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사진첩을 채우고 있는 것
변태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임신했을때
태교로서 곱고 아름다운 책도 읽었지만
곧 닥칠 실존서바이벌에 대응하여
육아서적(예를 들자면 삐뽀삐뽀 119 같은 것)도 많이 봤다.
그런 책 속에서 깜짝 놀란 구절을 봤다.
<아기가 아플 땐, 기저귀를 통째로 가지고 오세요.
똥 상태를 보면 의사가 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헐.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똥을 들고
사람의 똥을 관찰 받으러 갈 수 있단 말인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이쁜 사람 못난 사람
부자도 가난한 이도 모두모두 싸지만
차마 함부로 입에 올리긴 거시기한 그것, 똥.
그런 나였는데
아기를 낳고 나니
똥 매니아가 되었다.
모유를 먹을 때
분유를 먹을 때
이유식을 먹을 때
시금치를 먹을 때
한라봉을 먹을 때
소고기를 먹을 때
그때 그때 다르다.
시골통닭 같은 똥
바나나 같은 똥
하이라이스 같은 똥
그날 그날의 기분과
그날 먹은 음식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잊을 수 없는 비쥬얼 쇼크
감각적인 후각 환타지.
같은 똥은 단 하루도 없다.
그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라
어느 순간
나는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흩어질 똥을 그리워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변태같다는 것을 느꼈지만
더 변태스러운 것은
이것을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니 새끼 똥 니한테만 귀엽지
제발 그러지 말라는 주위의 충고에
혼자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참다참다 참지 못하고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나 미친 건가?"
"우리 시부모님도 우리 딸 맡아 키우실 적 그랬지.
사람들 말은 안해서 그렇지 다 그래"
"정말?"
"그 똥사진 저장된 2G폰 아직도 가지고 계신다네.
이제 사춘기가 된 딸이 명절에라도 가면 그거 보여주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우리 딸 얼굴 찌그러진거 말도 못해.
그러니까 혼자만 조용히 보고 말어"
그렇구나.
숨은 매니아들이 있었구나...
오늘은 어떤 똥을 만날지
냄새는 이미 귀여움을 넘어섰지만
하루의 성과를 힘차게 뿜어내는 궁둥이를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