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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Aug 07. 2020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서른살의 팔월

안간힘의 기록, <요가매트만큼의 세계>


"하지만 뻔뻔하게도,
그러나 별 수 없이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썼다.

실패로 점철된 20대를 되돌아보고
그리하여 지금의 나를 붙들기까지,
그 모든 안간힘의 기록이
여기에 있다."

- 요가매트만큼의 세계 중









스물한 살에 일찍이 큰 아이를 가지고 결혼을 했다.

1월에 태어나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갔으니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 후 만삭이 되도록 용기 있게도 학교를 다녔고 3학년을 마쳤다.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 없다. 무슨 용기였는지.)


그렇게 2월에 큰 아이를 낳고 1년을 키운 뒤 친정부모님의 응원에 다음 해에 복학. 그리고 개강하자마자 둘째가 생겼다.(미치겠다 증말)

아무튼 더 이상의 휴학 없이 4학년을 마쳤고, 그 해 연말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둘은 연년생이다.


공주여행 중 공산성. 연년생은 조금 놀고 많이 싸운다.




아이 둘을 낳았어도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당시의 생각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뭔가 더 근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식구를 한 사람의 벌이에 기대는 것이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작은아이 아장아장할 때부터 계속 무언가를 했다. 운동으로 시작한 요가에 흥미를 느껴 지도자 자격증을 따 요가 수업도 했고, 청소년 교육에 관심 있던 나에게 가까운 이가 소개해준 곳에서 일도 했고 또 전공을 살려 문화예술사 공부도 했다. 계속해서 크지 않은 돈을 벌었고 돈을 썼다. 모은 것은 없지만.




재작년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해 집에 공부방을 열었다. 재미도 있었고 오는 아이들도 예뻤지만, 내 집이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과 이 일을 얼마나 오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함께했다. 지금은 내 아이들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지만 금세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된다면 집에서 공부방을 하는 것을 불편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고.



그래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남는 시간 틈틈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아직 젊으니, 멀리 보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갖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될 것도 같았다. 그리고 올해 초 육아에 공부, 코로나까지 겹치고 나자 친정에서 시험공부에만 전념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여 공부방을 접고 몇 달을 공부만 했다. 그동안은 정말 빵점짜리 엄마였다. 아이들 얘기 들을 시간도 없었고 독서실에서 돌아오면 내 한몸 씻겨 눕기 바빴다.



그리고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이 글을 쓴다.




온갖 곳에 기웃거렸고 제대로 찾아낸 적성도 흥미도 없었으며 심지어 마땅한 직업도 없는 지금.


결국 얻은 것은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회의와 자리 잡고 살아가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내 인생 어딘가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듯한 불안. 문득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는 '그러지 말았어야할' 순간들과의 투쟁.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은 부채의식과 좋은 엄마도 아니라는 죄책감. 그럼에도 그나마 여태껏 한 일이라고는 애 둘 낳은 것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마음.



할 일을 미루지 말자고 다짐하며 미뤄온 청소를 한다.


그래서



다시 요가를 한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서 농담따먹기를 한다. (물론 짜증내고 싸우고 혼내고 화해하고의 반복이다.)

공부하는 내내 못 읽었던 책들을 읽어댄다. 눈 꾸욱 감고 모른척했던 집안의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미뤄오던 만남들을 갖는다.



이뤄낸 것 하나 없는 서른 살, 팔월의 시작.

몸은 뒹굴거리고 마음은 막막한 날들.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이 시간을 그리워하는 때가 오려나.



지금의 나를 기록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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