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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재 Jun 16. 2020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3년의 기록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자그마한 돌멩이 정도는 던졌을까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Google News Lab Fellowship)은 구글코리아와 서강대, 메디아티가 주관하고 운영하는 뉴스 미디어 혁신 프로젝트다. 구글 펠로우십은 한국뿐 아니라 호주, 영국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뉴스랩 펠로우십이 언론사에 인턴을 파견하는 ‘인력 지원’ 방식이었다면, 한국은 최초로 독자적인 모델을 시도했다. 다양한 직군의 펠로우들이 한 팀을 이루고, 매칭된 파트너인 미디어/비영리단체와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이끄는 방식이다. 1기 프로젝트 백서에도 나오듯 그야말로 ‘자유방임형’ 실험이다.

 


최소 개입, 자유방임 

2015년 겨울,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에 700명 넘게 지원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특화된 경험을 쌓을 기회가 국내에 드물었다. 누군가에게는 ‘언론고시’를 준비하기 전 마지막 테스트 같은 의미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IT 기업인 구글에서 뉴스랩 프로그램을 연다니, 그 참신한 조합에 관심이 갔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 다른 기대와 바람을 품고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1기가 출범했다.

“Learning by Doing”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모토다. 먼저 배우고, 그것을 실전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도하고 부딪치며 배운다는 철학이다. 이 모토는 펠로우 선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자, 영상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를 뽑을 때 공통적으로 ‘당장 실전에 투입 가능한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저널리즘과 혁신이라는 말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말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믿음에 따라 기존의 채용 제도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기준으로 펠로우를 선발한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룰과 실험의 재료가 될 만한 자원을 제공하고, 어떤 재료를 골라 무슨 요리를 할지는 철저히 펠로우와 파트너 미디어/비영리단체 재량에 맡긴다. 이 과정에서 운영진은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고 팀에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최소 개입’을 지향한다. 각 팀의 미션과 프로젝트 특징이 다 다르기에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펠로우들이 배우고 얻어가는 것도 모두 다르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핵심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다양한 탤런트를 가진 펠로우들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밀도 높은 협업을 한다는 점. ‘기획(기자), 영상, 디자인, 개발’이라는 기존의 조직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합으로 미디어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둘째, 모든 펠로우가 기획 및 취재, 제작, 발행, 분석 등 전 과정에 참여한다.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구조다. 예산안에 팀별 제작비 외에 ‘소셜 채널 광고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을 정도로 생산 못지않게 유통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3기 일정이 모두 끝나는 3월이면 프로그램을 수료한 뉴스랩 장학생은 국내에만 총 56명이 된다. 프로그램의 밀도와 경험의 효용을 생각했을 때 결코 가볍지 않은 숫자다.


‘타깃 오디언스’는 구글 뉴스랩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생산자 중심의 아이템 발제, 기획에서 벗어나 타깃 독자를 취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템을 발굴한다.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해왔다면, 타깃 독자를 설정하는 것은 자원을 집중할 대상과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일이다. ‘타깃 독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독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무게추를 생산자에서 (타깃)독자로 옮겨가는 훈련인 셈이다. 




저널리즘을 새롭게 정의하라 

매해 뉴스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펠로우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저널리즘이 뭘까?’다. 다양한 직군의 펠로우가 참여하다 보니, 특히 디자인과 개발 직군의 펠로우들 중에는 “저는 저널리즘을 1도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많다. 그렇다고 기자나 영상 직군 펠로우라고 해서 명쾌한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러한 걱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운영진으로부터 들은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저널리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뽑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사람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성 미디어에 의해 학습된, 제한된 의미의 저널리즘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널리즘이 뭔지,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의 차이가 뭔지 여러분이 직접 부딪치며 재정의해보세요. 그러라고 여러분을 모은 겁니다.” 이 대답에 공감한 건, 저널리즘과 뉴스를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접근할수록 뉴스랩 펠로우십을 소화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만을 견지하고 팀원들과 함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새롭게 정의를 내리는 방식이 과정도, 결과도 훨씬 더 좋았다. 

파트너 언론사를 방문해 기획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펠로우들은 “이 기획에 저널리즘은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3기의 한 펠로우는 “질문자님이 생각하시는 저널리즘이 무엇인가요?” 되물었다고 한다. 어떤 답변이 나왔는지 상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종류의 대화, 토론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뉴스 가치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미 정해진 답을 학습한 뒤에 뉴스를 제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도의 지식과 이해 수준을 맞춰나가며 ‘저널리즘’을 새롭게 정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유독 희소하기 때문이다. ‘이게 저널리즘이냐’라는 질문에 ‘당신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 있는 분위기 역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이 지향하는 문화다. ‘저널리즘’은 성역의 대상이 아니며 영역 싸움의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벽을 허무는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활기를 되찾고 핵심 가치가 분명해질 것이다. 저널리즘과 뉴스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허용되고 인정받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은 앞서 말했듯 펠로우와 운영진(메디아티, 서강대) 외에도 파트너 언론사/비영리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이번 3기에서는 처음으로 언론사 외에 비영리단체도 모집했는데 현재 ‘다음세대재단’이 첫 비영리단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세대재단의 비전이자 키워드인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해당 팀의 펠로우들이 구체화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펠로우들은 비영리단체가 가진 풍부한 자료 및 네트워크 면에서 도움을 받고, 비영리단체는 해당 주제를 세련되고 참신하게 스토리텔링하는 펠로우 들로부터 자극을 얻고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1,2,3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내의 다양한 언론사, 방송사의 니즈도 세밀하게 분화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체적인 콘텐츠 실험이 활발해지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조직에 따른 편차가 심한 상황이다. 어느 조직은 여느 스타트업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실험을 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디지털 저널리즘에 발 들이지 못한 곳도 있다. 이러한 편차가 발생함에 따라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에 참여하는 파트너 미디어사의 니즈와 관심사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운영진이 특히 유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펠로우십 프로그램이 파트너 미디어사에 줄 수 있는 경험과 메리트는 무엇이며, 기존 미디어와 파트너로 협업하는 경험이 펠로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매해 프로그램 운영 과정에서 고민하게 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좋은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은, 어렵지만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펠로우십은 진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1기는 다양한 직군의 펠로우들이 협업하고, 모바일 환경을 무대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 자체로 참신한 시도였고 화두였다. 그러나 국내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소셜 플랫폼을 무대로 한 다양한 콘텐츠 실험이 등장하면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역시 그에 걸맞은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각 펠로우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어가고자 하는 경험,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이 다양해지면서, ‘모바일 문법의 스토리텔링’ ‘포맷 실험’ 이상의 의의를 갖고자 하는 욕구도 점점 커졌다. 

이러한 고민의 맥락에서 이번 3기 팀들은 각기 다른 전략을 채택했다. 어느 팀은 물량 공세를 통해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어느 팀은 독자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설계한 양질의 콘텐츠를 소량만 공급하는 방법을, 또 단계별로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버라이어티 패키지 같은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법을 택한 팀도 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도, 우열도 없다. 다만 팀이 선택한 주제와 타깃 독자에 맞게 그에 최적화된 방식의 콘텐츠 전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철저히 ‘타깃 독자의 경험을 설계한다’는 관점에서 기획과 생산, 발행이 이루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펠로우들이 콘텐츠 생산 못지않게 유통 및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빠르게 인지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모든 과정이 일관된 방향으로 독자를 타기팅할 때 우리의 타깃 독자가 호출될 확률도, 독자 스스로 해당 콘텐츠를 소비해야 할 동기도 커진다. 

소셜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특성상 ‘바이럴’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펠로우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이 고민에 답하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만의 기준, 성장 지표를 미리 합의해야 한다. 각 팀들은 독자 반응의 규모를 살피는 것 외에도 우리 콘텐츠가 타깃 독자에게 적절하게 도달됐는가, 콘텐츠에 반응한 독자들은 우리의 의도를 이해했는가, 이 콘텐츠가 발생시킨 추가적인 질적 논의들이 있는가 등을 적절하게 관찰하고 분석한다. “Helping readers live better lives.” 2017년에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 참석한 팀 에레라(Tim Herrera) 뉴욕타임스 스마터리빙 수석 에디터는 ‘서비스 저널리즘’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내놓았다. 우리 독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모든 것이 곧 ‘서비스 저널리즘’이라는 시각이다. 타깃 독자가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 집중하고 그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프로젝트들 역시 기본적으로 ‘서비스 저널리즘’의 성격을 갖는다. 



지속 가능 임팩트를 위하여 

현재 진행 중인 3기 뉴스랩 펠로우들 사이에서 ‘실험이 뭘까’ ‘새로운 포맷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라는 질문이 오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모바일 퍼스트’ ‘피봇 투 비디오(Pivot to Video)’ ‘포맷 실험’과 같은 말이 신화처럼 시장을 휩쓰는 가운데, 펠로우들은 결국 ‘뭣이 중헌디?’라고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묻는다. 각 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우선순위는 다 다를 테지만 독자와의 접점을 잃어버리면 실험의 의미도 잃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팀이 합의한 지점이다. 우리의 독자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 것, 독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고 설계하는 일. 철저하게 독자 중심으로 사고하며 그 과정에서 최소 원칙과 윤리를 지키며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누군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9주간의 실험을 간단히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3기 일정이 모두 끝나는 3월이면 프로그램을 수료한 뉴스랩 장학생은 국내에만 총 56명이 된다. 프로그램의 밀도와 경험의 효용을 생각했을 때 결코 가볍지 않은 숫자다. 이제야 무언가 누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임팩트’를 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해마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이 끝나면 누군가는 조직에 들어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실험을 위해 조직을 만든다. 뉴스랩 펠로우들이 창업한 미디어 스타트업만 벌써 세 개다(긱블, 쥐픽쳐스, 미닛). 1기 개발자였던 강종구 펠로우는 국내 최초로 ‘데이터 에디터’라는 이름을 달고 한국경제 뉴스래빗에 합류했다. 뉴스랩을 거친 적지 않은 이들이 이처럼 현장 곳곳에서 전에 없던 ‘자리’들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을 계기로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더욱 다양한 모양의 ‘자리’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이 실험이 9주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2018년 3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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