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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Jun 13. 2019

7. 봉투의 추억

학부모로 처음 겪는 스승의 날

울 애기가 속한 0세반 아가들은

6명 정원에 2명의 담임선생님을 두고 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어린이집 밴드에 이런 공지가 떴다.


<선물 안됩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회사언니한테 문의했다.


"그래도 선생님들 선물을 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언니A)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냐? 가만있어"

"(언니B) 아무도 안 볼 때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앞치마에 봉투를 꽂아넣어야돼"


어린시절, 직장맘인 울 엄마가 부린 봉투의 흑마법을

익히 느껴본 바 있는지라

봉투, 촌지에 꺼림칙함이 있다.


회사를 가야하니 학부모모임에 자주 올 수 없었던 엄마는

가끔 점심시간에 득달같이 학교로 와서

선생님께 그 당시 맛나던 '씨트론 과자점" 표 케익을 드렸다.


케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담임선생님은

단체기합에서 나를 유일하게 빼주시고

손도 안들었는데 발표도 막 시켜주시고

안 예쁜데 예쁘다고 칭찬해주셨다.


아마도 케익안에 들어있는 봉투로

케익보다 더 맛있는 걸 사드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불편했다.

엄마는 상관없었다.


"(돈도 별로 없지만) 돈으로 떼울 수 있는 건 돈으로 떼워야 편해"


90년대 초는

수요도 확실하고 공급도 원활한 시장이 굳건히 형성되어 있었으니

뭐 그렇다해도


지금은 아니지 않을까?

거기다, 애기는 그냥 가서 먹고 자고 싸고 오는게 다인데..


혹시 내가 뭐라도 드리면

기저귀 갈 때 항균 티슈로 한 번 더 잘 닦아주시려나..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뭐라도 안챙기면 울 아기, 사랑과 정성으로

살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해서.. "


남편이 뚱한 표정으로 보며 한 마디 한다.


"누가 사랑과 정성으로 살펴달래?

우리가 맡긴 물건 소중히 보관했다가 잘 돌려주면 되는 거야.

이상한 짓거리 하지마"


냉정하기로는 이쪽을 따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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