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든 Dec 31. 2020

<서던 리치 : 소멸의 땅>이 환경 영화인 이유

자연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


우연히 보게 된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트레일러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나탈리 포트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태껏 보지 못한 신비로운 느낌의 영상과 배경음악이 나를 다시 넷플릭스로 불렀다. <옥자> 이후로 넷플릭스를 등한시했었는데 (지금은 구독한 지 좀 됐지만) 오랜만에 로그인하게 되었다.


<서던 리치 : 소멸의 땅>을 처음 본 소감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깊이 매료되고 말았다. 더 알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원작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1권은 정말 흥미롭게 읽었고 그다음은 너무 지루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인 제프 벤더미어는 서던 리치 3권 중 첫 번째 작품 <소멸의 땅(Annihilation)>으로 네뷸러상을 수상했다. 책을 읽을 당시 이런 구절을 적어 놓았는데, 여기서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가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파괴되는 환경을 얼마나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결코 문명에 길들여지지 못했다. 도시의 공해와 영원히 잠들지 않는 상태, 분주하고 번잡한 분위기, 별들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꺼질 줄 모르는 불빛들, 사방에서 풍기는 가솔린 냄새처럼 우리의 멸망을 예고하는 수천 가지 전조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미스터리였던 영화 내용은 작가에 관한 작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제프 벤더미어는 UN 평화봉사단이었던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 대부분을 피지섬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을 보기 위해 여러 국립공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서던 리치 : 소멸의 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에 관한 영화다.






1. 세포, 분열, 자가 소화 작용


영화 초반에 주인공인 리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세포는 기존에 존재하는 세포에서 태어나죠. 그 말은 즉 모든 세포는 하나의 세포에서 만들어진 거죠. 지구 상 단 하나의 유기체에서, 전 우주에서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약 40억 년 전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어 8, 16, 32쌍으로 분열되는 리듬이 모든 미생물의 구조가 되어 식물, 해양 및 육상 생물이 되고 인간이 되죠.


인간이 자연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인간은 같은 세포에서 분열되어 생겨난 것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어서 리나는 종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가 소화 작용'을 언급한다. 즉, 자기 자신을 섭취하는 작용인데,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영양 부족 상태가 되면, 스스로 소화기관을 분해하여 양분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갑자기 소화기관에 뱀처럼 창자가 기어 다니는 영화 속 한 장면이 생각난다) 자연도 무분별한 파괴나 어떤 불균형을 겪었기 때문에, 쉬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지구 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세포 단위로 분해하여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창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포나 DNA에 관한 내용은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데, 이 세계를 인간, 동물, 식물, 자연의 큰 카테고리로 가르는 것이 아닌 세포 단위로 보는 시각의 전환을 제시한다. 영화 후반부에 벤트레스가 "가장 작은 단위로 산산이 조각나고 내 존재가 없어질 때까지, 전멸할 때까지"라고 말하며 실제로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빅뱅의 모습을 보여주듯 작은 폭발이 발생하는데 거기에 리나의 피, 즉 DNA가 들어가 세포 분열하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은 이 세계가 처음 있었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2. 쉬머의 생성(새로운 세계의 탄생)


3년 전 블랙워터 국립공원 주변 등대에 희미한 빛이 발견되었고 여기를 시작으로 쉬머라고 부르는 경계가 계속 확장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영적 사건, 외계 사건, 고차원 세계 등의 이론을 제시하지만 쉬머 안에 동물, 드론, 사람을 보내서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쉬머가 무엇인지도 설명할 수 없는 단계다. 그래서 주인공인 리나를 포함한 탐사대가 쉬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영화가 SF 영화이기 때문일까. 많은 해석이 쉬머를 두고 외계인의 존재를 말하고 있지만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이다. 쉬머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자연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식물은 닥친 환경에 따라 진화한다. 자연의 법칙도 마찬가지로 지금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3. 쉬머 안의 변형, 복제, 메아리


쉬머 안에서는 나침판, 라디오, 통신 기기는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식물은 같은 가지에서 자라나는데도 같은 종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다른 종끼리 이종교배는 할 수 없는데 상어 이빨을 가진 악어가 출몰하고, 자신이 잡아먹은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곰이 나타나고, 인간의 모양으로 자라나는 식물이 존재한다. 리나는 이런 연속적 돌연변이를 마치 악성 종양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자가 소화 작용이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이 변형을 일으키고 있다. 왜 그럴까? 쉬머를 다른 관점에 바라보자. 쉬머는 어쩌면 자연이 바라보는 인간 세계를 흉내 낸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제멋대로 뒤엎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예 그 세상을 복제한 것이다.

쉬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그려지지만, 이건 바로 인간이 자연에 한 행동과 똑같다. 인간도 서로 다른 종을 교배시키고 유전자를 조작하여 인위적인 동식물을 만들어 냈다. 인간이 개발하고 배출한 온갖 종류의 화학물질이 모든 생명의 DNA까지 교란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의 눈으로 봤을 때 영화 속 쉬머의 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 자연에서 모든 것은 순환하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행동은 그대로 메아리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난 것이다. 무한대 문신도 이러한 자연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4. 쉬머가 생겨난 이유


쉬머, 즉 새로운 자연환경이 생겨난 이유는 영화 속 벤트리스의 대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인간의 충동 때문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벤트리스는 자살과 자멸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은 자살이 아닌 자멸을 한다고 말하며, 술과 담배를 하기도 하고 멀쩡한 일을 망치며 결혼 생활을 파탄 내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선택이 아닌 충동 때문에 발생하고 자신을 멸망하게 한다. 인간에게 자멸은 타고난 것이며 세포에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라고도 한다. 즉 인간은 본능을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한 결과 스스로 멸하는 자멸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런 자멸 본능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멸종하기 위해서 쉬머의 등장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싶다.




5. 엔딩


탐사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쉬머에 흡수된다. 쉬머 안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에게 잡아 먹힌 사람들도 있고, 조시처럼 쉬머의 일부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다. 자멸을 원했던 벤트리스는 세포 수준까지 산산조각났고, 누구보다 살아서 돌아갈 의지가 있었던 리나는 새로운 세계에 동화되었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한 리나는 자신의 복제품이 필요하지 않아 불태운 것이다. 리나의 남편도 동화되어 살아남은 새로운 인간 종이다. 그들의 유전자는 새로운 환경에 완벽 적응하여 그들의 동공처럼 굴절되기 시작했다. 물컵에 비친 이들이 반대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쉬머에서 나온 새로운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쉬머에서 나와 죽기 직전까지 갔던 남편이 경계가 사라지고 나서 정상 건강을 회복했다. 이는 그 세계 자체가 전부 쉬머가 되었기 때문에 쉬머에서 나온 생명체가 회복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한 명씩 동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전 세계를 쉬머화한 것이 아닐까?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리나에게 질문한다. 그 복제 인간은 외계인이냐, 탄소로 이루어졌냐, 원하는 게 뭐냐, 우리의 모든 환경을 파괴했다고 말이다. 이때 리나가 대답한다.


원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중략)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었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거든요.


영화는 끝에 이렇게나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외계인 그런 거 아니고 뭔가 나타나서 인간을 위협하고 그런 거 아니고, 그저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에서 묘사한 쉬머는 기괴하고 신비롭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을 잘 나타냈다. 기분을 오싹하게 만들면서도 호기심을 주는 배경음악도 이 영화를 내내 생각나게 하는 요소다. 이 영화는 인간의 눈이 아닌 자연의 눈으로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공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잘 모르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 세계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쉬머에 나오는 복제 인간들은 외계인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지구에 적응하기 위해 생겨난 새로운 생명체일 뿐이다. 인간이 충동을 참지 못하고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한다면, 멸망하는 것은 지구가 아닌 인간일 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딸의 이야기, <길모어 걸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