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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재 Jul 25. 2021

이 더위는 누군가에게는 낭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이겠지

요즘은 에어컨을 틀고 실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계급일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추위만큼이나 이 뜨거운 더위도, 피할 길 없이 노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야속하고 무서울 것이다. 지하철 역사 안에도 더위를 피해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부쩍 많이 보인다.


객관적인 사실, 이를테면 기온 몇 도 같은 것조차도 사람에게는 그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바깥이 41도여도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에게는 ‘오늘 더위 정말 엄청나네’ 하고 지나가는 한 시즌의 불편이지만, 야외 현장이나 에어컨 없는 좁은 방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정신을 쏙 빼놓고 목숨의 위협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객관적 사실도 그러한데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으로부터 스트레스나 고통, 불편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은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고.


내가 직접 겪은 것만이 세계의 대부분이라고 인식하고 생각하는 태도는 그래서 위험하다. 사람이기에 자기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나와 나의 지인들의 표준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런 사람들로만 우리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면 그는 여러 면에서 비극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삶에 너무도 크다는 사실을 점점 더 체감하고 있는데, 단지 몇 년 차이로, 한순간의 선택 차이로(ex. 전세-매매) 삶의 질과 자산 격차가 한순간에 벌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냉소적이지 않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당장 무리를 해서라도 무슨 일이라도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나와 관련 없어 보이는 무언가에 넉넉하게 관심과 연민을 나눠주기가, 이 사회를 장기적으로 좋게 바꿔나갈 수 있는 단기적인 불편과 리스크에 내 시간을 투자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 하나를 다스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느끼며, 관계를 최소화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한다.


이것이 나쁜 거냐고 한다면 그렇진 않다. 하지만 좋은 변화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느냐. 답은 모르겠다(;;;)


근데 하나 스스로 다짐하고 기억하려 하고 있는 것은, 참 답답하고 내 앞가림하기조차 벅차게 느껴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더라도. 그런 와중에도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삶, 그러나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을 삶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주기적으로 내 옆자리를, 그 옆의 옆자리에서 보이는 세상을 접하고 들여다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내 삶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비관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지나치게 오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을, 그리고 그 사회 속 나와 주변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연민할 수 있다. 그 이해와 연민이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비단 이타적이라는 요구는 아니다. 그런 태도를 우리가 더 많이 가질수록, 장기적으로는 나에게도 그것이 더 이롭게 돌아온다(고 나는 믿고 있다.) 부모가 될 가능성을 점점 더 삶에서 적게 열어두는 세대이기에 나의 아들 딸이 살 세상을 더 좋게~라는 말은 전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렇다), 분명한 것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금보다 젊음이나 건강, 벌이 면에서 안정성과 도약의 기회가 필연적으로 줄어들 것이기에, 보다 넓은 대상에 책임과 연민, 관심을 느끼는 일을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과학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조하는 세상에서 우리 눈에 당장의 효용과 쓸모가 보이지 않더래도 문학을, 뉴스를 넘어 이야기를, 철학을, 계속 가까이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살지 않는 삶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는 방법이니까. 내가 살 뻔했거나 살게 될지도 모를 삶을 체험하고, 거기서 느낀 것들을 내 안에 심어놓다 보면 그것들이 언젠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씨앗이 되거나, 세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끔 받쳐주는 자원이 된다.


효율이나 집중력, 생산성 같은 것들도 좋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때 세 번에 한 번은 소설책도 읽고. 이왕이면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이의 자서전도 읽어보고. 우리 모두 그런 여름을 보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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