <진보의 미래, 노무현>
솔루션 저널리즘 <미디어 씹어먹기, 브룩 글래드스톤>
인상깊게 읽은 글: Redefining how we Talk About and Categorize the Media (Thomas Baekdal)
"So ask yourself. Is what I'm writing about something that people do? If the answer is yes, you need to seriously start thinking about how you can offer that as a service."
"Media as a service has a fairly obvious monetization model in that you create something so valuable that people want to pay for it. And you can then get people to pay for it either as a product (like The Body Coach is doing above), or as an ongoing subscription (which would be far more important for health services). For 'relaxing' forms of media, it's suddenly far more complex, because now you have to consider all the things I wrote about above."
"But again, what we see here is an entirely different way of defining the market. Instead of thinking of yourself as a newspaper, a magazine or a TV show ... we now have the 'do' market and the 'not do' market."
"So, stop thinking about the media in terms of formats and start thinking about it in terms of markets. It will make it much easier for you to understand where your strategy needs to be."
[기고]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3년의 기록: 전례 없는 ‘새로운 미디어 일자리’ 실험
: '파트너 언론사를 방문해 기획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펠로우들은 “이 기획에 저널리즘은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3기의 한 펠로우는 “질문자님이 생각하시는 저널리즘이 무엇인가요?” 되물었다고 한다. 어떤 답변이 나왔는지 상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종류의 대화, 토론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뉴스 가치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미 정해진 답을 학습한 뒤에 뉴스를 제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도의 지식과 이해 수준을 맞춰나가며 ‘저널리즘’을 새롭게 정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유독 희소하기 때문이다. ‘이게 저널리즘이냐’라는 질문에 ‘당신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 있는 분위기 역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이 지향하는 문화다. ‘저널리즘’은 성역의 대상이 아니며 영역 싸움의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벽을 허무는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활기를 되찾고 핵심 가치가 분명해질 것이다. 저널리즘과 뉴스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허용되고 인정받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생애 첫 인도 여행
:델리, 마날리, 바시싯에 다녀왔다.
"오늘은 숲 속 텐트에서 잡니다. 델리만 떠나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모습이.. 인도는 너무 넓고 인도 사람들도 참 다양해서 “인도는 어떻다. 인도 사람들은 이런 것 같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오히려 이 시끌벅적한 나라를 마주하는 저 스스로를 관찰하며 느끼는 것들이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노트북도 안 가져왔고, 심카드 사는 데 실패해 와이파이 없이는 먹통인 핸드폰도 하루 한 시간 이상 들여다보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대신 두꺼운 노트와 펜 다섯 자루를 챙겨왔고, 책 세 권을 들고 왔습니다. 핸드폰이랑 노트북만 끊었는데 하루만에 노트 여섯 장을 글씨로 빼곡하게 채운 걸 보며, 돌아가더라도 내 에너지를 조금 집중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 여러 곳들에 내 한정된 집중력과 에너지, 할 말들을 흩뿌리며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이런 말을 다른 곳도 아닌 페이스북에 올리는 게 좀 웃긴 것도 같고..) 여튼 인도에 온지 이제 겨우 하루하고 반나절. 다른 건 몰라도 내 삶이 얼마나 ‘간편함’ 위주로 설계되어 있었는지 하나는 아프게 배우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인도가 제게 거침없이 던져대는 이 불편들을 잘 견디다 돌아가겠습니다!”
루프 오분의 일 ('미디어 스타트업 밋업')
[관련 기사: 미디어 스타트업들에 물었다. 좋은 콘텐츠란 뭘까?]
메디아티 브런치토크 <#MeToo 시대, 우리 콘텐츠는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가>
트레바리
나초<서른의 반격, 손원평>
민주주잉 <계몽주의 2.0, 조지프 히스>
: ‘현재의 반합리주의는 완전히 잘못된 지침을 따르고 있다. 합리성을 방해하는 인간 심리의 결함에 대해 심리학 이론들과 연구들을 알아보는 것은 좋지만, 그런 연구가 주는 시사점은 ‘불합리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합리적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실패가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런 실패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 <소통의 무기, 강준만>
인상깊게 읽은 글 (1) : 문재인 정부를 흔든 '공정의 역습' (천관율)
인상깊게 읽은 글 (2) : A Deep Dive into the Future of Subscriber Analytics (Thomas Baekdal)
What's even more important is that the way your subscribers (or other loyal readers) behave is also very different from how quick one-time visitors behave.
If you just measure this as a whole, you end up learning that, on average, people are generally spending a very short time on your site. But when you look at it specifically for your loyal audience, the result can be very different.
Metrics like users, sessions, pageviews, and averages are all generalized metrics that are most likely massively inaccurate as a representation of how your real audience actually behaves.
The second important thing to do is to change your concept of time. Most publishers today evaluate their performance based on individual moments. But as soon as you have subscribers, measuring individual moments no longer makes any sense.'
쓴 글: 무기력과의 싸움, 한판승은 없다
'우울하다는 감정이 발전하게 되고, 그것이 더이상 '우울함'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았을 때 나는 그것이 병이라는 걸 알았기에 다행히 극복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와본 적 없는 긴 터널 안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지. 처음이기에 이 터널이 끝나기는 하는지, 얼마나 긴 지 알 수 없고, 그것은 곧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불러오지. 그러나 이것이 '터널'이라는 것만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 나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터널을 거쳐 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간장계란밥에 중독되었던 시기
왈이네, 초보 사장님으로 목소리 출연: 손님이 무서워 가게 문 닫고 뛰쳐나갔을 때 아보카도 샌드위치
트레바리
나초<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민주주잉 <왜 미국인들은 복지를 싫어하는가, 마틴 길렌스>
솔루션 저널리즘 <디지털 뉴스 미디어 톺아보기, 박상현/한운희>
인상깊게 읽은 글: Nobody Tells You How Long a Marriage Is (Lauren Doyle Owens)
Nobody tells you how long marriage is. When you fall in love, when you have fun with somebody, when you enjoy the way they see the world, nobody ever says, “This person will change. And so you will be married to two, three, four, five or 10 people throughout the course of your life, as you live out your vows.” Nobody warns you. But you, my dear. There is something deep and hard and lasting inside of you. And I wish I had known, when I was searching again for my bedrock, that all I had to do was reach out my hand.
쓴 글: 4층 사람들 09. 우리가 남기고 있는 것들 (April Magazine 이유진 님 인터뷰)
'제가 작가들에게 많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온라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모니터만 덮으면 사라지는데, 보이지 않는데.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뭘 남기고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해요. "온라인에 글을 쓴다는 건 편지를 써서 병에 담아서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 이 글이 언제, 누구에게 닿을지 알 수 없기에. 그러니까 우리,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쓰고,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두고 조심해서 쓰자. 비즈니스는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사람들은 올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작업을 통해 남길 수 있는 건 글이다. 그건 어디 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아깝잖아, 이 오월이... [아오] 모임
: 공공일호 오층에서, 함께 블랙미러 산 주니페로 편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준비해온 문장들을 나누었다.
루프 오분의 이
씨로켓 컨퍼런스 & 방송기자연합회 뉴스를 뉴스하라 토크콘서트
트레바리 네 번째 시즌 시작 (1805-1808)
나초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민주주잉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인상깊게 읽은 글: How quitting my corporate job for my startup dream f*cked my life up (Ali Mese)
There are, however, five things I wish I had asked myself before starting this painful journey. Five questions I believe every future entrepreneur should ask himself before taking the first step to entrepreneurship:
1. Are you ready for the social pressure?
(If you care so much about what others think, you will waste your time trying to prove that you are successful instead of focusing on your startup.)
2. Are you single or do you have an extremely supportive partner?
(If you are not single, make sure your partner understands it’s sometimes normal not to have a mindset even for a simple kiss. Yes, for a simple proper French kiss.)
3. Do you have enough cash to last at least a year?
4. Are you ready to sleep only few hours a day?
5. How do you define success?
“It is good to have an end to journey toward; but it is the journey that matters, in the end.”
+ 인상깊게 (또) 읽은 글: 'What's happening here is that a part of the media industry is slowly but surely turning into a service industry. That instead of sitting down to just read news and articles about something, publishers of the future instead become service providers to help people do the things that they want to do ... from a publishing baseline.'
UMF Korea
떠나간 아비치를 함께 그리워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타 공연을 눈 앞에서 본 것도 감개무량 했다. 흑-
개명을 했다!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는데요. 동시에 그렇게 큰 결정을 나 혼자 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에 오래 망설이고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독립을 하면서, 고양이 두 마리를 책임지기로 결정 하면서, 내 삶과 관련된 큰 결정을 홀로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경험들을 누적하면서 어떤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선재 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저를 가졌을 때 처음 제게 지어주려고 했던 이름입니다. 오직 그 이유 때문에 이선재로 개명한 것은 아니지만요. 처음 엄마로부터 들은 선재 라는 이름이,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가 내 이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꼭 이선재로 하리라 아주 오래 상상하고 결심했던 이름이랍니다. 어색해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는 제 원래 이름이 이선재 였던 것처럼,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미진이라는 이름을 떠나보내기로 한 제 결정이 어쩐지 서운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테지요. 그래도 저를 선재 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창한 의미부여 하지 않고 담백하게 알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결정은 제게 생각보다 큰 의미입니다. 이 변화가 기쁘고 벅찬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제가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게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 삶의 많은 것들을 주어진 조건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디자인하고, 나와 어울리는 것들로 바꿔나갈 생각입니다. 이런 저를, 제 선택을 응원해주신다면 조금 어색하고 쑥쓰럽더라도 저를 “선재”라고 불러주세요. 바뀐 이름은 많이 불러줄수록 좋대요 ☺️ (얼마 전 우재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셨고 제 결심에 큰 계기를 만들어 주신 왈 팀의 우재님(+솔님)과 My name, My Choice 일명 마초 파티도 열 생각입니다.)
개명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모두 매일매일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 크고 작은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선택과 용기를 응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쓴 글: [한겨레] 개명 기념 '마초 파티'에 초대합니다.
트레바리
나초 <바깥은 여름, 김애란>
민주주잉 <전쟁정치, 김동춘>
인상깊게 읽은 글: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에게" 인문학자의 5가지 조언
‘차라리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실이나 보상이 뭔지 생각해보고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낫다. 결실이나 보상도 없는데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기란 힘들다. 같은 맥락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대가 없는 것은 없다.’
인상깊게 읽은 글(2) : 우리에겐 제프 베이조스가 없다 (이인숙)
퀑이 지난해 펴낸 보고서 ‘디지털화하기(Going Digital)’에는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BBC, CNN 등 전 세계 18개 언론사 사람들의 생생한 고뇌의 증언이 담겨 있다. 퀑은 “이전 연구와 비교해 가장 놀란 것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언론사를 떠났는지 확인했을 때”라고 했다. 그가 떠난 이들에게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종종 같은 답을 내놨다.
“상관없다. 지금은 그저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조직에 다시는 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마초파티 (드레스 코드: 한 여름 낮의 크리스마스), 스시뷔페에서
인생에서 가장 자주, 그럴듯하게 내 손으로 요리해먹은 시기
"저녁으로 맨날 불닭볶음면 먹던 생활 청산하고 차려먹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그런데 안 하던 요리를 하려니 뭐 하나 할 때마다 에피소드가 쌓여간다
1. 오징어부추전
나리님이 지은님 집들이에서 너무나 맛있는 오징어부추전을 해주셨고, 그 후로 나는 ‘오징어부추전 같은 요리 하나쯤 할 수 있는 멋진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리님께 매우 굵고 짧은 레시피를 전수받은 후 거의 뭐 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나 지금 오징어부추전을 만들 거라고 친구에게 선언했다. 친구는 왜 하필 오징어부추전이냐고 물었고, 나는 나리님이 만들어주신 오징어부추전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걸 만들 줄 알아서 비 오는 날 가끔 부쳐먹는다면 그 사람 꽤 멋진 사람일 것 같지 않니?”라고 했다. 친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는 백 번 해도 저런 텍스쳐 안 나올 걸.” 나는 매우 발끈하여 어떻게 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기를 죽이냐며 뭐라고 했다. 그러나 기름을 두른 팬에 반죽을 올리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친구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일단 텍스쳐는 차치하고서라도 저렇게 온전한 동그라미 모양이 나오기까지 한 여섯 번 정도 실패함.
2. 바지락된장찌개
좋아하는 유튜버가 바지락 해감하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엄청 짠 소금물에 조개들을 넣어놓으면 조개들이 “모야? 요기 바다야?”하며 쏙 입을 벌린다는 설명이 너무 귀여워 나도 해감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바지락을 사왔고, 호일을 덮어 어둡게 하라는 유튜버의 말을 따르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호일을 열어 메롱- 한 조개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한 30분을 놀았다. 파스타를 할까 찌개를 할까하다가 밥이 끌려서 된장찌개를 하는데 나는 매운 된장찌개가 좋아 청양고추를 두 개 썰어넣었다. 얼큰하고 엄청 좋았는데 그 작은 바지락 몇 개 넣었다고 국물에서 아주 바다맛이 느껴졌다. 친구에게 내가 끓인 된장찌개에서 바다의 깊은 맛이 난다고 했더니 친구는 넌 아무래도 맛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사람 같다고 했다. 그런가 아닌데 진짜 바다 맛 나는데..
3. 과카몰리
프랑스의 어느 공동체에서 몇 달 머물고 온 친구와 함께 집에서 요리를 하는 날. 과카몰리를 만들겠다는 나의 선언에 친구는 “나 거기에서 멕시코 친구들이 과카몰리 만들어줬는데 엄청 맛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런 말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내 과카몰레에는 특별한 게 들어감”이라고 자랑했더니 친구 역시 내 말을 개의치 않고 “과카몰래 아니. 과카몰리임.”이라고 답했다. 여튼 이래저래 다 만들고 첫 입을 먹은 내가 “양파를 너무 많이 넣었나?” 혼잣말을 하자 친구는 “그럴 것 같더라. 아니면 양파를 물에 담가야..”라고 답했고 난 “물에 담갔어 우씨!”했다. 근데 그렇게 구박 해놓고 맛있게 잘 먹었다. 조금 숙성하니 너무 맛있어졌다.
4. 또 오징어부추전
또 한 번 도전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근데 친구가 먹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해서 잔뜩 기대하고 “왜! 맛있어?!! 어때?!!” 했더니 친구 왈 “이거 일본 간장이지! 간장 짱 맛있어”
(...)
5.대패삼겹살 두루치기
역시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꽂혀서 대패삼겹 두루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마트에 갔는데 돈삼겹과 차돌박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나는 순간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곧장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대패삼겹이 차돌박이야?”라고 물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한숨 + 차돌박이를 집으며 내 통화를 엿들은 한 아주머니의 눈길이 동시에 느껴졌다. 왜.. 뭐.. 그럴 수도 있죠... 여튼 비록 파채를 너무 적게 넣고 콩나물은 너무 많이 넣는 실수를 저질렀으나 제법 맛있었다. 인터넷에서 양념장 만드는 거 보면 넣으라는 거 너무 많아서 지레 겁 먹게 되는데 물엿 같은거 다 빼고 굵직한 것만 넣었는데도 꽤 맛있는(?) 정직한(?) 소스가 됐다.
이상 3일 정도의 차려먹기 챌린지 에피소드 끝."
욕망에 대한 생각은 이때부터 자주 했구나
'소설을 쓰는 첫 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 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가 장강명 씨가 언젠가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이 말을 자주 곱씹는다.
인생을 건다는 게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니다. 시간을 거는 거고, 체력을 거는 거고, 결국 그 시기의 나를 거는 거다. 그런데 그처럼 많은 것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에 매몰되기 쉽다. 배팅한 것에 비해 보상이 즉각적으로 오지 않는 종류의 일을 할 때 더 그렇다.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첫 번째 이유 못지 않게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들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일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일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이유'를 지키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그 일을 하는 세 번째 이유쯤에 이름을 올린 '돈' 같은 단어들을 더 자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생존 혹은 성장을 위해 태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를 캐치하고 그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평소 내가 이 일을 하는 '두 번째, 세 번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내가 인생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고, 세 번째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는 결국 '나는 현재 어떠한 욕망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는 내 안에 어떤 욕망이 담겨 있는지 '내가' 잘 몰라서, 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어서, 그래서 놓쳐버린 몇 번의 귀한 기회들이 있다. 지나간 것이야 어쩔 수 없대도 다가오는 것들을 또 놓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욕망을 이해하고 나의 필요를 아는 일일 텐데, 그게 참 어렵다.
p.s. 장강명 씨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유명하기는 위에 적은 첫 문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나는 아래 대목이 훨씬 더 좋다.
'소설을 쓰는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이유는 각각 제가 ‘소설쓰기’라는 전쟁을 치르는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전장(戰場)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번째 전장이야말로 진정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폭력이 충만합니다. 외교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첫번째, 두번째 전장과 달리 이곳은 현실의 싸움터라고 느낍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원조를 받으며 시장 밖에서 피난을 다니지 않고, 시장 안에서 싸우며 시장가치를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두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적어도 이 글을 쓴 그는,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루프 오분의 삼
오는 26일에 열리는 루프 오분의 삼: 플랫폼 특집 행사 50명 정원이 일찌감치 마감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70분, 80분, 100분도 모시고 싶은 마음이고 문의도 많이 오지만, 우리 역량을 고려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오시는 분들께 집중해서 완성도 높은 행사로 만들자고 도연님과 합의했다. 그 편이 우리가 '진짜로' 스케일 업 해야 하는 순간에도 더 도움 될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올 2월이었나, 인사만 하고 데면데면 어색한 사이였던, 그러나 괜히 이유 없이 (..) 마음이 가서 말이라도 한 번 더 걸고 싶었던 권도연님께 이런 행사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혹시 같이 해보실 마음 없냐고 슬쩍 여쭤봤던 것이 어느새 '루프'라는 이름을 얻어 1,2회를 마치고 3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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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루프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거듭나려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루프가 단순히 '좋은 행사'로 끝나기를 원치 않고, 루프를 한 번이라도 거쳐간 창작자들 사이에 교류가 일어나고, 노하우와 시행착오 경험을 공유하며 크고 느슨한 커뮤니티로 작용할 수 있길 바란다. '페북에서만 보던' '멀리서 응원하던' 크리에이터들끼리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 인사를 트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 서로에게 파트너, 조력자가 될 수 있는 접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주 힘들고 종종 모래성 쌓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씬에서 유쾌한 연대가 크고 작게, 자주 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많지만, 결국 힘이 되어주는 것도 사람이니까, 후자의 인연을 많이 만드실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루프는 할 일과 가야 할 길 모두 한참 남았다. 끙.. (+ 행사에서 스피커로 자주 만날 수 있는 분들 외에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하는 '실무자' 분들께 마이크를 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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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임(그때는 이름이 '미디어 스타트업 밋업'이었다)이 끝난 밤, 도연님과 혜화 최군맥주에서 떡볶이랑 맥주 마시며 참석자들이 주고 가신 설문지 덜덜 떨며 읽다가 호평이 적힌 종이를 보면 서로 뽕이 차올라 소리를 질렀던 게 엊그제 같은데 (..) 그때 도연님과 이 뽕을 잊지 말고 그 다음 모임은 직전 모임보다 조금 더 낫게, 완성도 높게, 도전적으로 만들어가보자고 약속 했었다. 그래서 루프 오분의 이는 두 개의 주제, 두 개의 스타일로 스케일 업 해서 진행해봤고, 그 다음은 또 다르게 시도해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대로, 비슷하게 하면 좀더 편할 수는 있지만 편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 오신 분들 의견을 최대한 많이 반영해서 '같이 만들어 나간다', '(발전 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계속 변화한다'는 인상을 드리고 싶었다.
이번 루프 오분의 삼은 또 지난 1,2회와 다른 스타일이다. 더부스에서 감사하게 맥주 협찬도 해주시기로 했다. 왜 협찬은 그곳에 긴밀하게(..)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대체 왜..?), 정말 정직하게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메일로 문의 드렸더니 너무도 빠르고 흔쾌하게 몇 가지 조건을 달아 수락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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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도연님과 둘이 행사를 잘 끝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는데, 지난 두 번의 루프 행사에 와주신 분들이 도움과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주신 덕분에 가까운 시일 내에 실행해 볼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들을 몇 개 세웠다. 방향을 잘 잡아 출발선에 섰으니, 같이 달릴 파트너와 합도 잘 맞으니, 이제 더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된다. (ㅎㅎ..선재야..너만 잘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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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모두 스스로 내리고, 또 그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우리가 져야하는 만큼 하나하나 A/B testing 하는 느낌으로 실험하는 기분이랄까. 잘 됐을 때 기쁨도, 뭔가 꼬였을 때 불안도 10배 크기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다. 이 모든 레슨을 모아 올 연말에는 '루프 오분의 오' 행사까지 멋지게 해내는 게 2018년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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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이 차오르는 시기, 일에 몰입하는 타이밍, 일 처리하는 속도 모두 비슷해서 나중에 혹시 창업하게 되면 꼭 같이 하자고 (...) 말할 정도로 궁합 잘 맞는 파트너 도연님. 이 여정에 함께 해주어 스릉흡니드.. 좌절과 불안 - 뽕과 뿌듯함을 오고가는 무한 루프의 삶.. 헤헤. 자, 그럼 다시 일하러 가볼까...
트레바리
나초 <혼자가 더 편한 사람들의 사랑법, 미하엘 나스트>
민주주잉 <천관율의 줌아웃, 천관율>
인상깊게 읽은 글: 유랑의 시대와 환대 (정은령)
'오늘 내가 타자에게 베푸는 환대는 미지의 어느 날 내가 혹은 내 후대가 이 세상 어딘가를 유랑하는 타자가 되었을 때 받기 원하는 대접에 다름 아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방문: <Disinformation & Discourse> 심포지엄 참석 & 보너스 휴가
자카르타에서 열린 disinformation 관련 심포지움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하며, 영어는 의사표현의 수단일 뿐, 표현하고자 하는 내 ‘의사’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배웠다. 방 안에 30명이 있다면 발음이나 억양, 사용하는 어휘 등이 전혀 다른 28개 버전의 영어가 함께 존재하는 느낌.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무척 빠르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계속해서 버벅대더라도, 그의 표현방식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진 주장이나 관점, 해석을 캐치해서 그를 매개로 교감하고 토론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에 감명 받았다. 평소였다면 분명 영어실력에 대한 생각을 했을 텐데, 이번 심포지움이 끝나고 나서는 내 영어실력과 관계 없이 주제와 관련하여 나는 어떤 의미있는 의견이나 해석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진 사람인가 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오픈 멘토링 데이 회고
기회를 포착하거나 문제의식을 느낄 때 그것을 아이디어로만 끝내지 않고 직접 실행하는 사람들. '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실행이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디테일 까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누군가 시키지 않았고 돈을 주지도 않는데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거기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서는 반드시 배울 게 있습니다. 오픈 멘토링 데이를 통해 제가 제일 크게 배운 점입니다. 누군가는 '이 판에 플레이어가 없다, 실험이 부족하다, 다 빤-하다' 라고 쉽게 이야기 하곤 하지만, 어찌 됐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뭔가 해내기 위해 애쓰는 분들은 꾸준히 있습니다. 절대로, 없지 않아요.
틈이 날 때마다 메디아티 오픈 멘토링 지원서를 뜯어 보면서 어떻게 해야 묻는 쪽과 답하는 쪽의 시간을 더 귀하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안 물어봐도 되는 질문은 지우고, 만났을 때 더 효과적으로 80분을 쓰기 위해 미리 물어봐야 할 것은 뭐가 있을지 살펴봅니다. 대단한 변화가 있지는 않지만 이번달 부터는 투자심사를 염두에 둔 멘토링 신청 외에도, 고민이나 사업 방향 등을 함께 나누고 점검할 수 있는 멘토링 신청 칸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혹시 메디아티 오픈 멘토링 데이를, 투자심사를 받을 만한 팀만 참여 가능한 이벤트로 이해하실까 해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구상/실행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 그렇게 수정했습니다. 허들을 낮추면 좀더 많이들 오실까 해서요.
저희의 본업이 투자라고 해서 어떤 팀을 만날 때 '투자를 할 만하냐/아니냐'의 관점으로만 그 팀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합니다. 오픈 멘토링은, 어떤 단계에 놓인 팀에게든 도움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는 지겨울 수도 있는(ㅎㅎ) 메디아티와의 미팅이, 어떤 팀에게는 80분이나마 더 큰 효용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하는 일이 뭔가?'라고 묻는 데 그쳤다면,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일이 뭐고, 그것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묻게 됐습니다. 근데 어느날 보니 저 문장에서 제일 중요한 게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이 일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 일인가.
지극히 짧은 생각이지만, "누구에게"를 잘 알수록 일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누구에게"를 잘 알수록, 일 때문에 힘들거나 지칠 때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의 제게는 그런 분들을 만나는 시간이 오픈 멘토링 데이 입니다. 나의 일로, 특정 대상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힘을 주는 방식. 그와 동시에 저도 그 분들에게서 힘을 엄청 얻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그것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저는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하루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인 만큼, 긴긴 시간 어떤 식으로든 노동해야 하는 우리 삶에서 일에 지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주기적으로 자기 일에 의미부여 하는 것은 (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효과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위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잠시 머리를 싸맬 때마다 어느 정도 열기와 의욕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오늘은 그런 열기와 의욕이 필요한 날이라 적어봅니다.
삼각지를 떠나 본가로 이사
이사날 고생하지 말고 잘 가라는 듯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 덕에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온 집안의 창을 다 열어놓고 가운데 서서 바람이 부는 걸 몇 분 정도 맞고 있었더니 마음이 좀 정리가 된다. 처음 가져본 내 공간이라서 그런가, 떠나는 마음이 더 애틋하고 복잡하다.
요며칠 집 정리를 하며 돌아보니,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누군가의 마음 혹은 도움이 묻어있더라. 덕분에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었다. 여기에서 많이 자라고 간다. 좀더 자라서 다시 살러 올게. 안녕!
트레바리
나초 <인생학교 : 돈, 존 암스트롱>
민주주잉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인상깊게 읽은 글(1):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퀴어문화축제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 하는 것이라면, 이들은 비가시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가시화 요구는 종종 너그러운 태도로 위장된다. “다 좋은데, 퀴어문화축제 같은 것만 안 하면 안되겠냐”고 하거나 “내 눈에 띄지만 않으면 괜찮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존재를 향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관용이 아니다. 드러내지 말고 살라는 요구 자체가 차별이다. (..)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등의 ‘비가시화’ 요구는 그 자체로 차별이며 비가시화가 관용이나 평등과 양립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본다. ‘이름 짓기’의 권한을 국가나 특정 분과학문이 독점해야 하는 이유는 없으며, 국가나 학계가 정해준 것을 일사불란하게 따를 필요도 없다. 강남역 사건에서 여성혐오의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그것을 얼마든지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혐오표현은 우선적인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혐오표현은 차별로 직결된다. (..)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괴롭히거나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를 두고 “자율에 맡기자”, “맞서 싸우면 된다”고 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다.
인상깊게 읽은 글(2): 직장에서의 엔딩도 이니에스타의 작별인사처럼
"경기 중간에는 살아있다는 느낌, 내 자리가 있다는 걸 느끼기 쉽다. 하지만 경기가 끝났을 때 살아있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욕망이나 보상, 또는 그 둘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노예가 된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기념을 위한 의식도 없고, 정적과 고요, 슬픔을 위한 공간이라고는 없는 조직생활에서 완전히 인간성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우리 대부분은 직업적인 죽음 그리고 신체적 죽음과 맞서 싸운다. 하지만 일하는 삶에 엔딩이 없다면 글을 쓰고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개연성은 더 떨어진다. 직장에서 좀더 유연한 사람이 되려면,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엔딩을 제대로 맞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엔딩을 축하할 수 없다면, 엔딩을 축하할 장소조차 챙겨주지 못한다면, 일은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이 사진은 두 가지 삶 사이의 공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이니에스타의 모습을 포착했던 것이다."
"작별식이 끝났는데도 바르카가 이니에스타를 위해 스타디움을 열어둔 것은 실용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다고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승점도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FC 바르셀로나의 기풍,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바르셀로나는 최상급 선수 한 명을 잃었지만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사진 한 장이 팬들과 인간적으로 공명했다. 엔딩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의 힘은 이런 것이다."
법적으로도 선재
: 나라에서 개명 허가를 받았다.
1일 1책 프로젝트
: 본가로 돌아간 후 출퇴근 시간이 왕복 4시간 가까이로 늘어났다. 해서 오며가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자는 목표를 세웠다. 읽고 난 후 필사하고 감상을 짧게라도 기록하는 것까지 포함.
루프 오분의 사
: 미디어의 수익모델 <브랜디드 콘텐츠> 특집
마리지와의 이별
: 전염성 복막염 판정을 받은지 일주일 후, 마리지는 우리 곁을 떠나 긴 여행을 시작했다.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고맙고 미안한, 사랑하는 마리지. 잘 있니? 우린 잘 있어. 많이 보고싶다.
트레바리 다섯 번째 시즌 시작 (1809-1812)
나초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많은 분들이 개인주의의 범위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완전히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는 피해를 입었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내 의지에만 달린 문제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 만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나 대신 그 부담을 떠안게 된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보답을 하며 책임을 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발제문에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여러 대답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내 개성과 선택은 존중받기를 바라면서 타인의 그것을 존중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면 이기주의라는 데 합의했다. 깊게 해본 생각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 자기 개성과 선택이 존중 받기를 원할 때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인다면 개인주의자로서의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 그런 표현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해 받기를 바라거나, 내 개성과 선택은 우월하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덜 진보한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 그건 이기적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길로 가지만, 그 길로 가는 당신도 충분히 소중하고 행복하길 바라요"가 개인주의자의 마음인 것 같다는 한 멤버분의 말이 참 좋았다.
민주주잉 <위험한 민주주의, 야스차 뭉크>
인상깊게 읽은 글 (1): 펀딩에도 성별 격차가 있다
"종종 투자자들은 여성 창업가들이 기술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단정짓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공동 창업자를 보유한 여성 창업자들의 경우 흥미로운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투자자들이 기술 관련 질문을 남성 창업자에게 던진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남성 투자자들이 여성 창업자가 설립한, 여성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친숙도가 떨어진다. 민간 및 공공기업에 관한 비즈니스 정보 검색 플랫폼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VC 펀딩을 추적한 결과 미국내 대형 VC에서 파트너 중 92%가 남자로 조사됐다.
인상깊게 읽은 글 (2): 전신마취 상태서 떠난 스무살 여성의 슬픈 이별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수명을 다 채운 순간 숨이 딱 끊기지 않는다. 폐렴이든 욕창이든 무언가를 앓게 되고, 그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진단서의 사망원인에 노환을 쓰는 일은 없다. 100살 넘은 노인도 종국엔 병으로 숨을 거두니까. 결국 종착지는 누구나 병원인 셈이다.’
‘모두가 아는 진리,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모두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진리,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싸워야 한다. 눈부신 의학발전이 가져다준 역설이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는다. 심지어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는 채. 그리고 그 곁엔 가족이 아닌 생면부지의 의사가 함께한다. 좋든 싫든, 현실의 죽음 대부분이 그렇다.’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추천
마리지를 보내고 한 달 후
마리지에게 수액을 맞히기 위해 병원에 데려다 주고, 아무것도 못 하겠는 상태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반야가 꼬리를 흔들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반야를 즐겁게 해줄 수는 있겠구나 싶어 무작정 줄을 매고 산책을 나갔다.
반야의 발바닥이 아스팔트 바닥에 닿아 챡챡 거라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일 년 가까이 간 적 없던 호수공원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평일 낮의 호수공원은 조용했고, 빌딩과 아파트숲에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가을이 호수공원에만 먼저 와있었다.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낮에 하는 산책이 오랜만이었던 반야는 자기가 만나는 모든 것들을 다 좋아했고 그 모습이 작은 위로가 됐지만, 동시에 마리지는 이런 풍경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이 자꾸만 내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쳤다. 짧았던 마리지의 삶에도 내가 몰랐던 기쁨이나 재미 같은 것들이 있었으리라. 마리지는 평생 몰랐던 호수공원 같은 세계가 나에게 있었듯, 내가 평생 몰랐던 마리지 만의 세계도 있었으리라. 지금의 하트에게도 있으리라. 그러니 쉽게 연민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자. 겨우 겨우 그렇게 마음을 달랬다.
기도를 할 때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마리지를 위한 기도를 하려고 한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은 늘 어렵지만, 구분해내려고 노력한다.
결과적으로는 그 한 시간 남짓의 산책이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나를 겨우 움직이게 한 건 내가 돌봐야 할 생명에 대한 작은 책임감이었고, 그 경험 이후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책임들이 무척 감사하다. 책임을 다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공공그라운드 인터뷰] 메디아티의 이선재 님을 소개합니다
: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우주님께서, 시간과 마음을 들여 내 이야기를 담고 엮어주셨다.
멜버른앨리스님의 글을 읽고, 단상
사회인으로 사는 시간이 쌓일 수록 내가 몸담고 있는 영역에 대한 생각의 근육은 상대적으로 촘촘해질지 몰라도, 그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무지해지거나 오만해지기 쉬운 것 같다. 자꾸만 내가 안다고 믿는 것, 겪은 것 중심으로 사고하고 해석하게 된다. 사람이니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런가? 한 줌도 안 되는 경험이 쌓이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가진 작은 프레임으로 -돌려막기 하듯-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내게 일종의 위기의식에 가깝다.
심지어 ‘그건 제가 잘 몰라요’라는 말은 점점 더 안 하게 되는 것 같아,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몰라요”라는 말을 더 해보려고 한다. 나만 해도 대화가 즐거웠던 사람을 반추해 보면 무엇이든 다 알고 생각이 정제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설득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트레바리 첫 모임 때 주고받는 랜덤질문 중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이란 게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꾸준히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관계에서 겪는 피로가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여튼, ‘쥐뿔도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자꾸만 뭐 대단한 걸 하고 있는 냥 금세 자만하려 하는 이 간사한 마음을 어떻게 잘 다스릴 수 있을까?!!’가 요즘 나의 화두다. 내가 세네 번은 건너고 건너야 겨우 닿을 자리에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한국언론재단 <뉴스 미디어 액셀러레이터> 보조 연구원 참여
4층 사람들 11.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지만 : 널위한문화예술 오대우 님
사무실에서 백 걸음도 채 안되는 곳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계절마다 매력이 다른데, 봄여름에는 특히 행사가 잦다. 그중 대학로가 단연 빛나는 때는 누가 뭐래도 '서울연극제'가 열리는 4,5월이다. 올해 열린 39회 서울연극제 개막행사에는 '연극은 대학로다'라는 슬로건이 함께 했다. 이 무렵 대학로는 기분 좋은 활기로 소란스럽다. 하지만 이런 활기와는 별개로, 한편에서는 "대학로는 죽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당장 구글 검색창에 '대학로는 죽었다'는 문장을 검색해 보면 '연극은 끝났다' '대학로는 죽었다'로 시작되는 기사들이 줄줄이 보인다. 2015년에는 28년 전통의 소극장 '대학로극장'이 치솟는 임대료로 폐관 위기에 몰리자 200여명의 연극인이 상주를 자처하고 상여를 멘 채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일도 있었다. 대학로극장은 그해 4월 폐관했다.
혜화로 이사를 온 후, 메디아티의 팀원들끼리 '대학로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 주제로 가끔씩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차에 한 영상을 보게 됐다. 예술집단 보름의 '대학로에서 벌어진 두 개의 사건'이라는 영상이었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모르지만 '잘 아시는 것 같은데, 만나서 좀더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다'고 막연한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우연한 기회로 해당 영상을 제작한 팀의 멤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게 누구냐면!
공감과 감정노동은 다르다
정혜신 선생님이 공감은 감정노동과 다르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공감을 쉽게 생각하지만 공감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도 하셨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동의한다. 공감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달콤하나 우리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하기도 받기도 어려운 일.
힘들어하는 이가 겨우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거 무슨 마음인지 다 안다(“나도 예전에 다 겪어봤다.”)고 말하거나, 무의식 중에 고통에 등급을 매기는(“근데 사실 나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태도는 피해야 한다.
상대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자신의 경험을 끌어와 덮어쓰는 것은 공감이 아니다. 이걸 유념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감정 노동을 혼자 해놓고, 나는 정말 할 만큼 했다고, 깊은 위로와 공감을 건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그러면 나중에 괜한 오해가 생긴다. 나는 나대로 서운하고, 상대 역시 나아진 것 하나 없이 무척 힘들다. 사소해보이지만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껄끄러워지니까. 일단 이 두 가지만 피해도, 우리는 한결 공감 가까이에 갈 수 있다.
어렵게 꺼낸 고백이 갈 길을 잃으면 그 다음에 용기를 내기는 훨씬 어렵고, 마음은 몇 배로 외로워진다. 지금 이 사람이 겪는 감정이 반드시 내가 그때 겪었던 그 감정일 거라 예단하지 말고, 일단 듣고, 묻고, 또 들어야 한다. 상대가 속에서 소화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뜨겁고 무거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꺼내놓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세월호 유족 중 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들은 것 중 가장 깊이 치유되었던 위로의 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손을 꼭 잡은 채로 누군가 건네오던 “ㅇㅇ이 정말 보고 싶으시죠...” 한 마디였다고 한다. 그걸 읽으며 나는 마음이 철렁 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힘든 사람들이 참 많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아프고 절망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고통에도 등급을 매기고 유통기한을 설정한다. 그건 철저히 ‘위로해야 하는’ 자의 편리를 위한 거다. 겪는 자의 입장에서 고통에는 등급도 무게도 유통기한도 없다. 잴 수도 없고 비교하기도 힘들며, 고통의 크기와 시간이 반드시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힘들어하는 자의 앞, 뒤, 옆에서 ‘이제 그만좀 해라’, ‘유난 떤다’는 말이 우리 사회만큼 자주 오고가는 곳이 또 있는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런 사회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꾸준히 가져간다는 거, 사실 부단한 의식과 노력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이란, 그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는 일이기에, 어렵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겠지.
고통을 대하는 윤리, 우리의 태도에는 분명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사회는 우리에게 더 자주 물어올 것 같으니.
트레바리
나초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민주주잉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토머스 프랭크>
인상깊게 읽은 글 (1): 애도의 윤리 (이라영)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그 고통을 대하는 윤리를 압도하는 순간 타인의 고통은 소외된다. 사실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사실적인’ 묘사에 자극받는다. 묘사를 사유라고 착각하여 치밀하게 묘사할수록 치열하게 사유했다고 여긴다. 타인의 고통 위에 나의 목소리를 덮어씌우는 행동과 타인의 고통이 내 목소리와 연결되도록 하는 행동은 다르다.’
인상깊게 읽은 글 (2): 페이스북에서 본 임지은 님 글
‘상실로 삶이 어려운 이들이 끝장나지 않도록, 모든 종류의 이별이 최대한 쉬워지기를 바란다. 관계의 본질은 헤어짐이며 이혼은 그저 수많은 헤어짐 중 한 종류에 불과했을 뿐이다. 아무리 해도 이별은 쉬워질 수 없지만, 가까이 해온 이별 덕에 나의 삶은 보다 제 값을 치르고 있다 믿는다. 아팠지만 우리는 자주 비싼 값으로 비싼 앎을 배우고, 나의 밭에는 무성한 현재가 자란다.'
인상깊게 읽은 글 (3): 관리된 젊음 (이윤주)
"나는 ‘사회의 어른’을 기다리지 않는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요즘, 경험도 가치관도 다른 어른의 조언이 청춘의 불안을 해소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보다 필사적으로 관리하는 젊은 정신을 기다린다. 나의 경험이 너의 삶에 아무런 교훈이 될 수 없음을, 나의 말이 너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헤아리는 태도를 기다린다. 청년실업과 저출산 문제와 경제양극화의 해결은 ‘우리 모두 살기 위해 너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의 언어를 바꾸겠다’는 기득권의 변화에서 시작될 터다."
마보를 이용한 매일매일 마음챙김 (기사: ESC_마음의 운동, 명상에 빠지다)
아침, 저녁 마보 앱을 이용해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세네 줄 정도 손글씨로 짧은 일기를 쓰고 있다. 두 달 정도 됐는데 의식하지 않으면 게으른 마음이 바로 고개를 드니 아직 습관이 되지는 못한 단계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며, 이 시간이 내 삶에 정말 필요했구나 느낀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이렇다.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열고 닫을 것인지 좀더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다."
마음챙김을 하지 않을 때는 그날의 내 기분과 마음이 대부분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아침 출근길 지옥철에 2시간 정도 시달리면 내 마음까지 지옥이 되어버리고, 직장에서 누군가와 언쟁을 하고 나면 퇴근길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삶이 특히 더 불행해서가 아니라, 우리 누구에게나 종류와 정도만 다를 뿐 반복되는 자극과 스트레스들은 늘 있지 않은가. 그로 인해 자꾸만 소진되는 마음의 체력을 높이기 위해,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보다 주체적으로 내 상태를 결정하고 싶어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했다.
외부의 자극과 스트레스가 내 감정을 집어 삼키려 들 때 잠시 끊어주고 가는 것. 수시로 할 수는 없으니 아침 출근길에 한 번 하고 잠들기 전에 한 번 하지만, 어설프고 서툴게 하는 것에 비해 그럭저럭 꽤 도움이 된다. 애초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의 하루 어딘가에 그런 시간을 몇 분이나마 끌어다놓고 사수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큰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열어갈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 다짐을 적어보는 일.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음에 남은 감정의 잔재들을 소화시키는 일.
물론, 그 방법이 꼭 명상일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왕이면 큰 돈과 품이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이 좋아 이 방법을 택했다. 이 과정이 내 일상에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는 기초체력도 면역력도 조금 올라가지 않을까. 원래 체력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조바심 내지 않고 꾸준히 천천히 뛰다 보면, 그것들이 쌓여 어느새 쑤욱 하고 늘어있는 것.
예전엔 빨리, 드라마틱하게 였다면 요즘은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쌓는 게 좋다. 그럴수록 잘 안 무너지니까.
<아는 언니> 행사 : 패널 참여
어제는 <아는 언니>라는 행사에 패널로 참석했다. 여성 롤모델도 귀하고 훌륭한 여성 어른을 뵙는 것도 너무 좋지만, 당장 내가 마주한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나눌 ‘언니’ 역시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쓰이겠다는 마음으로 패널로 참석했으나, 사실 누구는 패널, 누구는 참석자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는 자리였다.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기에. 그냥 우리에게는 모이기 위한 어떤 핑계가 필요했을 뿐.
각자 가진 생각의 결은 다를 수 있겠지만, 다들 젊은 여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무척 어렵고 막막하다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마냥 좌절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나에게 안정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려는 마음, 그 커뮤니티에서 힘을 얻고 또 거기에 자기 마음을 보탤 방법을 고민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늦은 밤까지 여기서 이렇게 모여 있는 거구나 생각하니 끝에는 잠깐 울컥 했다.
우리는 이런 자리가 얼마나 고팠던 걸까. 누구는 너무 많(아졌)다고, 포화라고 유행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나, 나는 이러한 만남의 기회와 콘텐츠, 커뮤니티들은 아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참 부족하며 앞으로 더욱더 많아질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의 삶이란 게 ‘여성’으로만 퉁쳐지기에는 너무나 여러 겹이기에, '여성'만 붙었다 하면 '아 또 그 얘기야' 하는 식의 태도를 볼 때마다 너무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 가까이에 더 다양한 결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작더라도 정확한 만남’들이 훨씬 더 많아지길 바란다.
마이크를 쥐고 자기 얘기를 할 때, 우리 모두가 마음만 먹는다면 새벽 내내 멈추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지금 너무 피곤하고 할 일도 많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는 일단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의 같은 것도 몇몇 분들께는 보였다. 이런 만남의 기회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래서 더 많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마이크가 돌아가고,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들을 매개로 더 많은 언니와 동생과 친구가 생겨난다면 말이다. 사진은 나란히 머리를 맞댄 누리님과 지원님의 다정한 뒷모습. 내년부터 필요의 방 모임을 다시 이어갈까 싶다.
2018 교보 인문학 석강 <크리스틴 데트레즈: 여성은 위인이 될 수 있을까?>
: 코리아 엑스포제 혜련님의 소개로 좋은 행사에 사회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아래 글은 행사 후 단상.
프랑스대사관과 대산문화재단,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이 주최하는 <여성은 위인이 될 수 있을까> 행사.
노쇼율이 무척 높기는 했지만, 오늘 이 행사에 50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500명. 수요일 저녁 행사에 말이다. 연사로 오신 크리스틴 데트레즈 선생님은 프랑스에서는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작가인데,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된 저서는 아직 한 권도 없다. 그럼에도 이처럼 많은 분들이 신청하신 것은, (연사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말하는 자리에 대한 갈증과 관심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 데트레즈 선생님은 연단에 오르자마자, 이제 잠시 후면 프랑스에서 가장 의미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 올해 수상자가 발표된다며, 그러나 이번 공쿠르상 최종 후보 4인은 모두 남성이기에, 여성 수상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해리포터 작가인 J.K 롤링이 여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와 같은 필명을 썼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남편 혹은 남성 동료에게 노벨상이나 공로를 도난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재능에는 자꾸 물을 주며 발전시켜야 비로소 결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도.
질의응답 세션 진행 방식은 이랬다. 우선 행사에 오신 분들께 질문지를 미리 나눠 드리고, 강연을 들으며 궁금한 점을 적어달라 부탁 드렸다. 그렇게 스태프를 통해 취합된 질문지를 전달 받아 선별적으로 크리스틴 데트레즈 선생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30분 가졌는데, 아마 3시간이 주어졌대도 거뜬히 채우고 남았을 거다. 그만큼 앞뒤가 손글씨로 빽빽하게 찬 종이들을 수북히 전해받았다. 시간을 칼 같이 지켜야 했기에 여러번 중복해서 나온 질문들 위주로 추려서 여쭤봤지만, 읽히지 않은 나머지 질문들도 하나하나 소중하고 뜻깊어서 고이 가방에 모셔놓았다.
강연을 포함해 질문에 대한 답까지,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은 참 많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바로 ‘4B(비연애 비결혼 비출산 비섹스)’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페미니즘 운동으로써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크리스틴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여성이 4B를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한다. 4B를 택했다는 이유로 어떠한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여성이 남성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면 그 선택 역시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선택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4B든 결혼이든, 여성이 어떠한 선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이라고 낙인이 찍히지 않고, 무엇이든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질의응답의 형태가 아니라 시간제한 없는 깊은 토론을 하고 싶었는데, 아마 많은 이들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나는 크리스틴 선생님의 이 대답으로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편의로운 1인가구 페스티벌 <여성 1인가구 정책간담회> : 대호님의 감사한 제안으로 사회자로 참여했다. 시민으로서 효능감이 높아지는 알차고 귀한 경험이었다.
오늘 행사에서는 참가자 분들과 2030 여성 1인가구로 사는 것의 불편과 두려움을 나누고 <너무불편 리스트7>과 <하길바람 리스트7>을 작성했다. 이 리스트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승로 성북구청장에 전달된다고 한다. 부담을 무릅쓰고 녹취에도 모두 응해주셨기에 몇몇 매체에서 보도도 될 것이다. 참가자 분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던 지점이 있었는데, 그건 오늘 나온 이야기들이 이 자리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바깥으로 퍼지게끔 하겠다는 운영진의 약속을 들었을 때였다.
행사에는 동네 주민이라 부담 없이 오신 분도 계시고, 용인에서 부천에서 저녁도 거르고 달려오신 분들도 계셨다. 일상에서라면 만나기 힘들었을 분들과 마주한 채 묻고 듣고 모아서 기록하는 일이 즐거웠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씨앗이 되어 여기저기 퍼져나갈 것이다. 각자에게 필요한 어젠다를 공론화 시키고, 그것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기여하는 “작고 재미있는 일”들이 지금보다 딱 500배만 많아지기를.
트레바리
나초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민주주잉 <청와대 정부, 박상훈>
고민이 엄청 많았던 11월의 어느날에 쓴 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고로 해내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다. 언제는 고민 없고 걱정 없었나. 돌이켜 보면 인생의 모든 시기에 고민과 공상과 걱정은 늘 넘쳐났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 없이 고민 많은 나, 를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줄 때도 됐다. 무언가 새로운 선택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탁월하게 해내는 데에 더 많은 마음을 쏟기로 하자.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 더 많이 믿어주자.
+ 이 글을 쓰고 수영님께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를 추천 받았다. 정신없이 완독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생각이 단단해지는 한편,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는 갈래도 있었다.
인상깊게 읽은 글: 처벌을 원하냐고 묻지 마세요 (이진희)
2010년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에게 판사가 “가족들의 처벌을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 판사가 저주스러웠다. 소녀의 마음이 약해져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량을 깎아주고, 용기를 내서 강력한 처벌을 원하면 형량을 올리겠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의 효과는 단 하나.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주고 정신을 더욱 분열적인 상황으로 내모는 것뿐이다. 피해자에게 왜 용기가 없느냐, 권리도 모르냐고 묻는 것 또한 강자의 논리다.
그러니 권력형 범죄의 피해자에게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이 용서했던 아니건 가해자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가해자의 손아귀에서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정 내의 사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시스템이 절대값으로 굳어져야 가해자도, 자신이 상대하는 대상이 쉽게 때리고 칼로 위협할 수 있는 한 명의 약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체라는 것을 알고 일말의 두려움을 가질 것 아닌가.
루프 오분의 오 페스티벌
안녕하세요.
저희 루프 오분의 오 페스티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자 메일 드립니다.
이것저것 마무리를 하다 보니, 조금은 야심한 시각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연말이 으레 그렇듯, 다들 정신없이 바쁘시지요.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내서 저희 루프 페스티벌에 함께 해주신 것은, 그만큼 이 콘텐츠 씬에 대한 여러분의 애정과 관심이 크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루프는 ‘크고 훌륭한 비전과 목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비전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전방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이야기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행사였습니다. 따라서 오시는 분들의 기대를 저희 행사의 취지와 비슷한 핏으로 맞추기 위해 사전 기획 단계부터 행사 당일까지 여러모로 고심하여 경험을 설계했습니다. 각 세션 패널토의 때 참가자 분들께서 주신 질문들을 살펴보며, 남겨주신 후기와 전해주신 메시지들을 보며, 저희가 전하고자 했던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많은 분들로부터 이해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생태계를 말함에 있어 매출 규모, 수익 모델, 비전과 계획, 성과는 중요합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주 간과되는 것은, 그 생태계를 두 손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조직을 대표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대표가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피칭할 수 있도록 무대 밖에서 성과를 묵묵히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중요합니다. 저희는 그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고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노력을 하나도 말하지 않고 가는 것은 너무 섭섭한 것 같습니다. 관대하게 들어주시리라 믿으며 짧게나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무대에 오르신 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본업에 충실하며 치열하게 하루하루 보내는 분들이셨습니다. 퇴근 후 늦은 시간, 쉬고 싶을 법도 한데 전화로 문자로 메일로, “어떤 내용을 전하는 것이 참석하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오셨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근 한 달 간의 시간 동안 그랬습니다. 모더레이터 분들과는 정말 몇 번씩 만났습니다. 점심 시간에, 퇴근 후 늦은 저녁 시간에. 번거롭고 귀찮을 법도 한데 모든 부탁과 토론에 기꺼이 응해주셨습니다.
무대에 오르신 분들 모두 저희 행사의 취지에 공감해주셨기에 섭외 요청에 응해주신 분들입니다. 그런 만큼 취지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의견을 밝혀주셨습니다. 행사에 오실 분들의 시간을 무척 귀하게 여기시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자고 운영진인 저희에게 되려 강조해주셨습니다. 그런 고민을 거쳐 새롭게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여러 번 기획을 다듬으며 저희가 부탁드린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태주셨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여러 제약으로 준비한 모든 것을 그대로 펼쳐놓지는 못했지만 그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준비하는 우리만 감동 받고, 좋은 행사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여러번 부담과 불안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 대체로 행복하고 가슴 뛰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나 행사에서 모자라고 미숙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희의 탓입니다. 그만큼 무대에 오르신 모든 분들이 놀라울 정도로 시간과 체력을 쪼개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박수와 따뜻한 응원이 모두 그 분들께로 향하기를 바랍니다.
고달픈 마음이 드는 순간이 많고, 막막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콘텐츠 씬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각자의 팀, 조직, 업계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분들이 여러분의 힘찬 박수와 따뜻한 눈빛으로부터 힘을 얻었듯, 여러분께도 루프에서 보낸 하루가 좋은 자극과 에너지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내년에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 많이 벌일 예정이니, 함께 해주세요!
다시 한 번,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오늘을 동력 삼아 오래오래, 잘, 힘있게 해내는 사람이 될게요
2019년 목표는, 삶의 무게중심을 내 안으로 가져오기
"지금 네가 가려는 길이 옳은 길임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필요 없어. 저기 저 사람이 가는 길이 더 빠르고 좋아보이는 것 같다고 해서 조바심 낼 필요도 없어. 너는 너의 길을 가고 저 사람은 저 사람의 길을 가는 거니까.
난 이쪽으로 가지만, 그 길로 가는 너도 행복하길 바라. 내가 가보지 못한 그 길에서 무얼 보고 느꼈는지도 들려줘.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부디 내가 그런 경쾌한 태도를 갖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2018/19 프로그램 시작
어느새 네 번째 뉴스랩.
1월 11일에 있을 뉴스랩 홈커밍데이에서는 1,2,3,4기 펠로우들이 모두 모인다. 그리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뭉클하고 애틋하다.
트레바리
나초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주주잉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
인상깊게 읽은 글 (1): CLAUDE VONSTROKE와 미국 댄스뮤직의 미래
"Aundy(아내)가 이런 말을 했어. ‘내가 1년 동안 집세를 책임질 테니까 당신은 당신 일 해. 그리고 만약에 일이 잘 돼서 5만 달러까지 벌 수 있게 되면 평생 해도 돼. 대신 그렇게 못 벌면 다른 평생직장을 찾도록 해.’ 내가 들어본 중 가장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었어. 진짜로.” 그는 돈을 모아 네 장의 12인치 음반을 냈다. Claude VonStroke’s ‘Deep Throat’는 바이닐 카피만 1만4천장이 팔렸다. 당시 32살의 Claude VonStroke는 계획보다 일찍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씬 자체와,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전시키는 것에 있어서 의욕이 넘친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이디어 하나를 놓고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해.” 최근 한 시간관리 코치가 그에게 “6주 동안 아이디어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냥 비트를 100개 만들어라. 하루에 한두 개씩 만들어서 폴더에 모아놓고, 자주 들여다 보다 보면 어떤 게 좋은 건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설득한 적이 있다. “요즘 그렇게 하니까 좀 되더라고.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작업해본 적이 없었거든. 원래는 트랙을 10개 만들면 그 10개를 다 썼어. 이제는 하나를 위해 30개씩 만들어.”
인상깊게 읽은 글(2): 미투 배우가 준 고통, 맷 데이먼 (정희진)
예술가의 인성과 작품 수준의 관계는 끝없는 논쟁거리지만, 나는 이에 대한 나름의 입장이 있다. 좋은 인간과 좋은 예술가는 모순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예술은 사회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선(善)의 기준은 대단히 넓고, 다면적이고, 맥락적이며, 인간은 일관되고 합리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악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나쁜 사람의 작품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작품에는 반드시 나쁜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다. 혹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이 문제는 논쟁거리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어린이를 학대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얘기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런 사람의 작품은 논쟁을 넘어 논쟁의 가치조차 없다.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보라. 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조금이라도 올바르지 않은 태도를 가진 배우, 감독, 스태프 하고는 일하지 않는다(해고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스필버그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하는 가해자는 없다.
그런데 왜 사회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만 논쟁이 분분할까. 이 자체가 젠더 폭력에 대해 관대하다는 얘기다. 성폭력은 그 어떤 잘못보다 엄격히 다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주지 않는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반발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남성 사회는 스스로, 혹은 (피해) 여성 집단에 두 번째 기회를 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부정하고 은폐하고, 가해자는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두 번째 기회가 웬 말인가.
맷 데이먼. 다시는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서 속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평범한 씨네필의 영화 사랑을 망친 그에게 분노한다. 내가 신뢰하는 어느 영화평론가는 이런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2004) 월드 프리미어에 참석한 그는 서구 기자들에게 ‘치여’ 제대로 입장도 못하고 곤란한 처지에 있었는데, 관람권을 미리 확보한 ‘기득권 평론가’가 영화가 상영되자마자 코를 골며 잤다는 것이다. 극장 밖에는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고레에다의 영화를 보면서 코를 골고 잔단 말인가, 그것도 다른 이들의 관람 기회를 박탈해가면서) 솔직히 살의를 느꼈다.” 내가 맷 데이먼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2018년을 보내며
올 한 해 잘 살아낸 선재야, 고생했어.
내년도 잘해보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반듯한 생각과 태도로, 용기 있게 내 길을 걷는 사람이길. 소중한 것들에 좀더 마음을 쏟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충분한 2019년이 되기를.
모자란 저를 보듬어주고 품어주신 모든 분들께 사랑과 감사를 보내요. 내년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으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