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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Sep 30. 2024

어쩌다보니 바리스타

이 나이에 괜찮은걸까?

앞선 글에서 공시와는 아름답게 이별한다고 해놓고선 그 말이 무색하게 재시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다시 사기업에 들어가봤자 또 후회하고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이만 1살 더 먹을테고 공부해 둔 내용은 다 까먹어서 새로 시작해야 할테니 차라리 이어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당장의 먹고 삼,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평범해 보이기 위해 또 그런 삶을 선택할 순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무모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일상부터 되찾기

하루 종일 공부만 하다 보니 거북목도 심해지고 체형까지 이상해졌다. 목이랑 어깨가 아프긴 했어도 그 정도로 보기 싫을지는 몰랐는데 사진 찍힌 모습을 보니 심하긴 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일도 하면서 몸을 좀 움직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 6개월 동안 벌지 않고 쓰기만 했더니 모아둔 돈의 1/3 정도를 쓴 것 같다.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불안감이 점점 커질 것 같아 슬슬 구직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소하게 돈 벌 수 있는 곳? 그런 데는 없었다. 파트타임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질 않았다. 나 같아도 젊은 20대이거나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파트타임도 넣고 풀근무 일자리에도 지원했지만 다들 감감무소식.. 그러다 동네 스타벅스 바리스타 공고에 지원하게 되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없으니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지원했던 것 같다. 심지어 신세계 홈페이지 지원이라 그 많은 경쟁자 중에 내가 될까 싶었다. 근데 예상치 못하게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 동네랑은 거리가 있는 매장인데, 일단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꼴랑 알바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니다 싶어서 '약속한 면접만 가자'라는 마음으로 갔다. 근데 면접을 보다 보니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면접을 본 점장님이 좋은 분 같았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 생각도 못한 바리스타라는 커리어 한줄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뭐 제2의 업으로 삼겠다는 그런 거창한 기대는 아니고, 애매한 사무직 알바를 하는 것보다는 내 미래를 위해 훨씬 의미있겠다 정도였다. 심지어 스타벅스잖아!  


스타벅스에는 알바가 없다.

짧은 근무시간과 시급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알바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겠지만 스타벅스는 모두 직영 매장이며 알바가 아닌 직원으로 본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전국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신세계 그룹사 할인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회사의 직원이라는 마인드가 생긴다. 그리고 직급은 있지만 공통적으로 매장에 일하는 사람을 '스타벅스 파트너'라고 부르며 영어 닉네임을 사용한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와 수평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은 저절로 애사심을 키워주는 것 같다. 아직 며칠밖에 안 된 신입 파트너라 이 일이 좋다 안 좋다를 판단하기엔 이르다. 그리고 공부와 병행해서 할 수 있을지는 도통 가늠이 안되서 앞으로가 어떨지 모르겠다. 머리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막상 퇴근하고 나면 지쳐서 바로 공부 모드로 전환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사는 방식은 다 다른 거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와 비교할 뻔 했다. 회사 다니며 돈을 버는 지인들, 결혼을 했거나 애들이 있는 친구들. 이런게 평범으로 인정되는 내 주변에서 서른 후반에 백수이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내가 그 유일한 존재일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방황하고 있는 내가 웃프지만 남들과 비교한들 뭐 어쩌겠나 싶다. 나는 그들이 다니는 그런 회사에 다니기가 너무 싫고, 결혼할 사람도 없는 것을. 무엇보다 엄청난 고민 끝에 이런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인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그들이 내 인생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한 건 아니잖아? 마지막이 되니 열폭처럼 보이긴 하는데, 난 그냥 이렇게 생각하며 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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