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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수책방 Nov 30. 2021

개발 현장에 ‘生’ 한 글자를

-책 속의 한 줄

    

처음 편집을 할 때 작가가 준 원고를 교정한다는 건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떨리는 일이었다. 나에겐 너무 어색한 말과 문장이라 손을 대다가도 ‘이걸 내 마음대로 고쳐도 될까? 내가 고치는 게 맞는 걸까?’ 숱한 고민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편집 경력이 쌓였는데도 여전히 교정에 대한 고민은 줄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되뇌는 책이 있다. 영국의 유명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이 쓴 <되살리기의 예술>이다. 

제목의 ‘되살리기’란 편집자가 사용하는 교정 부호를 뜻한다. 편집자가 글을 고치다가 삭제하거나 수정한 것을 ‘원래대로, 되살리기’란 의미로 교정 부호를 덧쓰는 경우가 있는데, 영미권에서는 ‘stet’를, 우리나라에서는 ‘生’이라고 쓴다. 

다이애나 애실은 제목처럼 끊임없이 되살리기를 실현한 편집자였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목소리니 함부로 원고에 손대는 것을 경계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원고에 지나치게 손을 대지 않았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부분도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편집자의 절대 원칙이었다.”

-<되살리기의 예술> 중에서     


한때 환경 훼손 논란으로 공사가 중지되었던 제주 비자림로가 공사를 재개할 모양새다. 환경 훼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공사 재개 촉구 결의안이 도의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비자림로는 애기뿔소똥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이번 공사 재개의 대책으로 나온 것이 도로폭을 24m에서 15m로 줄인다는 건데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작가가 보내온 원고와 달리 한번 파괴된 자연은 되살릴 수가 없다. 아니 자연 스스로 되살아난다 해도 한두 해 만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주민 편의를 위해 시행한다는 개발이나 공사에서 실제로 이득을 보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 안에 들 거라는 헛된 희망 속에 사람들은 개발에 찬성하곤 한다. 그러는 사이 사라지는 건 수백 년간 지구가 품어왔던 동식물이다. 그다음 사라질 건 우리들인 걸 왜 모르는 걸까? 지금 필요한 건 인간의 편리가 아니라 이미 잘려버린 나무 위에 덧쓸 ‘生’이라는 한 글자다.



* 한국농어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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