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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varin Mar 09. 2021

인공지능시대, 인간의 문화

- AI 시대에 대응하는 문화적 관점

AI시대의 문화와 인간          


이세돌 vs 인공지능세기의 대국   

  

인간 바둑 챔피언 이세돌 9단은 지난 2016년에 이어, 2019년 연말에 다시 한 번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과 세기의 대결을 벌임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알파고 쇼크’라고 불리는 2016년의 역사적 대국에서 이세돌은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1대 4로 대패했다.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패한 이세돌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세돌이 패한 거지 인간이 패한 건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어쨌거나 그는 난공불락의 인공지능을 상대로 기적 같은 한 번의 승리를 거두었고, 이 승리는 인간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긴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알파고는 인간 바둑고수들과 69번의 대국을 치렀고 이세돌에게 진 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해 68승 1패의 전적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3년 반 후, 이세돌 9단은 자신의 은퇴를 선언하면서 은퇴기념 대국 상대로 또다시 인공지능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토종기업 NHN이 개발한 인공지능 한돌이었다. 한돌은 중국 산동성에서 열린 2019 중신증권배 세계인공지능바둑대회에 참가해 중국의 절예(FineArt)와 골락시(GOLAXY)에 이어 최종 3위를 차지했던 세계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한돌과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첫 판에서 비록 접바둑이긴 했지만 더욱 강력해진 인공지능을 꺾으며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후 호선(互先, 맞바둑)으로 진행된 2,3국을 내리 패하면서 결국 1대 2로 패배했다. 다시 한 번 인공지능의 가공할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대국이었다. 아마 앞으로 이와 같은 인간 vs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은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바둑 게임에서 이미 인간을 훨씬 넘어섰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공지능을 이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만 하더라도 이세돌과 격돌한 알파고는 '알파고 리'고, 이후 '알파고 마스터', '알파고 제로'로 진화하면서 가공할 위력을 갖게 되었다. 2017년 당시 세계 1위이던 바둑 고수, 중국의 커제와 격돌했던 알파고는 이세돌과 맞붙었던 알파고 리보다 훨씬 강력한 알파고 제로였다. 커제는 알파고 제로에게 3대 0으로 완패했다.


이제 더이상 바둑으로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제는 바둑게임만이 아니다. 사실 가로, 세로 19줄의 반상에서 이루어지는 바둑은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이나 된다고 하니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바둑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다면 인간의 사고력, 창의력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연산, 데이터 분석, 처리는 물론이고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까지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 능력을 앞서게 되는 시점을 미래학자들은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른다. 구글의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이점이 2045년경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45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24년 후다. 만약 커즈와일의 예측이 맞다면, 다음 세대는 특이점의 시대에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고, 싫든 좋든 인간은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줄 거라면 인공지능은 미래 문명의 최고의 이기(利器)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로봇이나 기계와 결합해 자동화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노동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 일을 빼앗기고 실업상태로 내몰릴 수도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낙관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매우 암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들이 미래사회 변화의 핵심적인 동인이 될 것임은 분명하고 미래는 과학기술 기반의 AI시대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소양    

 

과학기술이 테크놀로지와 산업의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사회문화 전반의 변화를 야기하게 되면 첨단과학기술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래의 첨단 과학기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의 눈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지 않으면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과학기술의 과잉은 자칫  인간소외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과학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첨단과학기술의 위험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충분히 우려할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으며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과학기술과의 공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 과학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제어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면 삶이 불편하다. 영화 티켓이나 기차표 예매도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음식 주문도 ‘키오스크’라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한다. 항간에 떠도는 농담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기차를 타면 연로한 어르신들이 대부분 좌석표를 구하지 못해 입석으로 간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앱을 사용하지 못해 좌석표를 예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앞으로 이런 디지털 격차, 과학기술 격차는 더욱더 심화될 것이다. 미래는 '격차의 시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생활이 불편하듯이, 미래는 인공지능이나 첨단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일상이 매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른바 '과학기술소양(Science & Technology Literacy)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변화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변화에도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지식만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법, 디지털 기기 작동법, 소프트웨어 코딩, 인공지능에 관한 기본지식 등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흔히 과학교육이라고 하면 학교의 정규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과학지식만을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학교교육 후 평생 동안 꾸준히 과학지식을 습득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강력해진 것은 자가학습 능력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른바 머신러닝이나 딥러닝으로 강화학습을 한다. 이런 엄청난 인공지능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앞으로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을 해야 할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의 주도로 국가중장기 계획인 ‘2061 프로젝트(Project 2061)’가 추진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문화단체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추진하는 대국민 과학소양제고 프로젝트인데, 시작된 스토리가 재미있다. 


AAAS라는 과학단체는 1848년에 설립됐으며 과학자, 엔지니어, 과학교육전문가 등이 참여해 ‘과학, 공학, 혁신의 진흥’을 추구하는 과학단체다. 1985년에는 전 국민의 과학소양 함양을 위한 ‘2061 프로젝트’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핼리혜성(Halley’s comet)이라는 혜성이 있는데, 이 혜성은 태양 주위를 도는 혜성으로 76년을 주기로 지구에 근접한다. 1985년은 핼리혜성이 지구에 근접했던 해이며, 핼리 혜성이 다시 지구에 근접하는 해는 2061년이다. 그래서 핼리혜성이 다시 접근하는 2061년까지는 모든 미국 시민들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기본적인 과학소양을 갖추게 하겠다는 것이 ‘2061 프로젝트’의 취지이자 목표다. 이 프로젝트는 중장기적 국가계획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단체는 그간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교육 표준’도 만들었고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과학(Science for All Americans)’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과학소양의 기본적인 내용도 추려서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사회가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여 과학자, 교육자, 기업, 시민, 전문가 등이 다함께 과학소양 제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과학강국 미국의 과학문화이며, 미국이 미래를 준비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과학기술 변화를 문화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고,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면서 과학소양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일반시민들의 과학기술소양이 더 많이 필요하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하고, 과학기술시대에는 과학기술소양이 필요하며, AI시대에는 AI 리터러시가 필요한 것이다. 보통 과학기술은 세 가지 축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한다. 우선은 R&D(Research & Development)라고 불리는 연구개발이고 두 번째는 과학교육이며 세 번째는 과학문화다. 연구개발은 과학자들의 과학연구나 기술자들의 기술개발을 가리키는데 이는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리고 과학교육은 학교 등 제도교육에서의 공식 과학교육과 과학관, 과학강연 등 비공식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학교밖 과학교육으로 이루어진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되면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므로 학교밖 과학교육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문화는 과학에 대한 인식과 이해, 그리고 사회가 과학을 수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더 많은 시민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갖고 과학을 활용하고 과학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과학문화다. 이렇게 연구개발과 과학교육, 과학문화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사실 과학과 기술은 인류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 문화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사회와 멀어지고 과학자와 대중 간의 간격이 벌어져온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지식은 시민의 기본소양이 돼야하고 과학기술은 삶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AI시대에는 AI에 대한 시민소양 교육과 AI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하고 사회가 수용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AI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대중들의 삶 속에 뿌리내릴 때 AI는 우리 삶의 문화가 될 수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위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학문, 즉 인문학(Humanities)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과학,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미래에는 기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초유의 상황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특히 첨단과학기술이 야기할 새로운 윤리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령 자율주행자동차가 보행자를 치었을 경우 누구에게 도덕적,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인공지능 의사라 불리는 왓슨이 잘못된 진단을 내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인공지능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내렸을 경우,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등등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법적인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인문학의 윤리가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자율적인 추론, 사유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윤리문제를 인공지능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이렇듯 인공지능시대에 새롭게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시대의 인문학, 인공지능시대의 윤리 문제는 지금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고 충분히 준비해야만 한다. 이는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인문학이 떠맡아야 할 새로운 숙제다. 


과학연구, 기술개발, 과학기술정책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모든 것의 판단기준은 인간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결국 인간의 창조적 활동의 산물이고, 인간 역사와 문화의 일부분이다. AI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모사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인간이 신을 넘어설 수 없듯이 인공지능은 인간을 넘어설 수 없고 넘어서서도 안 된다. 미래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결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 그 전제 조건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위해서는 인공지능을 첨단 테크놀로지가 아닌 인간의 문화로 수용해야 하며, 과학기술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성찰하는 과학문화가 창달되고 대중적으로 확산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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