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든 Jan 25. 2021

'지구를 위하여'는 개뿔

그 누구도 아닌 인류를 위해 축소하기



'지구를 위하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심지어 브런치 프로필 영문 주소를 'for earth'라고 지었다. (무려 필명까지 이지구다) 지구를 위한다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근 몇 년간은 환경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니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연 내가 지구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지구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지 말이다. 얼마 전 눈보라가 치던 날, 창문 너머 넘실거리는 성난 파도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지가 하늘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구나. 지구는 스스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걱정한 것은 지구의 수명이 아니라 인류의 수명이었던 것을, 2021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번쩍 뜨이듯 깨닫고 말았다.


지구는 자기에게 닥친 현실에 적응할 것이다. 지구에 탄소가 많아지면 탄소가 많은 행성으로 변하는 것뿐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온갖 화학물질은 몸이 한없이 약한 인간의 입장에서나 유해물질이지 지구 입장에서는 다 자기 안에서 만들어진 물질이다. 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져 바다를 이룰지언정, 동식물이 변이되고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될지언정, 지구라는 행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세월을 새로운 환경 및 생명체와 함께 영위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위기에 빠진 생명체는 바로 인류다.


지구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기후를 유지한 것은 아니다. 지구는 다른 행성보다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기온은 10만 년 전부터 1만 2천 년 전까지 크게 요동치다가 최근에야 안정되었고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킨 시기는 고작 7천 년 전이다. 하지만 안정되었던 기후가 다시 변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기후를 경험해야 한다. 지금 닥친 기후변화로 인류는 멸종될 수도 있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변화를 겪는 것일 뿐이다. 나는 기후가 변하면 인간은 물론 아름다운 지구가 폭발하기라도 할 듯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을 유지하지 못하고 돌로 가득한 행성으로 바뀔지라도 지구 자체는 살아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면서, 지금껏 나는 하늘을 불쌍히 여기는 거지 처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거지는 거지 패밀리 걱정이나 해야지 암. 흑...


인간은 대규모로 농사를 하고 가축을 기르고 마침내 기계라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켜 본인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자초하고 있다. 이 세상은 왠지 기계가 살기 적합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고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 원시적인 세상으로 돌아가기에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 나는 최첨단 미래에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그것을 목격하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고 해서 단순히 영화에서처럼 터미네이터 같은 기계가 인간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기계를 위한 세상을 마련한 인간은 지구 환경을 스스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시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파괴의 길로 몰아넣는 것일까? 이 홀로세를 지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일까? 이렇듯 파괴적 성향을 지닌 인간의 욕구를 향해서가 아닌, 정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트는 것이 그 첫 번째 해답이다.


어차피 지구를 위할 수 없으니 인생 뭐 있어, 흥청망청 살라고?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나 후대에 피해는 주지 말자는 게 내 의견이다. 매거진 주소를 'for Homo sapiens', '호모 사피엔스를 위하여'로 (필명은 이거지로) 바꿀까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기 없는 월요일: 비건 또띠아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