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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위대한 스노우볼

최근 조용필 콘서트 영상으로 유튜브가 뜨겁다. 멘트도 거의 없이 3시간의 공연을 노래로 꽉 채우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모두 그의 노래를 열광적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그는 어떻게 세대를 통합하는 가왕이 되었을까?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음반을 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80년에 낸 '창밖의 여자' 음반은 국내 최초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그는 80년대 방송국들의 가요대상을 휩쓸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도 늘 순탄하지는 않았다. 90년대 초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콘서트에 집중했다. 그러나 방송활동을 중단한 터라 최초 3년은 관객석이 절반도 못 채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장치 등에 더 많은 공을 들여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었고, 관객석은 만석이 되었다.


힙합과 댄스가 휩쓸던 2000년대에 들어선 후 그는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해외 작곡가들과 협업하고 창법을 바꿔 20여 년 만에 가요순위 1위를 다시 차지했다. 그 곡이 '바운스'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대표되는 1970년대 후진국 시기를 거쳐, '서울서울서울', '꿈'으로 대표되는 개발도상국 시대를 거쳐 선진국이 된 밀레니엄 시대를 열광시키는 곡과 콘서트까지 그는 이 시대들을 조용필이라는 세글자로 연결시켰다.


그의 놀라운 저력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인터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 나이에 어떻게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실 수 있는 건가요?"

"한 달만 쉬어도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지금도 한 달에 70~80%는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신의 음악을 듣고, 분석하고 그리고 연습을 합니다."

"공로상을 거절하신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아직 현역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파이어족을 외치는 시대, 칠십 대를 흘쩍 넘긴 그의 답은 신선하다. 조용필이 위대한 스노우볼을 만든 힘은 단순한 노력이 아닌 스스로를 ‘현역’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 나도 나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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