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장점이 단 하나도 없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당연히 어려움이 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포털에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근무후기와 퇴사후기를 읽어봤는데 '설마 저 정도겠어? 원래 좋았던 사람은 글 같은 거 안 써. 부정적인 경우에만 글 쓰잖아. 난 아닐 거야' 했지만 몇 달 일해보니 봤던 내용 대부분에 공감이 됐다.
이건 공식적인 근무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퇴근 후나 출근 전에도 공부할 게 너무 많다는 뜻이다. 처음에 배울 게 많은 건 당연하지만 여기는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일단 수습 기간 동안 약 4개의 시험을 봐야 한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진짜 시험공부처럼 책상에 앉아 암기를 해야 한다. 날잡고 공부를 해야할 뿐만 아니라 한번 외운다고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파트너들은 "XX 음료 레시피는 뭐예요? 말해보세요"라고 하기 때문에 혼나지 않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서도 틈틈히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워라밸이 없다는 의미는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퇴근 후에도, 쉬는 날에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 매장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매장은 연장 근무도 많다. 5시간 파트타임이라 지원한 건데 하루에 7시간씩 일할거면 그냥 회사를 다니지. 뭐하러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갈려야 하나 싶다.
서비스직이다 보니 진상 고객이 가장 걱정됐었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응대할 때 잠깐 난감한 상황이 생겨도 퇴근하면 잊혀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복병 등장. 한주 한주 지나다 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텃세가 이런 거구나 알게 됐다. 무엇하나 좋게 넘어가는 법이 없고 감정적인 말투로 지적한다. 배운 적이 없어서 모르는 것도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무시하듯 정색하면서 말한다. 반면에 원래 일하던 사람들끼리는 세상 다정하게 '그렇게 바쁜 거 아니니 천천히 하세요' 등 신입에게 대하는 것과 온도차가 극명하다. 이외에도 나열하기 어려운 마상 포인트와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들이 가득하다. 여유를 갖고 누군가를 교육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건 이해한다. 그래서 신입은 짧은 시간에 그걸 다 흡수하고 능력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힘들 것이고, 기존의 직원들은 안 그래도 바쁜데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등장했으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전 글에서 스벅에서는 파트너가 서로를 존중하고 수평적이라서 좋다며 어쩌고저쩌고 한 말은 다 취소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건 그냥 대외적인 이미지일 뿐... (물론 우리 매장에 좋은 분들도 있다)
올해 초 일했던 공무직 파트타임은 몸이 좀 고됐었다. 그래도 그때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과 같이 일하지만 각자 맡은 일만 잘하면 되는 거였고 퇴근 후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출근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업무에 익숙해졌고 업무 능력도 올라갔다. 근데 여긴 아니다. 일단 각종 프로모션과 신메뉴가 계속 나오니 업무 외에 공부할 거리는 끊이질 않고 일할 때도 뭔가를 계속 배워야 한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실시간으로 받는 지적(좋게 말해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기가 빨린다. 일할 때도 눈치껏 해야하는 게 많아서 정해진 가이드가 무색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서 일하고 무거운 거 드는 건 각오했는데 이렇게 육체 노동이 심하면 정신적으로라도 괜찮아야 하는데 여기는 이 두 가지 중 무엇하나 충족되지 않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 말하는 장점들이 있다. 하루에 음료 2잔 제공, 한달에 한번 원두 제공, 스벅 할인 등.. 근데 이게 애사심을 키우거나 근속을 늘려줄 만큼의 혜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다닌 회사에 커피 머신이 없었던 적이 없고 아르바이트할 때도 간식과 음료가 나왔다. 그리고 자사 제품을 직원가로 살 수 있는 것도 당연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단점은 명확하다. 가장 큰 건 일하고 나서 성취감이나 보람이 없다.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나 자신 오늘 하루 고생했다. 그래도 밥값은 했다. 새로운 거 하나 배웠다' 같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긍정적인 기분 조차 느낀 적이 없다. 노예처럼 일을 하고 나서도 드는 생각은 '오늘도 허둥지둥했네. 동료들에게 피해만 줬네' 이런 것뿐이었다. 이 외에 들쑥날쑥한 스케줄과 연장으로 인해 규칙적인 삶을 사는 건 포기해야 한다.
어느 날 손님이 없는 시간에 같이 일하던 파트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 : 스벅에 일하는 장점은 어떤 게 있어요?
파트너 : 음..... (한참 고민) 없는데요.
나 : 그래도 하나쯤은 있을 거잖아요...?
파트너 : 없는 거 같아요 (단호박)
아 그래도 유일하게 괜찮은 점 하나는 점장과 부점장님은 좋은 분인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퇴사하고 싶었지만 점장과 면담 후 인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말에 퇴사일을 조금 더 늦췄다. 이것도 사실 후회된다. 이 고통을 몇 주나 더 겪어야 하다니...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남들이 말려도 해보고 싶은 건 해왔던 것 같다. 막상 해보니 생각한거랑 다르다며 불평불만을 할지라도 내 선택 자체를 후회하는 편은 아니다. 모든 경험은 내 인생의 스토리가 되고 스펙트럼을 넓혀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스벅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건 후회가 된다. 바리스타 경험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고 자존감만 바닥 친 노예의 삶.. 지난 몇달이 너무 아깝다. 원래 병행하려던 계획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원서 쓰는 노트북을 바로 닫아버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