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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28. 2022

남미에서 생긴 일 17. 툭툭 기사와 현지에 녹아들기

[페루, 이카]

와이파이도 없는 버스터미널에서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비로소 이카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헤수스가 나타났다. 그는 어리고 당찬 툭툭 운전기사였다. 나를 필요한 곳에 내려주고는 툭툭을 몰고 돈을 벌다가 다시 픽업하러 돌아와 주던. 이카엔 와카치나 사막에 가보기 위해 들렀던 거였는데, 헤수스 덕분에 와카치나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그는 해 질 녘 즈음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다시 일을 하러 훌쩍 떠났다.


오아시스 앞에서


여태 여러 사막을 가보았지만 와카치나는 조금 독특했다. 연한 모래로 뒤덮인 끝없는 언덕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오아시스 마을이 연출하는 신비한 이미지 덕분이었을까. 늦은 시간 탓인지 휑한 느낌이 들던 시내에서는 줄줄이 널린 버기 투어 업체들이 나를 보고선 마지막 호객행위를 하기 바빴다. 끝무렵 타임이어서인지 손쉽게 원하는 가격으로 흥정을 하고선 버기카에 올라타 사막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함께 참가하게 된 슬로바키아인, 프랑스인과 친구를 먹고선. 사하라에서 못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던 샌드보딩까지 신나게 타자 오아시스 마을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규모가 작은 사막이라 오기를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와카치나는 가성비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샌드보딩과 버기투어!


약속대로 시간 맞춰 나타난 헤수스와 함께 다시 이카로 향했다. 그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 가장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자고 말했더니, 그는 치파(chifa) 음식점으로 날 데려가 주었다. 치파는 페루식 중식인데, 해안가에 위치한 덕분인지 예전부터 중국인들이 이주해 살았던 영향으로 페루에서 발달한 요리라고 한다. 짜장면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중국 요리가 아니듯 치파 역시 퓨전식이긴 해도 여전히 동양적 느낌이 강해서 아시아인의 입맛에 잘 맞을 법했다. 애초에 전반적으로 음식이 굉장히 맛있는 페루에서 맛없는 것을 먹기란 어렵지만. 그 와중에 헤수스는 페루인답게 꼭 잉카 콜라를 시켰다. 무엇을 먹든 무조건 잉카 콜라는 함께 마셔야 한다며.



다음날, 헤수스는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큰 고민에 빠졌다. 이카 외곽 지역에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가 있는데, 그룹을 데리고 가는 거면 몰라도 나 혼자만 태우고 거기까지 툭툭을 몰고 가기엔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였다. 부담 갖지 말라는 나의 말에도 그는 한참을 더 망설이더니 결국 타카마 와이너리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이 와이너리는 페루에 위치한 만큼 사실 와인보다는 피스코를 주력으로 삼는 곳이었다. 피스코는 포도로 만드는 페루식 브랜디로, 칠레인들과 페루인들 사이에서 누가 원조인지 빈번히 언쟁이 있는 모양이었다. 난 칠레에서 피스코를 처음 먹어봤기에 칠레의 전통술인 줄 알고 있었는데, 헤수스는 열을 올리며 페루의 피스코가 훨씬 더 맛있다고 주장했다. 피스코 테이스팅을 마치자 나는 홀린 듯 네 병이나 기념품으로 사고 말았다. 이후 돌덩이처럼 무거워질 배낭은 생각지 못하고.


내가 기념품으로 구입한 4병...


“툭툭 한 번 직접 운전해 볼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적한 시골이 펼쳐지자 헤수스는 툭툭을 멈춰 세우고서는 물었다. 2012년에 운전면허를 딴 이후로 운전대에 손도 대보지 않은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손사래를 쳤으나 그는 걱정 말라며 웃고는 페달 밟는 법부터 알려주었다. 잔뜩 긴장한 내가 결국 툭툭을 2미터가량 움직이는 데 성공하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제 나도 툭툭 기사가 될 수 있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헤수스에게 툭툭 운전법 배우는 중


헤수스는 툭툭 운전법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를 거의 하지 못하던 내게 온종일 이 단어 저 단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Polleria(생닭 판매점)라는 단어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냅다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던 그의 스파르타 교육방식 때문이 아닐까. 그 외에도 그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들에 나를 무작정 이끌고 갔다. 내가 불편할까 조심스러워하는 기색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에 참 감사한다.


헤수스 어머니께서 꼭 먹어보라고 권하신 과자와 소스


영어를 하지 못하는 그의 어머니와 어떻게든 소통하며 헤수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친구 생일 파티에 가서 처음 보는 페루인들과 홈메이드 모히또를 마시며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영화관에서 새로 나온 드래곤볼 극장판을 알아듣지 못할 스페인어로 본 것도, 결국 이렇게 “진짜 현지인”처럼 생활해보는 것은 다 헤수스의 막무가내 이끌기 신공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할 경험이었을 테니.


헤수스네 집에서 함께한 식사. 대체 내 먹는 사진은 왜 찍는 건데...


친구 생일파티와 홈메이드 모히또


살면서 본 가장 저렴한 영화관 - 영화표가 단돈 1.65달러!    여담이지만 신기하게도 남미 사람들은 유독 드래곤볼을 좋아한다. 나도 드래곤볼 광팬이라 다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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