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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Aug 16. 2020

엄마, 지금은 천국의 시간이야.

나에게 행복이란,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행복이란
포도주 한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 그리스인 조르바 중










어젯밤 백 명이 넘어서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보며 아이고 세상에, 다시 시작이구나.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이백 명이 훌쩍 넘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으로 늘어났던 학교 등교일(원래 계획대로라면 화요일이 개학)이 2주간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되었다. 여덟아홉살은 신난다는데 나는 하나도 안 신난다. 요 녀석들아.



그래도 별 수 있으랴. 밥해먹고 떠들고 영화보고 책보고 싸우고 볶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 뻔하니 마음은 빨리빨리 비우는 것이 좋다.




저녁 먹고 난 후, 아이들과 자전거를 탄다.

한 달이 넘는 지난한 장마 끝에 만난 비 안 오는 저녁이 반가워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자고 먼저 제안했는데, 엄마 공부하는 동안 할아버지랑 다닌 적이 있다며 아이들이 나도 모르는 자전거도로로 안내한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니.





아. 여기 정말 이쁘다! 마치 다른 도시에 와있는 것 같아, 

어디쯤에서 돌아가야 하는지 알아? 

이 쪽으로 가면 길이 있어?


계속 아이들에게 내가 묻는다. 

아이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느낌이 예고 없이 이런 순간에도 찾아온다.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간격 조절하며 서로에게 옛날이야기들을 목이 터지게 큰 소리로 전하며 타는 세 자전거. (옛날이야기는 언제쯤 졸업할 수 있을까?)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제 오전까지 내린 비로 개천에 물소리가 시원하다. 물소리가 너무 좋다며 감탄하는 나에게 여덟살 작은아이가


"엄마, 우리 정말 천국에 있는 것 같지 않아?"

하고 묻는다. 우와. 정말 그런거 같아, 하고 대답하는데 그 이후로도 두 번쯤 더 말한다.



"엄마, 우리 천국에 와있는 것 같다, 그치?"

"엄마, 지금은 정말 천국의 시간이야!"



아이들의 천국은 이토록 가깝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매일 가지고있는 것의 숫자를 세며 엄마 속이 시끄러워도, 

하루 종일 붙어 싸우느라 즈그들 마음이 시끄러워도


그래도 그 순간, 아이의 마음에 천국이 있으니 참 부럽다. 기쁘다. 감사하다.



세월이 변해도 아이들은 풀과 돌맹이로 파전을 만든다.



시원한 물 한 잔, 복숭아 한 조각, 중고 자전거, 개천 물소리. 나도 조르바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거창하고 화려한 것들로부터 억지로 떼어내 졌으나 그래서 더욱 가까워진 우리의 천국을 자주 누리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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